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자객들은 왜 대낮에 쳐들어갔는가 -_-;

지난 일기의 날짜를 보니 그간 영화를 한동안 안봤네요. 별로 당기는 영화도 없고, 요즘은 영화비도 꽤 비싸다보니… 꼭 보려고 생각했던 것만 보게 되는 듯 합니다.

올해의 첫 영화는 장예모 감독의 영웅입니다. 개인적으로 장예모 감독의 영화는 국두, 붉은 수수밭, 홍등 등을 봤는데 가장 재미있게 봤던 것은 홍등이었습니다. 이 ‘영웅‘을 보고 난 지금도 1등은 홍등이고, 아마 영웅이 두번째쯤 될 듯 하네요.
보면서 생각난 게, 예전에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이 혀를 깨물 것 같은 이름을 외우고 있는 것은, 그때는 영화음악을 많이 들었을 때였기 때문..-_-;)의 블루, 레드, 화이트 세가지색 연작 시리즈였습니다. 좀 다른 구성이긴 하지만, 색으로 이야기를 구분한다는 점에서는 좀 비슷하게 다가오더군요.
내용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 그를 암살하고자 했던 자객 3명과 진시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년 전 진시황을 노렸던 자객을 처치하고 돌아온 이연걸은, 진시황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그들을 처치했는지 이야기를 하고, 영화는 이연걸이 처음에 말하는 사건의 전말과 진시황이 꿰뚫어보는 사건의 전말, 다시금 이연걸이 말하는 사건의 진실, 그리고 진시황의 회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각각의 시점은 붉은색, 푸른색, 녹색, 흰색으로 나뉘는데, 이 영화에서는 사실 내용보다는 이 색의 조화가 주요 볼거리라고 생각합니다.
내용 자체는 무협물이라기보다 오히려 선문답물(?)에 가깝더군요. ‘와호장룡‘을 보면서 동양인인 제가 오히려 좀 거리감을 느꼈던 것과 비슷하게, 이번에도 동양적이라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동양인인 저에게는 확 와닿지 않았고, 오히려 서양인들이 보고 열광할 동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정답만을 잘 골라서 서양인들 앞에 숙제를 제출하고 있는 감독을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워낙 오버가 심하다는 말을 듣고 가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그렇게 보기에 우습지 않았고(단지 그 죽기 전에 2바퀴 반…은 좀…), 그런대로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또, 이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란 은행잎 사이의 전투라든지, 등장인물들이 입고 나오는 색이 너무나 고운 옷들, 그리고 마치 그린 듯한 풍경들은 어느 영화에서 이런 것을 볼 수 있을까 싶더군요.
무엇보다 간만에 장만옥, 양조위, 이연걸, 장쯔이를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즐거웠는데, 여전히 장만옥 특유의 카리스마가 멋있었습니다.(장쯔이는 요즘 나오는 영화마다 어째 삽질이다 싶긴 합니다만..)

보고 나서 남은 의문은 왜 장만옥과 양조위는 굳이 대낮에 3천명의 군사를 뚫고 ‘암살‘을 하러 갔는가… 로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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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responses

  1. Tom

    ‘영웅‘… 말그대로 중국판 ‘쉬리‘라고 할 밖에는….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