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인터넷에서 평도 꽤 괜찮은 편이고 회화 수업 시간에 파트너가 ‘예상 외로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성 친구랑 보기엔 좀 그렇다’라고 하기에 착실하게 여자분과 함께 보러 갔습니다.

기사에서나 영화 평에서나 보이는 ‘현대인의 쿨한 연애’에 대한 것을 기대하고 갔습니다만 다 보고 나니 그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모독이더군요. -.ㅜ
제 감상을 말하자면 이 클로저는 ‘동서고금을 뛰어넘어 씹을 수 있는 연애물’이었습니다. 특별히 쿨할 것도 없고 국내든 국외든 어디서나 있을 수도 있는 연애문제이지만 그 중에서도 최악의 경우만 잘도 추렸다고나 할까요.
함께 본 분의 표현을 빌자면 ‘나오는 남자 두 놈이 하나는 천하의 상놈, 다른 하나는 인생의 패배자’. 여자 입장에서는 이런 캐릭터가 극 중 내내 나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부담스럽지요. 게다가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하는 사진작가 안나 역시 어딘가 심하게 결핍된 캐릭터라서 맨 처음 등장할 때 가장 튀고 기이할 것 같았던 ‘알리스'(나탈리 포트만)가 없었더라면 정말로 다 보고 나서 허탈했을 것 같네요. 줄리아 로버츠나 주드 로(이 아저씨 머리선은 슬금슬금 올라가는 것이 조만간 이덕화에게 조언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음) 같은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상당히 눈에 띕니다(스트리퍼의 몸매치고는 좀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이런 사진을 보고 로맨틱 코미디라고 속지 맙시다…=_=;

아침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를 보고 나면 말도 안된다고 분노하면서도 끊임없이 씹을 거리가 생기는 것처럼 클로저도 다분히 그런 계열이었습니다.
비록 상황이나 설정은 괴로웠지만 어찌됐든 영화 자체는 그럭저럭 볼만합니다. 캐릭터들의 상황에 따른 태도의 변화도 세밀하게 그렸고, 장면이 한번 바뀔 때마다 시간이 휙휙 지나가는 방식이라서 사건 진행도 빠른 편이라 시원시원하더군요(이런 내용에 지루하기까지 하면 그도 좀 문제가 있긴 함).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연기자들 네 명의 연기가 상당히 훌륭했습니다(특히 ‘댄’의 그 비굴한 연기가 압권).

솔직히 다 보고 나니 과연 이 영화에 대한 남자들의 감상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무엇보다 영화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입을 쩌억 벌렸던 건, 극중에서 의사 ‘래리'(클라이브 오웬)가 이혼 서류에 사인을 받으러 온 ‘안나’에게 ‘너에게 속은 게 너무 억울하니 마지막으로 한번 자주고 가’라고 말하는 장면. 보면서 정말로 진심으로 의사들은 학교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 다음으로 ‘자신을 차는 여자에게 말하는 법’따위를 가르치는 게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서양에서 저런 공통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을 리가…-_-;

ps2. 재미 삼아 캐릭터 별 키워드 추가 중.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많으니 안 보신 분들은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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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sponses

  1. 리츠코

    siyang>댄은 글 끝쪽 “(특히 ‘댄’의 그 비굴한 연기가 압권)”에 있습니다. ^^;; 아무래도 영화다보니까 강조가 되긴 했지만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씩은 갖고 있는 일면들일지도 모르지요. ^^

  2. siyang

    싸이코라기보다..[누구던지] [인생살이가 그렇게 되면] [인간이 저렇게 될 수 있다] 라고 생각하고 모골이 송연해지던데요.
    그나저나 댄의 키워드는 못찾겠네요.. 그 천하의 루저군에 대해서는 써두지 않으신건가요?@_@

  3. 리츠코

    마아가린>정상인 사람만 나오면 영화가 밋밋하지 않겠음? ^^; 그리고 자세히 보고 있으면 의외로 주변에 저런 사람 있다네(사랑하기 때문에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는 게 ‘이해가 가면’ 너도 똑같은 놈이 되는 거지. -_-;).

  4. 마아가린

    어제 자기전에 보고…어찌나 황당하던지…-_-;;
    거기 나온 캐릭 전부다 싸이코라 확신함…설마..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_-;;
    p.s.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는게…당췌 이해가 안감…보면서 어찌나 짜증이 나는지…-_-;;

  5. 리츠코

    키딕키딕>그럴지도 모르겠다. -_-; 무엇보다 거기나 여기나 그 계층 사람들의 ‘우월감’이 그런 반응을 낳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
    박정운>’지금’의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과거’는 알 필요가 없을텐데 말이지요. 그 채팅 장면에서 번역은 정말 압권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영어는 철자가 길다보니 우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더군요. ^^;;;;(뷁 에서 거의 쓰러졌음..;)

  6. 보고 느꼈던 것은..
    네 이성친구가 과거에 뭘 했는지 캐묻지마라..(진실을 알면 다친다..)하고,어느나라나 통신어체라는 건 존재한다..였군요. 특히 중간에 둘이서 채팅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저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걸 깨달았다는..

  7. 키딕키딕

    정말 쩌억~! @O@ 혹시 의대 수업때 평범한 주파수로는 들리지 않는 파장으로 교육시키는 건 아닐까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