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보통 뭘 사달라는 일이 잘 없는 린양이 웬일로 학교 애들이 다들 카카오 캐릭터가 그려진 실내화를 신는다며 사달라길래 실내화는 신어보고 사야하니 애들한테 물어봐서 파는 곳을 알아오면 사주겠다고 하고 며칠 지나갔는데 화요일쯤인가 ‘이마트에서 파는데 친구 걸 신어보니 220이면 맞더라’며 주문해달란다.

이마트몰에서 검색해보니 무려 쓱배송으로 파는 중.
생각보다 가격이 좀 있어서 ‘실내화 치고 비싸다’고 린양에게 강조하며(…) 장볼 것들과 함께 주문을 넣어놨는데 그날 밤에 무슨 생각이었는지 검색을 다시하다보니 쓱배송은 아닌데 무료배송에 3천원 가까이 싸게 올라온 게 있는 것이다!(…)

다음날이면 받아볼 수 있다고 엄청나게 기대하며(요근래 그렇게 린양이 갈망한 무언가는 처음인 듯…) 잠이 들어서 그냥 둘까 하다가 3천원이면 좀 아깝잖아 싶어서 주문을 변경하고 다음날 아침에 린양에게 이러저러해서 주문을 새로 해서 하루 정도 더 걸릴 것 같다고 이야기하니 알았다며 등교.

그리고 실내화가 도착할 다음날. 학교 갔던 린양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너무 초조해하며 ‘알고보니 실내화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어떤 걸 주문했는지 알고 싶단다.
내눈에는 똑같이 뵈길래 주문했는데 두 가지가 가격만 다른 게 아니라 디자인도 달랐던 거.

이럴 때는 꼭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지. 내가 취소한 쪽이 린양이 원했던 버전.
“아, 비슷한 거 같은데 그냥 신어~!”라고 말은 했는데 정말 나라 잃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혼날까봐 뭐라 더 말도 못하고 얼굴만 빨개지는데 마음이 약해진다.(…)

어쨌거나 자세히 안 보고 마음대로 주문한 건 내 실수이니 이왕 사주는 거 기분 좋게나 신어야지 싶어서 방에 들어가 좌절 모드에 들어간 린양을 불러다가 ‘엄마가 실수한 거니 이번에는 새로 사줄게’ 하고 다시 이마트 쓱배송으로 주문을 넣었다.

이게 어제까지의 일.

그리고 오늘.
오전 중에 실내화는 도착했고 저녁 하던 중이라 집에 온 린양에게 ‘실내화 왔으니 신어봐’ 라고 말해주고 린양이 실내화를 부엌쪽으로 가져와서 맞는지 신어보는데 딱 봐도 실내화가 작아보인다.
순간 짜증이 올라서 ‘니가 신어봤다며’ 했더니 ‘작지 않다’고 우기며(아무리 봐도 꽉 맞는데) 신겠다고 방으로 가져간 후.

나는 저녁준비 대충 마치고 마루에 왔더니 오늘 도착한 실내화가 뜯지도 않고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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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신어본 거야….

왜 꼭 왼쪽이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네….

린양을 불러다가 ‘오늘 온 건 여기 있는데 어제 건 왜 뜯어 신어본겨’ 했더니 ‘어?’ 하며 새로 온 걸 뜯어 새로 신어본 결과 이 버전은 사이즈가 맞는다.(얘가 좀 크게 나온 모양)

문득 생각이 나서 ‘너는 두 개 구분도 못할 거면서 뭘 그렇게 꼭 그거야한다고 우긴거냐!‘라고 잔소리했더니 갑자기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한다.

‘실은 자기가 원하던 게 아닌 걸 알고 있었는데 또 잘못 주문한 걸 엄마가 알면 실망할까봐 그냥 맞는 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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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쉿!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수상~하다는 눈빛을 쏴주고 다시 저녁 챙기러 부엌으로 가는데 쫓아오며 계속 어필한다.

“믿어달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 그래~’하고 대충 대답해주면서 생각해보니 처음 실내화 신어볼 때 그렇게 기다리던 거에 비해서 리액션이 그렇게 훌륭하지 않았던 게 맞긴 한 듯.
저녁 내내 믿어달라고 호소 중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이 말한 그런 훌륭한 이유는 아니었을 것 같고 그 시점에서 아니라고 했다가는 나한테 깨질 게 무서워서(두번째 주문할 때는 본인이 상품 사진 보고 맞다고 컨펌을 했으니) 넘어간 걸로 정리.(…)

대체 뭐가 다른 거야 하고 태그를 한참 보니 제품 이름이 ‘미세’하게 다르다. 에레이….

그리하여 집에 220 정사이즈(…) 라이언 실내화가 한 켤레 남게 됐다.(반품할래도 배송비 떼고 나면 환불받을 돈도 거의 없을 거 같아 그냥 둘 생각이긴 했다만)

그냥 처음에 주문하고 웹서핑 하지 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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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1. 아니 어머니, 두 개가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꽈. 이거슨 코랄을 핑크라고 우기는 것과 다르지 않음인 것을!

  2. 왜,애가지고 난리여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