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아마도 사건의 시작은 린양이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아직도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 못자봤단 말이야?’라는 놀림(?)에 자극을 받았던 것인 듯하다.(그럼 다른 애들은 다 벌써 자 봤단 말이야?  -_-;)
여섯살이 되니 정말 작년과는 달라서 원에서 애들끼리 하는 이야기도 제법 다채롭고(?) 거기에 좋든 나쁘든 자극을 많이 받기도 하는 게 보이긴 하는데…

아무튼.
그 때문인지 최근 갑자기 ‘외가집에서 자고 가겠다(집에서 100미터 거리)’고 우기다가 지지난주에 내가 일이 있어 늦게 들어온 날 처음으로 시도해봤으나 억지로 억지로 자려고 하다가 결국 선잠만 한시간 살짝 자고는 나와 함께 집으로 복귀. 외할머니가 ‘1시간 잔 것도 잔 거니까 친구들에게 잤다고 해도 된다’라고 인증(?)해주었으나 아무래도 그게 본인 마음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뒤로 두주 내내 생각만 나면 조르길래 드디어 어제 두번째 시도.
사실 린양이 잠버릇이 그리 좋지 않아서 잠이 들고 나면 꼭 한시간 쯤 뒤에 한번 울면서 깨서 나를 찾는 습관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밖에서 못자게 하는 것도 있었는데 요즘 갑자기 그 버릇이 좀 뜸하길래 이번에는 성공할수 있을지도…? 싶긴 했지만 혹시 몰라 나와 옆사람은 열시 넘어까지 대기 상태로 있다가 동생이 ‘잠들었다’고 쪽지 주고서야 긴장해제.

평소에도 10시 넘은 시간이면 린양은 자고 우리 부부만 서재에서 각자 할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이상하게도 안방에 애가 없다고 생각하니 뭐라 설명할 수 없이 적적하더라. 왠지 허전하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 엄마에게 애 깼냐고 쪽지를 날리니 무려 6시반에 일어났단다. -_-(평소 기상 시간은 8시 반. 오늘 하루 엄청 졸겠구만)
일어나서 밖이 컴컴하니 매우 슬퍼하며 ‘아직 수요일이냐‘고 물었다고…; 목요일이라고 알려주니 하룻밤을 잤다는 데에 매우 기뻐했다는데 생각해보면 너무 웃기고도 귀엽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잤는데 일어나니 아직 밤인 거 같으니 얼마나 좌절했겠어.

9시쯤 외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더니 굳이 오늘은 외할머니가 원에 데려다주면 좋겠다며 (이게 지 나름의 이 이벤트의 마무리인 모양)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아침에 만난 딸의 얼굴은 혼자 의기양양해서 매우 만족한 것처럼 보였고 내가 ‘엄마는 혜린이가 없어 너무 외로웠어~~ 이제 거기서 자지 마~~’라고 오버해주자 ‘잠깐은 떨어져있어도 괜찮잖아~’ 라고 대답하며 자신이 한 16살쯤 먹은양 굴었다.

작년에는 치마가 아닌 하의는 옷도 아닌 줄 알더니 올해 들어서는 치마 바지 별로 가리지 않고 입는 것처럼, 아이를 키우다보면 그냥 시간이 흐르면서 해결되는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 나한테 너무 매달린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 생각(-_-)이었고 딸내미는 그 사이에 스스로 독립해볼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걸까.

by

/

6 responses

  1. Jung jinsol

    우하하- 완전 귀여워요!!
    어제 이 글보고 댓글 달아야지..하다 오늘 아침에 다네요 ㅎ
    그래도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 자면 좀 불편했을 텐데..그래도 완전 잘 하네요 ㅋㅋㅋㅋ

    1. Ritz

      얼마나 긴장했으면 나름 두시간이나 일찍 깼을까 싶어요. ^^;; 친정엄마께서도 자는 내내 이불 덮어주느라 편히 못 주무셨나보더라구요. ^^;;;;

  2. 멋집니다 린양! 저도 기린이 여섯 살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보겠습니다(아흑;;;)

    1. Ritz

      아니면 기린이 반 아이들이 ‘너 아직도 할머니 집에서 안 자봤어?’를 던져주기를… ^^;;;

  3. 린양은 항상 말하는게 참 어른스러운 것 같아요 🙂 (그런데 귀엽다는..)
    외할머니께서 원에 데려다 주시는 것이 친구들한테 나 외가에서 잤다고 인증하는 것 아니었을까 하고 불순한 어른의 시각으로 추측해 봅니다 ^^

    1. Ritz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많은 환경에서 자라서 말’만’ 저래요…;
      저도 잠깐 그 생각이 들었네요. 외할머니랑 가야 애들한테 인증을 하지 싶어 그런 게 아닐까 싶은. ^^;;; 뭐, 저야 덕분에 편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