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한때 한국 영화계에 ‘조폭‘이 들어가면 반드시 뜬다든지, 뜬금없이 ‘동갑내기 과외하기‘같은 영화가 왕창 대박을 터뜨린다든지… 영화 쪽 일을 하고 있는 친구의 말처럼, 관객의 취향이란 참으로 알 수 없고 그래서 가끔가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맥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무언가 엔터테인먼트적인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딜레마가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이번 ‘살인의 추억‘을 보고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래도 아직 ‘좋은 영화‘는 성공한다는 증명이 된 것 같아 기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비교가 된 건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외화 CSI 과학 수사대. 게다가 이번주 방영분이 마침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였는데 그 이야기에서도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나니 수사 방식이 완벽하든 현장 보존이 완벽하든 범인이 한수 위일 때는 어쩔 수 없고, 거기서 존 그리섬 반장의 말대로 ‘범인이 우리보다 한수 위라고 생각하고 수사를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면 지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으니까‘라는 말도 이 영화에는 잘 맞아떨어지더군요.

그쪽도 어차피 드라마이니 정말로 미국에서 그렇게까지 ‘완벽‘한 수사를 할까 싶지만 어쨌거나 양쪽의 ‘수사방식‘이라는 것이 웃음이 나올 만큼 차이가 나고 그만큼 이 ‘살인의 추억‘ 안에서의 수사라는 것은 그야말로 한국적입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한국적‘이라는 게 사실 알고 보면 이렇듯 가까운 곳에서 묘사할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닌가 싶네요. 열악한 수사 환경이라든지 시동이 걸리지 않는 맵시나 자동차, 파상풍에 걸린 지도 모르는 형사… 같은 것. 그런 이미지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의외로 ‘이래서 한국은 안돼‘라든지 하는 일반적인 분개는 하지 않은 채 영화를 다소 담담히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시간 반이라는 다소 긴 듯한 상영 시간 내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영화에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범인을 잡지 못하리라는 결론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라는 기대에 매달려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더군요.
혹, 영화의 내용이 너무 우울할 것 같아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안 보실 예정이었던 분이라면 한번쯤 보시길 권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너무 끝이 우울하고 찜찜하다‘라고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가서 그런지, 막상 영화를 볼 때도 생각보다 ‘재미있게‘ 볼 수 있었고 마지막 엔딩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ps. 야후에서 영화 관련 검색을 하다가 찾은 기사 내용.
→흥미로운 가설. 이 사건에는 흥미로운 데이터가 한가지 있다. 알루미늄, 망간, 티타늄과 같은 특정 원소의 수치가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경찰은 부근의 농기구 수리공을 범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원소는 공장 노동자나 수리공 외에 다른 직업군에서도 발견되는데, 그것은 바로 군인이다. 총기류를 다루는 자에게서도 이들 원소가 쉽게 검출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면 흥미로운 가설 하나를 만들어볼 수 있다. 그것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당시 경기도 일원에서 근무하던 20대 후반의 웨스트포인트 출신 미군 백인 장교라는 가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경찰의 수사선에서 제외되었던 진범은 증거품을 안전하게 제거한 뒤 성실한 근무기간을 채운 후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을 가슴에 품고서(이것은 소설 ‘철갑경찰‘의 작가 이상언씨가 오랜기간 나름대로 자료를 모아 추리해 본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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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responses

  1. 미사

    ‘그 영화‘는 너무나 뜨질 않아 피디박스에서도 아예 돌지를 않더군 -_-

  2. 리츠코

    그랬으면 차라리 성공했을지도…-_-;(그러고보니 그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

  3. gample

    전 제목은 기억안나고 카피만 기억나요. 그걸 아예 제목으로 하지 그랬나. -_-;;

  4. 리츠코

    그 영화는 결국 카피‘만‘ 죽인 거 아니었나요. ^^;;(그러고보니 블루스님은 뭐하고 사시나…) [06/11]

  5. 미사

    (음, 왠지 blues님 생각이 번득 -_-) [06/11]

  6. 미사

    릿짱의 글을 보면 역시 ‘그 영화‘는 제목보다는 카피가 죽였다는 것이 증명되는군 ^^;; [06/11]

  7. 리츠코

    그 살인범으로 추정되던 청년이… 얼마전에 ‘그 사람이랑 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의 주인공이더군. ==;;;;(이번에 영화에서 획기적으로 뜬건 그 맨 처음 용의자로 지목됐던 사람이던데. ^^; 진짜 모자란 사람인 줄 알았음. -_-;;) [06/11]

  8. rot

    송강호 연기야 두 말 할 것도 없고 서 형사 역도 잘해 냈던 거 같아. 점점 미쳐가는 모습이라든지… 살인범으로 추정되던 청년 연기도 좋았고>_< [06/11]

  9. gample

    강호씨 멋져용. [06/03]

  10. 리츠코

    그리고 역시, 이 영화는 송강호가 없었다면 절대 이만큼의 퀄리티는 나올 수 없었다는 점. 이번 영화를 보고 정말 그의 연기에는 혀를 내둘렀군요. [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