since.2000.09.07

옛날 바닷가에 있는 한 왕국에 르노어라는 귀여운 공주님이 있었습니다. 공주는 11살이 다 되어가는 10살인 아이였습니다. 어느날 공주는 나무딸기 파이를 잔뜩 먹고는 그만 배탈이 나서 누워버렸습니다.

왕실 주치의가 급히 달려와 공주의 체온과 맥박을 재고, 혀를 살펴보았습니다. 주치의는 공주가 많이 아픈 것을 보자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왕을 모셔오게 했습니다. 왕이 공주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는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얘야, 네가 원하는건 뭐든지 들어주마. 뭐 갖고 싶은 것이 있느냐?”

왕이 말했습니다.

“예, 달님이 갖고 싶어요. 달님을 가지면 아픈게 나을 것 같아요.”

공주가 말했습니다.

왕의 곁에는 왕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가져다주는 지혜로운 신하들이 많아서, 왕은 딸에게 달을 따다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는 왕좌가 있는 방으로 가서 줄을 당겨 벨을 울렸습니다. 길게 세번, 짧게 한번… 그러자 총리대신이 들어왔습니다.

총리는 덩치가 크고 뚱뚱했습니다. 그리고 돋보기를 써서 눈이 실제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였는데, 이것 때문에 실제보다 두 배는 더 지혜로워 보였습니다.

“가서 달 좀 따오게. 공주가 달이 갖고 싶다고 했다네. 달만 갖게되면 아픈게 나을 것 같다고 말이야.”

왕이 말했습니다

“달 말씀이십니까?”

총리는 눈이 동그래져서 되물었습니다. 그 바람에 실제보다 네 배는 더 지혜로워 보였습니다.

“그래, 방금 자네가 말한 바로 그 ‘달’ 말이네. 오늘밤까지 아니, 늦어도 내일까지는 가지고 오게.”

왕이 말했습니다

총리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고는 야단스레 코를 풀었습니다.

“제가 전하를 모시면서 온갖 것을 다 구해드렸죠. 마침 제가 구해드렸던 물건 목록이 여기 있군요.”

총리는 주머니에서 양피지로 된 긴 두루마리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목록을 흘끗 보았습니다.

“한번 보죠 제가 바쳤던게 상아, 원숭이, 공작, 루비, 오팔, 에메랄드, 흑난초, 분홍 코끼리, 파란 푸들, 황금벌레, 풍뎅이, 파리가 들어있는 호박, 벌새 혀, 천사의 깃털, 유니콘 뿔, 거인, 난쟁이, 인어, 유향, 용연향, 몰약, 음유시인, 극단, 무희… 에… 또… 버터 한 통, 계란 두 판, 설탕 한 마대, 엥? 이런, 죄송합니다. 제 아내가 모르고 써놓았네요.”

“흥… 파란 푸들? 그런 건 코빼기도 안보이던데?”

왕이 말했습니다

“그럴리가요? 여기 ‘파란 푸들, 글자에 작게 체크 표시가 되어 있는데요? 푸들이 틀림없이 어딘가에 계속 있었을 텐데 전하께서 아마 기억을 못하시나 봅니다.”

총리가 말했습니다

“응.. 그깟 푸들 따윈 아무래도 좋네. 지금 당장 가서 달이나 따오게.”

왕이 말했습니다

“저는 전하께 바칠 물건을 구할려고 사마르칸트나 아라비아, 잔지바르 같이 먼 곳까지도 갔었지요. 하지만 달이라뇨? 그건 멀어도 너무 멉니다. 일단 여기서 3만 5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데다가 크기는 공주님이 누워 계신 방보다도 더 큽니다. 게다가, 달은 구리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달을 제가 어떻게 가져오겠습니까? 푸들이라면 모르겠지만요….”

왕은 화가 나서 총리에게 방에서 나가라고 말하고, 이번에는 왕실 마법사를 불러들였습니다.

왕실 마법사는 덩치가 작고 몸이 홀쭉했으며, 얼굴이 길었습니다. 마법사는 은빛 별이 그려진 빨간 고깔모자를 쓰고, 금빛 올빼미가 그려진 긴 푸른색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왕은 마법사에게도 똑같이 가서 달을 따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마법사는 그만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습니다.

“여태껏 전하를 모시면서 제가 온갖 마법을 다 보여드렸었죠. 사실은 마침 제 주머니에 제가 보여 드렸던 마법 목록이 있습니다.”

마법사가 말했습니다. 마법사는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종이를 꺼내서 읽었습니다.

“친애하는 왕실 마법사님께 부탁하셨던 이른바 ‘현자의 돌’을 구해서 보내오니… 이런 … 이게 아니네요.”

마법사는 이번에는 다른 주머니에서 양피지로 된 긴 두루마리를 꺼내서 읽었습니다.

“이겁니다. 에… 제가 순무를 꽉~ 쥐어짰더니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나왔드렀죠. 그래서 그 ‘피’를 다시 순무로 되돌렸었죠. 또, 실크 모자에서 짠~ 하고 토끼를 꺼냈다가 토끼를 다시 실크 모자로 되돌려버렸고, 허공에서 꽃, 탬버린, 비둘기 따위를 나타나게 했다가 그걸 다시 사라지게 했었습니다. 음… 또 점칠 때 쓰는 지팡이와 요술을 부리는 막대기,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수정구를 드렸고,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미약과 연고를 만들어 드렸고, 또, 속상함이나 배탈, 귀울림을 고쳐주는 물약도 만들어 드렸습니다. 또, 바꽃이랑 까만 종이, 독수리 눈물을 섞어서 저 만의 ‘비법’으로 만든~ 마녀, 악마, 밤도깨비 따윌 쫓는 ‘왕실 마법사표’ 특제약을 드렸었죠. 또, 신으면 한 걸음에 7리그를 갈 수 있는 구두와 손만 갖다 대면 금으로 만들어버리는 재주, 에 … 또 … 투명망토도 드렸 …”

“투명 망토는 쓰나마나 였다네.”

왕이 말했습니다’

“그럴리가요.”

마법사가 말했습니다.

“써도 전처럼 계속 도깨비가 보이던걸.”

왕이 말했습니다

망토를 쓰시면 전하 모습이 안 보이게 되는 것이지, 쓴다고 도깨비를 안볼 수 있는게 아닙니다.”

마법사가 말했습니다.

“호… 내가 기억하는 건 그걸 써도 여전히 도깨비가 보이더라는 것 뿐이네.”

왕이 말했습니다.

마법사는 목록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제가 요정 나라에서 뿔을 구해다 드렸고, 잠귀신에게서 모래를, 무지개에서 금을 가져다 드렸군요. 흠 또… 실 한 꾸리, 바늘 한 꾸러미, 밀랍 한 덩이 … 아이고, 이런… 죄송합니다. 아내가 구해오라고 써놓은 거군요.”

마법사가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이런거나 들으려고 자네를 부른 줄 아나? 어서 가서 달이나 따오게. 그래야 공주가 나을게 아닌가?”

왕이 말했습니다.

“달을 따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달은 여기서 15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데 다가, 초록색 치즈로 만들어졌습니다. 또, 이 궁전보다 두배는 글겁니다.”

마법사가 말했습니다.

왕은 다시 화가 나서 마법사를 동굴로 돌려보내고는, 벨을 울려 이번에는 왕실 수학자를 불렀습니다.

왕실 수학자는 머리가 벗겨졌고, 눈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스컬캡을 쓰고, 귀에는 연필을 꽂고 있었습니다. 수학자는 흰색 숫자가 새겨진 검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자네도 또 목록이나 줄줄 읽을텐가? 미리 말하지만, 내가 자네를 1907년부터 풀어줬던 문제들이나 읊어보라고 부른 것은 절대 아니네. 지금 당장 공주를 위해 달을 따올 궁리나 해보게. 달만 따오면 공주는 나을 테니까..”

왕이 말했습니다.

“제가 해드렸던 일을 기억하고 계시다니 이거 참 영광이군요.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마침 제게 그 목록이 있는데요. 한번 들어나 봐 주시 겠습니까?”

수학자가 말했습니다.

수학자는 주머니에서 양피지로 된 긴 두루마리를 꺼내서 보았습니다.

“어디보자…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에 둘 사이 거리가 얼마인지와 낮과 밤, A와 Z사이 거리는 얼마인지를 계산해 드렸습니다. 또, ‘위에’라면 어디 쯤을 말하는건지, ‘저기쯤까지 가는 데는 얼마정도 걸리는지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계산해드렸고, 바다뱀이 얼마나 긴지 ‘엄청 소중’하다는 것은 어느정도 소중하다는 것인지, 하마의 면적은 얼마인지를 밝혀냈습니다. 흠 또… 저는 폐하가 긴가민가 헷갈려하실 때 어디쯤 계신지, ‘하나’가 얼마나 모여야 ‘여러 개’가 되는지, 온 바다의 소금으로 새를 잡는다면 몇 마리나 잡을 수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궁금하시다면 717,796,132 마리 정도라고 해 두죠.”

“온 세상 새를 다 합쳐도 그 정도는 안될 것 같은데?”

왕이 말했습니다.

“그 정도로 많은 새가 있다는게 아니라 있다면 그 정도가 될 거라는 말입니다만..”

수학자가 말했습니다.

“시끄럽네. 대체 있지도 않은 새 7억 마리는 왜 말한건가? 가서 달이나 따오게.”

왕이 말했습니다.

“달은 여기서 30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고, 동전처럼 둥글고 납작합니다. 또, 석면으로 만들어졌고, 크기가 이 왕국의 반 만 합니다. 게다가, 달은 하늘에 딱 달라붙어 있습니다. 이런 달을 어떻게 가져 오겠습니까?”

수학자가 말했습니다.

왕은 역시나 화가 나서 수학자를 보내고는, 이번에는 왕실 어릿광대를 불렀습니다.

광대가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종이 달린 모자를 쓴 채 통통 뛰면서 방으로 들어와 왕좌 앞에 앉았습니다.

“뭘 한 번 해볼까요, 임금님?”

광대가 물었습니다.

“누구 하나 도움되는 사람이 없구나.”

왕이 슬픔에 잠겨 말했습니다.

“공주가 달을 갖고 싶어 한다네. 달만 갖다주면 아픈게 나을 것 같다는데 그걸 구해올 사람이 없어… 신하란 놈들은 물어볼 때마다 달은 엄청나게 크고, 또 멀리 있다고 투덜대기만 하고 말이야… 자네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겠나? 그냥 류트로 슬픈 곡이나 하나 켜보게.”

“예, 임금님, 그런데 그전에 궁금한게 하나 있어요. 달이 도대체 얼마나 크다고 하던가요? 또, 얼마나 떨어져 있고요?”

광대가 물었습니다.

“달 말인가? 그게 대답들이 갈수록 가관이었다네. 처음에 총리대신에게 물어봤더니, 달은 여기서 3만 5천 마일 떨어져있고 크기가 공주 방보다도 더 크다고 했다네. 그래서 이번에는 마법사에게 물어봤더니, 달은 여기서 15만 마일 떨어진데다 궁전보다 두배는 크다는게 아닌가. 화가 나서 마지막으로 수학자를 불러서 물어봤더니, 아 글쎄, 달이 30만 마일 떨어져있고 크기가 내왕국의 반 만 하다고 말했다네. 평소에 그렇게들 잘난척을 하더니, 이런거 하나 해결하지도 못하고 말이야.”

왕이 말했습니다.

광대는 류트 줄을 한번 퉁겨보더니,

“다들 현명한 사람들이니 그 말이 다 옳겠지요. 그 사람들 말이 다 옳다고 한다면, 달은 모든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는 만큼 크고, 또 그만큼 떨어져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공주님이 생각하는 달이 얼마나 크고 또 얼마나 멀리에 있는지를 알아내는게 우리가 할 일이죠.”​

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거기까진 미처 생각을 못했네.”

왕이 말했습니다.

“제가 공주님께 가서 한번 여쭤볼게요, 임금님.”

광대는 그렇게 말하고 공주가 자고 있을까봐 발끝으로 조심조심 걸어서 공주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주는 깨어 있었습니다. 공주는 방에 들어온 광대를 보고 반가워는 했지만, 얼굴은 매우 핼쑥했고 목소리는 마치 다 죽어가는 사람 같았습니다.

“달님을 따왔니?”

공주가 물었습니다.

“아직은요. 하지만 당장이라도 따다 드릴 수 있으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음… 그나저나 공주님은 달이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세요?”

광대가 물었습니다.

“내 엄지손톱보다 조금 작아 달님에 이렇게 엄지손가락을 갖다 대면 가려져서 안보이는걸.”

“그럼 여기서 달까지가 얼마나 멀다고 생각하세요?”

광대가 물었습니다.

“별로 안 멀어. 저기 창문 밖에 큰 나무 있지? 저 나무보다 높은 곳에 있지도 않아. 보고 있으면 가끔씩 나무 꼭대기에 걸리기도 하던데?”

공주가 말했습니다.

“오~ 공주님 말씀대로라면 달 따는 건 아주 쉽겠는데요? 좀있다 제가 나무에 올라가서 달이 꼭대기에 걸리면 따다 드릴게요.”

광대는 그밖에 또 물어볼 거리를 생각해냈습니다.

“달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요, 공주님?”

광대가 물었습니다.

“아~ 당연히 금이지, 바보야.”

공주가 말했습니다.

광대는 방을 나와서 왕실 대장장이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대장장이에게 부탁해서 공주 엄지손톱보다 약간 작은, 둥글고 금으로 된 달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다음 그것을 목에 걸 수 있도록 금줄로 꿰어 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방금 전까지 만들었던게 도대체 뭔가? 자네가 만들래서 일단 만들었지만,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겠군.”

대장장이는 일을 끝내고는 물었습니다.

“뭐긴, 달이지. 저게 바로 달이라네.”

광대가 말했습니다.

“뭐? 달? 달이라면 50만 마일 떨어져 있고 청동으로 만들어진 구슬처럼 둥근 것 아니었나?”

대장장이가 말했습니다.

“그건 자네 생각이지.”​

광대가 다 만들어진 달을 가지고 나가면서 말했습니다.

광대가 달을 갖다 주자 공주는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다음날 공주는 병이 나았고, 예전처럼 정원에 나가 뛰어 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것을 보고 일단 마음이 좀 놓였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밤이 되면 달이 다시 뜰 것이고, 공주가 그걸 보게되면 목에 걸고 있는 달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왕은 총리대신을 불러서는

“오늘밤 달이 뜰 텐데, 그걸 공주가 못 보게 할 방법이 없겠나? 생각 좀 해보게.”

라고 말했습니다.

총리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똑똑 두드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말하기를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안경에 검은 칠을 해서 공주님께 씌우는 겁니다. 그러면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이질 않을테니, 달이 뜬다고 해도 모르시지 않겠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크게 화가 난 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공주가 그걸 쓰게 되면 여기저기 부딪힐 것 아닌가. 그러다가 다쳐서 또 앓아눕기라도 하면 어쩔텐가?”

그리하여 총리를 물러가게 하고는 왕실 마법사를 불렀습니다.

“오늘밤 달이 뜰 텐데,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걸 숨겨야만 하네. 공주가 못보도록 말이야… 도대체 어떡하면 좋겠나?”

왕이 말했습니다.

마법사는 손으로 물구나무를 섰다가 머리로 서더니, 다시 바로 섰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 장대 끝에다가 검은색 벨벳으로 만든 커튼을 쫙~ 펴서 얹어놓는 겁니다. 그러면 커튼이 마치 서커스단 천막처럼 온 정원을 다 가려버릴테죠. 따라서 밖이 안 보일테니 달이 뜬다고 해도 모르실 겁니다.”

마법사가 말했습니다.

왕은 다시 화가 나서 이번엔 팔을 휘휘 내저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숨을 쉴 수가 없지 않은가 공주가 숨이 막혀서 괴로워하다가 또 병이라도 나면 어떡할텐가?”

왕이 말하고는, 마법사를 물러가게 하고 왕실 수학자를 불러들였습니다.

“자네도 알다시피, 밤이 되면 달이 뜰 것 아니겠나? 공주가 그걸 못 보도록 무슨 수를 써야만 하네. 뭔가 아는게 있다면 한 번 말해 보게.”

왕이 말했습니다.

수학자는 원을 그리며 걷더니 이번엔 정사각형을 그리다가, 곧 멈춰 섰습니다.

“옳거니! 정원에서 매일 밤마다 불꽃놀이를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음… 정원에다가 은빛 분수대와 금빛 폭포를 많이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그러면 불꽃이 터지면 온 하늘에 가득 찰 것이고, 또 번쩍번쩍 거려서 대낮처럼 훤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자연히 달이 안보이겠죠.”

수학자가 말했습니다.

왕은 역시나 화가 나서 펄쩍펄쩍 뛰고는

“불꽃놀이를 하면 공주가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잘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또 병이라도 나면 어떡할텐가?”

라고 하며 수학자를 물러가게 했습니다.

왕은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밖을 쳐다보았더니, 밖은 이미 깜깜했고 이제 막 달이 지평선에서 고개를 슬며시 내미는 참이었습니다.

왕은 크게 놀라 펄쩍 뛰며, 왕실 어릿광대를 부르는 벨을 울렸습니다. 그러자 광대가 통통 뛰면서 들어와 왕좌 앞에 앉았습니다.

“이번엔 또 뭘 한번 해 볼까요. 임금님?”

광대가 물었습니다.

“누구 하나 도움이 안되는구나.”

왕이 슬픔에 잠겨 말했습니다.

“지금 달이 떴다네, 달빛이 공주 방에 스며들면, 공주는 달이 자기 목에 걸려있는게 아니라 여전히 하늘에 떠있다는걸 알게 되겠지. 슬픈곡이나 하나 켜 보게… 아주 슬픈 걸로 말일세 공주가 달을 보게 되면 다시 병이 날테니 말이야. “

광대는 류트 출을 한번 퉁겨보더니,

“임금님의 그 현명한 신하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라고 물었습니다.

“달을 숨길만한 마땅한 방법을 못찾았다네.”

왕이 말했습니다.

광대는 다른 곡을 하나 조용히 연주하고는

“현명한 사람들이란 본디 모르는 게 없는 법이죠. 그러니 그 사람들이 달을 숨길 방법을 못찾았다면, 달을 숨길 방법은 없다는 말이 되는거죠.”​

라고 말했습니다.

왕은 다시 고개를 떨구고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왕좌에서 벌떡 일어 나더니 창문 밖을 가리켰습니다.

“저걸 보게!”

외치고는

“아아… 달빛이 벌써 르노어 방에도 비치고 있어. 자기가 달을 목에 걸고 있는데 어떻게 그 달이 하늘에 떠서 빛나고 있는지를 공주에게 도대체 누가 설명해 출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말했습니다.

광대는 류트 연주를 멈췄습니다.

“임금님의 그 현명한 신하들이 달은 엄청나게 크고, 또 엄청나게 먼 곳에 있다고 불평만 하고 있을 때 정작 그 달을 어떻게 구해오는지 알려준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르노어 공주님이에요. 그러니까 공주님이 임금님의 그 현명한 신하들보다도 더 똑똑하고 달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안다는 말이죠. 저는 그래서 이번에도 공주님께 여쭤볼 거에요.”

광대는 그렇게 말하고 왕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방을 스르르 빠져나가 공주 방으로 가는 넓은 대리석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공주는 자리에 누워 있었지만, 말똥말똥 눈을 뜨고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창밖에는 달이 떠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주의 손에서는 광대가 따다 주었던 달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광대는 매우 슬퍼져서, 눈에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말씀해주세요, 공주님.”

광대가 슬픈 듯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달은 지금 공주님이 목에 걸고 계시는데도 하늘에 떠서 빛나고 있을까요?”

공주가 광대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바보야, 그것도 모르니? 내 이가 하나 빠지면 그 자리에 새 이가 나잖아, 그치?”

공주가 말했습니다.

“물론이죠. 유니콘이 숲속에서 뿔을 잃어버려도 이마 가운데 새 뿔이 자라잖아요.”

광대가 말했습니다.

“맞아 맞아, 음… 왕실 정원사가 정원에 핀 꽃을 잘라버려도 그 자리에 새로 꽃이 피잖아.”

공주가 말했습니다.

“그렇네요. 생각해보니까 해도 없어졌다가도 다시 생기는데, 여태껏 그걸 왜 몰랐을까요?”

광대가 말했습니다.

“달님도 그렇지 뭐. 네가 따다줬지만 새로 생겼잖아? 내 생각에 모든게 다 그런거 같아.”

공주는 말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광대는 조용히 이불을 끌어올려 공주를 덮어 주었습니다

달님이 자신에게 윙크한 것 같아서, 광대는 창가로 가 달님에게 마주 윙크해 보이고는 방을 나섰습니다.

원제 MANY MOONS
작가 JAMES THURBER / LOUIS SLOBODKIN
초판 발행은 1943년, 미국

후에 오페라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고.
이 희곡이 1989년 문교부에서 발행한 초등학교 국어(5-1) 교과서에 ‘연극하는 글’로 실려있었는데 물론 교과에서는 훨씬 축약되어 있었다.

혹시 이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나 해서 검색했더니 이렇게 전문을 올려둔 블로그가 있어서 빌려왔다.
▶출처
https://blog.naver.com/lim9217/221529375729
https://blog.naver.com/izrose/100138517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