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친정엄마와 함께 혜린이 2차 독감 예방주사를 맞히러 영동세브란스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차를 세워둔 지하 2층 주차장까지 내려왔더랬습니다.
평소처럼 뒷자석에 타려고 차문을 열었는데 옆차와 간격이 좁아서 문이 조금밖에 안 열려서 혜린이를 안은 채로 타기가 좀 버겁더라고요. 그래서 운전석에 앉은 엄마에게 ‘차 좀 빼면 탈게’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일단 문을 닫았지요.

그리고 엄마가 차를 빼시더니…

그대로 휙 주차장 밖으로 나가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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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해서 차 뒤를 향해 엄마를 큰소리로 불러댔으나 들릴 리가 없지요.(…) 게다가 가방을 먼저 차안에 던져넣었던 터라 정말 지갑도 핸드폰도 없이 앞에 혜린이만 달랑 안은 채로 주차장에 버려진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옆에서 주차요원이 저만큼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더군요.
서둘러 가까이 다가가 ‘저기 핸드폰 좀 빌려주실래요’ 라고 물어보니 ‘나갔다가 한바퀴 돌아서 다시 들어오시려는 거 아닐까요’ 라고 하더군요. ‘그럴 것 같지 않은데요’ 라고 말하니 잠자코 핸드폰을 건네주더군요.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니 벨이 울리는데도 한참을 안 받으시는 겁니다. 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러다가 집에 도착하고 나면 알아차리시겠다 싶어 잠시 난감해하고 있는데 그제서야 엄마가 당황한 웃음(?)으로 전화를 받으시더군요. 

차를 돌려 병원 1층 입구쪽으로 돌아온 엄마 말씀이 차를 몰고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핸드폰 음악이 들려와서 뒷자석에서 제가 혜린이에게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주는 건가 싶어 그냥 계속(…) 운전을 하시다가 문득 너무 조용한 것 같아 ‘혜린이가 왠일로 이렇게 조용하니~?’하고 백미러로 슬쩍 뒤를 보셨는데…

‘가 없더라는 겁니다.(여기에서 중요한 건 딸이 없는 것보다 손녀가 없다는 것만 보이셨다는 점) 그때서야 자신이 듣고 있던 핸드폰 음악소리가 자신의 벨소리였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전화를 받고 되돌아오신 것이지요.

당할 때는 정말 황당했지만 그 뒤로 내내 생각할 때마다 당시의 무슨 개그 콩트 같은 상황에 헛웃음만 실실 나네요. 앞으로는 아무리 차 문이 좁게 열려도 악착같이 타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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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responses

  1. 아니 어머님께서 우째 이런…;;; (이라지만 혜린이가 좀 이쁘긴 하우 낄낄)

    1. 리츠코

      이제 엄마의 1순위는 혜린이…ㅠ.ㅠ

  2. 김소연

    ㅋㅋㅋㅋㅋㅋㅋ 30년는 더 울겨먹을 수 있는 추억이 되겠는걸요. 덕분에 웃고 갑니다~~

    1. 리츠코

      약발이 오래 갈 이야기라지. ^^

  3. 많이 당황하셨겠네요. 어머님께서 그래도 일찍 아셔서 다행이지 혹시 몰랐으면 집에 가서 당황하지 않으셨을까 싶은.^^:

    1. 리츠코

      집까지 가셨더라면 그 동안 저는 더 당황했을 거예요. ㅠ.ㅠ

  4. …… 개그만화의 일부분을 본 듯한 느낌이……. orz

    1. 리츠코

      ……..뭐 인생이란 여러 장르의 드라마가 섞이는 것 아니겠어요.( ”)

  5. 혹시 뭔가 섭섭하게 해드린 것은 없나 곰곰히 생각을 해보시는 것이……
    아무튼 리츠코님을 위해 서태지의 필승 초반부를 무한 반복 플레이 해드리겠습니다. (난 버림 받았어. 한마디로 보기좋게….)

    1. 찰싹(오늘도 변함없이 종이부채로 때린다)

      누누히 말하지만 이님은 좀 맞아도 됩니다.

    2. 맞아도 싸네요 (…)

    3. 리츠코

      알아서 모든 조처가 끝난 상태로군요. 호호.

  6. 리츠코님, 버림받으셨…

    손녀없는게 눈에 더 들어오시나 보더라고요. 울 엄니도 그러시던데.(…)

    1. 리츠코

      손주를 보시면 그렇게 맹목적으로 예쁘게만 보인신다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