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부제: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한 사랑 노래(부제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전공이 아닌 다음에야 시(詩)라는 걸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 데다가 소설이라면 모를까 시집을 일부러 사서 볼 정도로 감성이 풍부하지를 못하다보니 접해본 시라면 교과서에 실렸었던 것들이 대부분이네요. 그래도 생각해보면 그래도 교과서에 실렸던 것들 중에 조지훈의 승무라든지 한용운의 님의 침묵같이 꽤 좋은 작품들이 많았고 나름 다이제스트라면 다이제스트였지 않나 싶습니다.

갑자기 쌩뚱맞게도 중2때쯤에 교과서에 있었던 이 시가 생각나서 찾아봤네요. 이런저런 일제시대 시인들의 시대색 짙은 시들 사이에서 가장 현대적이고(실제로도 그 중에서 드물게 현대 시였지만) 고만한 나이의 감수성에 폼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아무래도 박사고깔에 나빌레라보다는 사랑의 시 쪽이…-_-;).
게다가 당시에 그 시 부분 단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시험 문제는 항상 여기에서는 얼마 나오지 않았던 기억도 있군요(하긴 낼 문제가 별로 없을 법도 함).
오랜만에 다시 찾아 읽어봐도 그 느낌은 참 애잔하면서도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