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2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제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엎드려 이 글을 씁니다.
괴뢰군은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은 겨우 71명 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님!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하고 부르며
어머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눗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같은 내복과 제가 빨아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님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를 문득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님!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님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못 만나고 죽을 생각을 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어머님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님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를
벌컥벌컥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살아서 다시 쓰겠습니다.
어머님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살아서 갈테니깐요..

국군 제3사단 소속 학도병 이우근의 편지
1950년 8월 10일 포항여중 앞 전투에서 16세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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