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지난 주던가,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롱패딩을 꺼내 입고 나갔는데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보온이 안 돼서 이게 언제적 거더라, 가계부를 뒤져보니 2017년에 산 물건이었다. 2~3년 잘 입고 슬슬 새로 사야지 하던 차에 코로나가 시작돼서 지금 사면 몇 번이나 입겠나 하며 안 사고 계속 해를 넘겼던 모양.
한동안 계속 추울 것 같아 부랴부랴 두번 쯤 가격이 떨어진 세일품 중에 한 벌 적당히 주문해 이번 한 주 잘 입었다.

염색을 안하기 시작하니 점점 더 귀찮아져서 이제 거의 전체가 내 머리색인데 그랬더니 예전 머리색에 맞춰 샀던 아이브로우 색이 하나도 안 맞는다. 머리색은 짙은데 눈썹색은 밝으니 어딘가 어색해 보이고… 당분간은 염색할 일이 없을 것 같아 마침 지나는 길에 보이는 올리브영에서 머리색에 좀더 가까운 아이브로우를 새로 샀다. 사는 김에 아이라이너도 하나 집어오고.(그런 데에 들르면 사려던 것보다 꼭 더 사게 되는 게 문제)

누구를 만나러 나가거나 한 지도 한참됐고 정기적인 외출이래봤자 상담가는 정도인데 풀메이크업까지 하는 것도 웃겨서 톤업 크림에 눈썹 정도만 그린다.
처음에는 정말 정신이 없어서 맨얼굴에 마스크만 쓰고 눈썹도 그리는둥 마는둥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신이 좀 들고 보니 그래도 몰골은 기본으로 갖추고 싶어져서 화장품들을 좀 솎아보니 화장품 바르는 순서도 금방 생각이 안 나고 꼬박 2년 넘게 안 쓴 것들이 잔뜩이라 왠지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는데 시간만 훌쩍 지나간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던 글리터나 섀도우들도, 특히 립스틱 계열은 코로나가 지나갔을 때쯤에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서 쓰지 못할 테니 언제 한번 날 잡고 이미 오래된 것들은 버려야겠다.

나는 공황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집 밖으로 못 나가는데 그럼에도 세상은 계속 흘러가고 있으니 이러다 드디어 마스크 벗고 모든 것이 끝나는 날이 와서 집에서 멀리 나서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게 변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을 가끔 한다.
마치 잠들었다 깨어 마을에 내려오니 20년쯤 지나 있었던 립 밴 윙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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