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봄 한정(-_-) 벚꽃향 화장실 탈취제.
놀러간 집에서 보니 향이 너무 좋아서 사러 돌아다녔는데 잘 없더군요.
겨우 한 곳에서 찾았는데 그 앞에 붙어있는 태그가 ‘봄 한정 상품’이었습니다. -_-;

일본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건 역시 드럭 스토어에 놓인 화장실 탈취제에서조차 쉽게 볼 수 있는 ‘계절 한정‘이라는 태그에서부터인 듯합니다.

…….그건 그렇고.
요즘 우리집은 봄맞이 집안 대정리 기간입니다.
며칠전부터 집 전체적으로 이것저것 손을 보기 시작했는데, 위치를 다시 잡아줘야 할 곳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이 집에서 짐을 처음 풀 때만 해도 집안일이라고는 전~혀 해본 적 없었던 데다가 당시 컴퓨터 조립에 정신이 없었던(태터 발표 때문에 핀치였었음. -_-) 대나무숲을 뒤로한 채 혼자 짐 정리를 다 끝내버렸으니 ‘어디에 뭘 두는 게 맞겠다’기보다는 ‘그곳에 공간이 있으니 물건을 둔다’에 가까웠지요.
그 뒤로도 사는 데에 별 불편은 없어서 그냥저냥 만족만족하며 살았는데 최근 일본어 수업에서 알게된 분들 집에 가보니 ‘이 집은 이런 게 저기에 있구나’ 하는 게 눈에 띄더이다.
머리에 가마를 이고 살든 젓가락으로 국을 떠먹든 신경쓸 사람 없는 곳에 떨어져 있다는 게 편하다면 편하겠지만 대신 컨닝할 곳 없다보니 참고 자료가 부족해서 시행착오도 배로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저녁 때 싼 조립식 수납장을 하나 사와서 식탁 위에 듬직하게 자리잡고 반찬 둘 곳도 없게 만들었던 전자렌지와 오븐 토스터를 그리로 옮겨버렸습니다. 갑자기 2배로 넓어진 식탁을 보니 속이 후련하네요.
수납 아이템에 맛을 들이니 갑자기 집안의 공간이 2배는 넓어질 듯한 기분이 들면서 난데없이 정리에 열을 올리게 됩니다.

40*65*30(cm)
집근처 무지양품에서 산 플라스틱 수납 서랍.
큼지막해서 안 들어가는 게 없습디다
이곳에서 무언가 물건을 사는 기준은 이걸 한국에 돌아갈 때 갖고 갈 것인가, 버리고 갈 것인가 입니다만, 이 플라스틱 서랍장은 제법 견고해서 가지고 돌아가도 될 것 같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_-;

물론 갑자기 집안 대정리에 들어가게 된 건 정말로 봄이 와서 마음이 동한 게 아니라 며칠 전에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만… -_-;

사건의 발단은 집들이 이후에 문간방에 방치해뒀던 새 그릇들 .
치워야 하는데 마땅히 둘 곳도 없고 해서 4월 1일에 손님이 오기 전까지만 어떻게 하면 되겠지… 했었지요. 방바닥에 그릇들이 널려있다보니 청소기 들고 들어갈 때 빼고는 잘 안 들어가게 되고 말이죠.
그러다 며칠 전 무심히 문간방의 벽장 문을 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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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지옥이 펼쳐지더군요.

실은 최근에 밖과 안의 기온차가 벌어지면서 우리집 문간방의 복도쪽에 면한 벽의 습도가 엄청나게 올라갔습니다. 창틀에도 물이 심하게 맺히고 벽장 안도 항상 눅눅하니 벽쪽에 물자국이 남아있는 정도였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참담한 사태가 벌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던지라 어딘가에서 물이 새거나 고장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대나무숲에게 맨션을 관리하는 부동산 측에 문의를 해보라고 메신저를 날리니 부동산에 가기에 앞서 대나무숲의 회사에 근무하는 일본 분에게 물어봤더군요.
돌아온 대답은 ‘그게 보통, 아마도 어디가 고장난 건 아닐 것임.

집은 남향인데 안방과 마루, 부엌까지는 해가 드는 위치, 나머지 문간방과 욕실, 화장실에는 해가 거의 들 수 없는 구조라 그런 것이니 빛이 안 드는 문간방은 겨울에 대부분 습기가 차서 매일 창틀도 박박 닦아줘야 하고 벽장 안에는 물먹는 하마를 4-5개씩은 깔아줘야 한다고 하더군요(일본에서 물먹는 하마가 왜 그렇게 싼가 했더니-대용량 제습제가 하나에 50엔꼴인 듯- 다 이유가 있었더란…)

이런 방을 멋도 모르고 한동안 방치했으니 무슨 짝이 났겠습니까.
벽장 안의 한쪽 벽에 곰팡이가 신나게 피기 시작했더군요. 내내 아파트에 살아서 생물 시간에 실험용 식빵에 핀 곰팡이 이외에는 별로 볼 일이 없었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광범위한 곰팡이는 처음 본 듯합니다. -_-
문제는 그 벽장안에 뒀던 건 코트와 같은 계절 옷들!!(평소 입는 것들이야 그렇게 비싼 것도 없지만 결혼하면서 준비한 옷들은 나름 고가품들이랍니다. -.ㅜ)
기냥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리고 싶은 심정을 추스리고 살펴보니 일단 피해는 그리 크지 않더군요(애매하게 벽쪽에 닿아 있던 대나무숲의 청바지만 하나 아작났음..-_-).
그때부터 혼자 낑낑대며 서둘러 행거 채로 끄집어내서 안방 벽장의 이불 있던 자리에 넣어버렸습니다(이 모든 게 하필 대나무숲이 회식하러 간 날 일어난지라 혼자 달밤에 체조를 할 수밖에 없었음).
이불을 넣을 곳이 있을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안방 벽장이 커서 위칸에 행거채로 다시 옷을 정리해넣고도 그 아래칸에 이불이 다 들어가더군요.

문간방 벽장은 곰팡이 정리 후 제습제 왕창 넣고 탈취제까지 넣은 다음 받았던 그릇들을 넣어버리니 딱이었습니다.
공간이 넓은데 그냥 단층으로 쓰자니 아무래도 아까워서 어제 여름옷 정리용으로 샀던 플라스틱 서랍장을 몇개 더 사다가 위로 쌓아버릴까 생각 중이로군요. 서랍장 안에 제습제를 각각 넣어버리면 좀더 안전하고 말이지요.

전업주부로 전직(?)한 후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밖에 다니다가 집에 있으니 갑갑하지 않느냐’입니다만 아직까지도 요리에서 곰팡이까지(…) 매일매일이 새 직업에 적응하는 생초보의 좌충우돌 나날인지라 도저히 갑갑할 겨를이 없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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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responses

  1. lazydog

    결로로 인한 피해 같군요. 기온차와 단열 문제 땜에 생기는… 우리단지도 베란다에 결로가 생겨서 말들이 많답니다. 더군다나 저희집은 베란다에도 마루를 깔았다는! (마루가 조금씩 트고 있음…) 같은동에 사시는 할머니들은 겨울 내내 마른 걸레 들고 사시는 것 같은데 저는 게을러서 그냥 포기했습니다. welcome to real world로 온 실감 나겠어요~.

    1. 리츠코

      여기는 단독주택은 말할 것도 없고 맨션조차도 단열이 별로 잘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_-;
      저도 날이 따뜻해질 때까지는 좀더 신경을 쓰고 있는데 뭐랄까 왠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 무한 반복 같아서 맥 빠져요.

    2. Tom

      좀 더 하드코어한 해결책이라면 안쪽 벽에 항균페인트로 도색을 하고 코팅하는 건데(별로 어렵지는 않음.), 빌려 사는 집에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참.

    3. 리츠코

      안그래도 네이버 지식인에서 봤는데 여기야 함부로 그렇게 하기도 힘들죠. –;;;; 그냥 매일 꾸준히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을 듯.

  2. 뭔가 삶의 애환이….ㅠ_ㅠ
    그 나라야 워낙 습한 나라니까 곰팡이도 더 잘 생기지 않을까.
    한국은 봄이야, 하늘도 뿌연 것이….-_-;;;;

    1. 리츠코

      삶의 공포가 닮긴 이야기지. -.ㅜ
      아무래도 섬나라라 한국보다 습한 것도 이유 중 하나인 거 같아.
      여기는 뿌옇지는 않은데 꽃가루 때문에 봄이 오면 다들 초긴장하나보더군. -_-;

  3. Tom

    쩝.. 옛날 생각난다.
    단칸방 살림에 자꾸자꾸 불어나는 짐.
    결국은 이런저런 수납함 많이도 샀었지. ;;;
    가격이 비교적 싸서 종이로 된 제품들 많이 샀었는데 그 뒤로 이사하면서 대거 정리.

    나도 어제 조립식 선반 사다가 서재로 쓰는 작은 방에 딸린 베란다도 정리했다. 베란다에 수납장이 하나 달려있긴 한데, 거기엔 와이프님께 무시당하고 있는 모델 kit들과 악기 하드케이스 집어넣고 나니 꽉차서 암 것도 못집어넣겠더라고.덕분에 보드 장비들이랑 차량용 공구들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그저 쌓여만 가고 있었지. 깨끗해져서 좋긴 한데, 이렇게 정리해 놓으면 넓어진 공간에 또 뭔가가 쌓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에 지레 orz.
    집안 정리 할 때 보면..
    ‘아, 이게 여기있었네?’ 라던가..
    ‘이런 걸 아직도 갖고 있었네?’ 라는 게 많아서..
    주섬주섬 내다 버릴 것들 챙기다 보면 그것도 한 보따리. 왕창 내다버리고 나면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까정 느껴지지. ^^
    하지만, 그게 뭐가 됐든지 간에 나중에 쓸일이 있어 찾아보면 꼭 ‘지난번에 정리할 때 버린 물건’에 끼어있더라고.
    orz

    * 곰팡이를 위한 팁 : 환기 자주해 주는 게 제일임. 습기 제거제 아무리 좋아도 결국 보조수단.

    1. 리츠코

      여기는 종이로 된 건 마땅한 게 눈에 잘 안 띄더라구요. 저도 예전에 집에서 쓰던 게 생각나서 좀 찾아보긴 했는데…

      안그래도 그 일본분이 창문은 그냥 열어두고 있으라고 해서 그 방 창문은 열심히 열어주고 있군요.

  4. 하임맘

    곰팡이.. 나도 지금 책장 뒷쪽에 살짝 생긴 듯한데..^^;
    살다보면 늘 정리와 청소가 필요한 듯..
    특히 애가 생기고 좀 크니 더 부지런 떨어야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열심히 정리하는 것도 살림하는 재미라우..^^

    1. 리츠코

      가구 뒤쪽은 말할 것도 없지.;; 다행히 우리집은 가구라고 할만한 게 별로 없어서 가구 피해는 적은 듯. 여기는 베란다 문까지 전부 이중창이 아니라 단일창이라서 아차하면 문틀까지 전멸이라우. =_=
      그래도 역시 싹 치우고 나면 후련해지는 재미는 있지. ^^

  5. 미사

    고생했군;;; 곰팡이와의 싸움은 정말로 조금만 한눈팔면 완패 -_- 같아. 으으, 곰팡이 다이기라이~~ ㅠㅠ

    1. 리츠코

      왠지 한국보다 곰팡이가 더 쉽게 생기는 거 같아요. -_-; 뿌려두기만 하면 되는 곰팡이 제거제가 있어서 그나마 좀 편하긴 한데 벽장 안에 거품투성이가 되는 곰팡이 제거제를 뿌려둘 수도 없고…-_-;

    2. 미사

      그게 습기도 많아서겠지만 복도식 아파트는 더욱 자주 생기는 듯해. 계단식에 다시 살게 되니 확실히 곰팡이가 줄어든 것 같아 너무 기쁨 ㅠㅠ

    3. 리츠코

      음… 복도식 아파트의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_-;
      나야 이전에 살던 곳이 계단식이었다가 이번에 복도식으로 와서 적응이 안되는 듯도 해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