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유품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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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거의 책은 손에 안 잡혀서 놓고 있었는데 문득 타임라인에서 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밀리 결제하고 너무 제대로 못 쓴다고 초조해하고 있었는데 보고 싶을 때 도서관까지 갈 필요없이 바로 후루룩 잡을 수 있는 점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하다.

작두님 따라 읽기 시작했는데, 시어머니 집에 남편이 따라와서 ‘못 버린다’ 시전하는 데서 뒷목 잡고 이걸 하차해 말아 하다가 점심 때가 돼서 밥 먹으면서 옆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서 마지막은 어떻게 될 것 같아? 그 남편은 살아 있을 것 같아?’ 라고 물었다. 내가 평소에 보던 장르라면 남편도 쓰레기 봉지에 묶여 나갔겠지만 이번 책은 그렇지 않아. 😑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맨 끝을 먼저 보니 마저 읽어도 될 것 같았다. 나중에 작두님 말씀으로는 이 작가는 고구마로 시작해서 고구마 크림으로 끝난다고 하셨는데 다 읽고 나니 무슨 표현인지 잘 알 수 있었다. 😅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 홀로 살던 시어머니가 돌연 돌아가셨다.
오십 중반인 며느리 모토코는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시어머니 집을 찾는데, 처음엔 스무 평 남짓 집이라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유품정리를 시작하지만 집안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방대한 양의 유품들에 아연실색. 이윽고 절망하고 만다.

주인공 모토코는 반면교사를 잘 하는 ‘좋은 사람’이고 그래서 이 이야기는 한층 따뜻하다.
그녀가 마냥 시어머니만을 욕하거나 친정 엄마만을 좋게 봤다면 이야기는 그저 어느 며느리의 푸념으로 끝났겠지만, 마침 그녀가 친정과 시댁에서 동시에 겪게 되는 여러 상황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의 고정관념을 고쳐나가는 모습이 이 소설에서 내가 제일 좋았던 점이고 기억해두고 싶은 면이었다.

다들 부쩍 ‘타인의 침범’을 질색하며 ‘내 공간’을 지키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지만 태어나서 1년 가까이 걷지도 못하는 인간이 이렇게 살아남은 건 타인과 공존했기 때문일 거다. 중간까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던 이 이야기도 뒤로 갈수록 ‘타인’의 도움과 그 감사함, 그리고 내가 먼저 내미는 호의에 대해 온화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아직 주변에 가까운 어른들은 다행히 건강하시지만, 몇년 전 희연 언니가 갑자기 떠나고 언니가 임대 중이던 창고를 갔던 이후로 ‘내 눈앞에 두고 보지 않는 것을 굳이 공간을 마련해 보관하는 것’에 대해 생각이 좀 많아졌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한 집에서 대대손손 살아가던 시절은 진작에 끝났고, 내가 죽고 남을 사람들을 생각해서도 나의 주변은 적당히 가다듬으며 살아가야할 것 같다.

이렇게 누군가의 추천으로 책을 잡으면 평소의 나라면 손이 안 갔을 장르를 접할 수 있어 좋다. 🙂 일본 소설 특유의 따뜻한 이야기. 그리고 그곳에 잠시 머물러 봐서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도 장점.(초반에 읽으면서 노인분 혼자 월세 8만엔의 3DK에 사신다기에 꽤 여유있으시구나 했음;;)

4 responses

  1. 낙원의샘

    한집에 오래살면 아무래도 이런저런 짐이 늘어날수 밖에 없더라고요. 저도 16년만에 이사가면서 그 좁은 집에 이렇게 짐이 많다니 새삼 놀랐었네요. 16년동안 한번도 안 쓴 물건들을 ‘언젠가 찾을지도 몰라’ ‘언젠가 쓸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고서 쌓아두고서 공간을 허비했다는게 아깝더라고요.

    하지만 그래놓고 지금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으니…-.- 겨울이 오기전에 내 방 정리부터 좀 어떻게 해봐야겠네요.

    1. Ritsko

      이사가 너무너무 귀찮은 일이지만 짐을 한번 정리하는 데에는 그만한 게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짐정리하겠다고 정기적으로 이사를 할 수도 없고. -_- 가끔 어디 한구석이라도 훅 털어내면 남은 몰라도 나는 개운하죠. 저도 미루던 수납장 정리를 좀 해야 하는데;;

  2. 장미의신부

    표지 그림 보고 매우 궁금해졌는데…설마 유품에서 정말 토끼가 나온건 아니겠죠? -_-;

    1. Ritsko

      실제로 토끼가 나오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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