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우리집 같은 라인 19층에 린양보다 한 살 많은 남자아이가 같은 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린양과 같은 반이었다가 좀 지나서 자기 학년에 맞는 레벨로 진급을 해서 학원 시간이 우리 다음 타임으로 이동을 했더랬다.

나는 그 집 엄마랑은 그냥 엘리베이터에서 오다가다 마주치면 인사 정도 하는 사이고(자주 마주치니까;;) 쌍둥이네 언니는 아무래도 발이 넓으시다 보니(…;) 그 집에 터울이 큰 형이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는데 오다가다 그 집 엄마가 애 내려주고 가는 걸 보시면서 나한테 몇 번 ‘우리 애들 데리러 올 때 저 집 애를 태워준다고 할까?’ 하시더니 지난주에는 학원 앞에서 만난 그 집 엄마를 보시고는 그 엄마에게 가서 ‘우리가 애들 데리러 가는 길에 태워다줄테니 끝나고 데리러만 가시라’고 말을 꺼내셨다.

나야 옆에서 별다른 발언권이 없는 입장이라 보고만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같은 학년 친구도 아니고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렇다고 마냥 호의를 베풀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고) 굳이 번거롭게 남의 집 애를 데려다주겠다고 하시는 이유가 뭘까 좀 궁금했는데 그 집 엄마와 이야기를 마치고 차로 돌아와서 웃으며

“저 집 큰 애가 한참 바쁠 때였던 것 같아서 물어보니 역시나 올해 고3이라잖아. 내가 큰 애 고3일때 쌍둥이들이 어려서 정말 힘들었거든.(그 와중에도 큰 아들이 저녁까지 급식 먹기 지겹다고 했다고 내내 저녁 도시락 싸서 학교로 갖다주고-그래서 형부는 저녁시간에 2시간 정도 집에 왔다 다시 회사 가셨다고…;-, 한밤중에 끝나는 학원 시간 알람 맞춰놓고 가능하면 차로 픽업하러 가셨다 했으니 정신이 없을 수밖에…)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지.”

라고 하셔서 무의식중에 열심히 앞뒤 계산하고 있던 내가 무안해졌다.

결과적으로는, 태워주기로 했던 날 그 집 엄마에게 연락이 와서 그 집 아들이 숫기가 없는 타입인지 모르는 아줌마 차를 타기 쑥쓰러워 안 타려고 한다고 거절하셔서 없던 일이 됐지만 그래도 그렇게 제안을 받았던 그 집 엄마도 한동안 마음만은 고맙지 않으셨을까.

애 낳고 한 십여년동안 애를 축으로 여러 사람들을 새로 만나면서 그 사이에 호감을 가졌다 상처받거나 실망하는 일도 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누군가에게 실망을 줬을 수도 있다보니 요 1-2년동안은(특히나 린양 1학년 때 반이 워낙 엄마들 관계가 헬게이트였던지라) 사람을 대할 때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며 대응하는 편이었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생각이 많았다.

더불어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게 다시 한번 든든(?)하기도 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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