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그래도 바론은 폼난다.T.T

‘고양이의 보은‘이 개봉 중입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그 원작인 ‘바론 고양이 남작‘도 발매 중입니다. 몇번 언급한 적 있지만 저는 이 ‘바론 고양이 남작‘때문에 너무 고생을 해서 애니메이션도 정나미 떨어져서 못볼 것 같았는데, 애니메이션은 재미있더군요. ^^ 그리고 뜻밖에도 원작을 죽어라 보고 가서 오히려 애니메이션의 소소한 재미까지 모두 즐길 수 있었습니다.

각설하고.
이 바론은 정말로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스트레스 만빵인 작품이었고, 사연도 무지 많았더랬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에 가져온 것은 팀장님이셨는데 그때 한참 일본에서 고양이의 보은을 개봉하고 만화책이 잘 팔릴 때였지요. 벌써 한 1년은 넘은 것 같네요. 일본 출장에서 이 책을 사오시더니 검토를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소연씨가 읽어본 후,
“밋밋해요.”
“밋밋하다는데요.”
“아냐, 그래도 애니메이션이 개봉하면 기본은 팔릴 거야~ 오퍼 넣자~”
(생각해보면 항상 이런 패턴인 듯. -_-)

오퍼를 넣었습니다.
일단 당시에 좀 뜨는 작품이라서 그랬는지 마찬가지로 다른 출판사에서도 오퍼가 들어왔다며 보증부수를 올릴래, 포기할래 하는 통지가 날아오더군요. 저랑 소연씨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넘기죠.” 그랬더니 우리의 팀장님, 널름 보증부수를 올리셔서 결국 우리에게 라이센스가 넘어왔습니다. -_-;(한마디로 이놈의 책은 딴 책보다 더 팔아야 한다는 소리)

계약서가 오가고 난데없이 일본쪽에서 요청이 오기를,
“히이라기 선생님(작가)께서는 이 작품을 그리실 때 효과음 레터링도 모두 ‘그림‘이라 생각하며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책을 낼 때 지우지 마시고 옆에 해석만 붙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을 두드릴 소리?
“국내 실정상 안 됩니다.”
이때, 우리는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_-; 그 토쿠마 쇼텐이라는 출판사가 얼마나 징한 곳인지를.
안 된다고 하니 우리가 작업한 걸 미리 보여달라더군요. 미리 작업한 몇 장을 일본에 보내자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드신답니다.”(씨..뎅…)
이 시점에서 뭔가 앞으로도 피곤하겠다는 걸 직감한 소연씨와 나는 팀장님에게 ‘이거 우리 못해요‘라고 선언을 했고 국제부에서도 일본에 “유감이지만 그냥 없던 이야기로 하자”고 통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뢰를 잘 피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로부터 1개월 뒤.
일본에서 통지가 왔습니다.
편집부에서 선생님을 ‘잘 설득‘해서 라이센스 진행을 하기로 했고 그쪽에서 데이터를 제공할 테니 그걸로 작업을 했으면 한다고.(누구 마음대로 니네 선생님을 설득하랬냐!!)
저는 그 시점에서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 ‘데이터 원고‘라는 것이 적어도 효과음 레터링이 따로 레이어 작업이 되어있는 파일일 것이라고.
도착한 시디 안에 들어있는 데이터는… 말 그대로 원고를 ‘스캔‘한 것이더군요. -_-;

이제부터 우리 앞에 놓은 작업은…
원본 데이터를 열고 그 안에 있는 글씨와 효과음을 모두 ‘지우고‘ 거기에 새로 작업을 해서 ‘입힌다‘…
지금까지 대체 어느 출판사에서 이런 무쉭~한 방법의 만화 작업을 했겠습니까. -_-;

이 원고를 한컷한컷 고쳐서
이렇게 만드는 겁니다. -_-

스크린 톤 부분을 지우고 없던 걸로 만든다는 게 컬러 그림 지우는 작업보다 수십배 시간과 손이 들어갑니다. 컬러 그림이야 안 되면 슥슥 뭉개면 되지만 스크린 톤은 잘못 지우면 모아레가 생깁니다.
우선은, 대체 이 작업을 해줄 곳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만화작업‘을 알면서 모두 디지털 작업을 하는 곳이라면 거의 ‘전무‘합니다.
결국은 현재 뉴타입 작업을 하고 있는 출력소에 작업을 맡겼습니다.(맡아가면서도 죽으려고 하더군요)

꾸물꾸물 작업은 진행되고, 난데없이 ‘고양이의 보은‘의 국내 개봉일이 잡히려고 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단권짜리에, 애니메이션이 없으면 밋밋한 이 작품을 개봉과 맞추지 못한다면 그때야말로 날 새는 겁니다.
그때부터 서둘서둘 일을 진행시키니 미술작업하는 곳에서는 그야말로 아우성. 게다가 일본에서는 이번 원고 작업 역시 ‘미리 보고 싶다‘는 미친 소리까지!!(이 토쿠마 것들을 정말~~~)
한권 전체를 미리 보고 싶다고 요청이 왔길래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는 하지도 마라는 답변과 함께 일단 일부만 보내겠다고 했는데(아아, 불쌍한 을의 입장), 작업을 하다보니 일정은 빠듯한 데다가 미술 작업하는 쪽이 만화 작업을 해보지 않은 곳이다보니 원고도 어째 엉망인 겁니다.
일단 배째자는 심정에 작업 중인 원고를 교정을 뽑아 일본에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변.
“이 원고는 작가 선생님(캬악!)에게 보여드리지도 못합니다.”
그 시점에서 정말로 지불했던 로열티고 뭐고 다 포기하고 계약 파기하고 싶더군요. 국제부에 ‘이 이상은 힘들고 아무래도 계약파기를 해야겠다‘고 하니 국제부로서도 난감해하더군요(어찌보면 새우등 터지는 입장). 일본에 그렇게 말을 하니 일본 쪽도 당황을 했는지(왜?) 그러면 ‘여기랑 저기랑 조금만 고쳐서 다시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더군요. -_-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심정으로 미술 작업한 곳에 난리를 뒤집었더니 결국은 뉴타입 쪽에서 주로 일하시는 손재주 좋은 분이 나서서 작업을 잡아주시더군요.
그때부터 원고는 서서히 제 꼴을 갖추어 가고…

시간은 흘러흘러 개봉이 며칠 안 남은 시점, 게다가 그 다음주는 저랑 소연씨, 그리고 작업하는 분까지 휴가를 낸 상태에서 아직 이것저것 마무리할 건 산더미. 여차하면 휴가를 날리고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자 그야말로 세 사람은 눈이 휘떡 뒤집어져서 다른 원고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출력소에서 작정하고 날밤을 새기로 했습니다. 한쪽 맥킨토시에서 저는 말칸 작업을 하고, 출력소 분은 효과음 레터링 부분을 잡고, 소연씨는 교정을 보고…
날밤을 꼴딱 새고 그야말로 하-얗게 태우고 그렇게 바론 고양이 남작은 원고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미로에 쫓기는
이들의 심정이었습니다

다시는 토쿠마에 오퍼를 넣지 않겠다는 각오와
일본에서 헛소리를 한다 싶으면 초장에 포기하자 라는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_-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애니메이션의 힘은 역시나 위대한지 책은 생각보다 잘 팔린다고 하는군요. 혹 서점에서 책을 보시거들랑 사시진 않아도 좋으니 한번 돌아봐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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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responses

  1. 파자마

    정말 긴장감이 느껴지는 글이네…-_-;;

  2. Dino

    정말 고생하셨군요…… –;

  3. hurricane

    헛소리를 할것 같으면 초장에 짚을 수 있도록 해야…경험과 이력이란게 그런거 아닐지…머리 쥐나면서 배우고…

  4. 정재훈

    구구절절하군요 (…)

  5. Tom

    이거 희극이야, 비극이야?

  6. 리츠코

    저는 히이라기 아오이는 신인인 줄 알았군요. -_-(그래서 왠 신인에게 이렇게 ‘선생님, 선생님‘하는 거냣, 이것들은! 이라고 분통도 터뜨렸음)

  7. 장미의신부

    히이라기 아오이면…미사님과 타입님(^^)이 좋아하셨던 ‘별의 눈동자의 실루엣‘ 작가 아닌가…(이 사람은 미야자키 때문에 참 엄하게 뜨는 듯…)

  8. 미사

    10권짜리 작품 딱 하나 10여년 전에 히트시키고 그 뒤로 영 사장된 작가로서는 모처럼 곤조를 부려볼 무대였을지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