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안의 정원

요즘 다니는 산부인과 바로 맞은편에 꽤 번듯한 두부 요리집이 있는데, 그 동네 사는 친구 말이 한번쯤 가볼만하다고 해서 맨 처음 가을이 만나러 갔던 날 점심을 그곳에서 먹었지요. 두부로 만드는 코스요리라고 해서 두부만으로 만들 게 그렇게 많은가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다채롭고 다 먹고 나면 배도 꽤 부른 구성이었습니다(양 많은 사람은 좀 감질날 수도 있을 것 같긴 함).
무엇보다 가게가 제법 운치있게 꾸며져 있어서 나중에 어른들을 모시고 식사하러 갈 일이 있으면 적당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번 시부모님이 들르셨을 때는 이미 예약이 꽉 차서 못갔었지요.

이번에 엄마가 오셨을 때는 아예 일찌감치 예약을 했더니 정원이 잘 보이는 개인실을 준비해주던데 훨씬 분위기도 있더군요. 메뉴는 지난번에 먹었던 가장 기본 코스로 시켰는데 이 코스가 베이스는 정해져 있어도 중간중간 나오는 메뉴들이 철마다 바뀌어서 지난번과 다른 요리들이 꽤 나와 이미 먹어봤던 저나 대나무숲도 새로웠습니다.

시작은 깨가 들어간 두부.
사진으로는 크게 보이는데 실제로는 지우개만합니다(…)
두부 치고는 좀 빡빡한 질감인데 굉장히 고소하더군요.
참 일식스럽다라는 인상을 주는 제철 요리모음…;
지난번에 왔을 때도 굉장히 화려하게 나와서 놀랐는데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구성으로 예쁘게 나와 눈이 즐거웠네요.
뒤쪽의 노란색은 레몬에 절인 고구마. 한입 먹으니 레몬향이 화악 퍼져서 놀랐네요.
왼쪽은 새우튀김, 잎에 싸인 건 장어초밥이더군요.
튀김옷이 특이했던 새우튀김. 몇개 더 주지 싶을 정도로 맛있었어요. -.ㅜ

이 집의 특징이라면 코스가 꽤 긴 편인데 나오는 것도 참 느긋하게 나와서 다 먹는 데에 2시간은 걸린다는 점일까요…; 이 날은 예약을 2시에 했었는데 다 먹고 나오니 4시였습니다.

왼쪽 위는 간장 양념을 바른 유부를 튀긴 것 같은데
위에 채썬 파를 얹어서 먹으라고 하더군요.
잘못하면 느끼할 것 같은데 파채 때문에 뒷맛이 깔끔했습니다.
오른쪽은 전형적인 일본 계란말이…;
여기는 요즘 아스파라거스가 제철이라고 아침마다 TV에서 손질하는 법, 요리하는 법을 해대는데 여기 메뉴에도 역시나 포함되어 있네요.
돼지고기 튀김에 단맛이 거의 없는 탕수육 소스를 뿌린 것 같았습니다.
위의 하얀색은 파…;
파를 이렇게 곱게 채친 건 별로 본 적이 없어서 신기하더라구요.
이 집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두부탕(?).
보이는대로 두부 자체의 맛을 즐기라는 염이 마구 올라오는 요리입니다..;
육수(?) 자체 간이 적당히 되어 있어서 간장 뿌릴 필요 없이 두부와 국물을 덜어 먹으면 적당하더군요.
일반 두부에 비해 두부맛이 정말 진합니다.
요렇게 밑에 불도 피워서 주는데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면 위에 막이 얇게 생기더군요.
그것도 나름 괜찮은 듯.

여기까지 먹고 이제 끝났겠거니 하면 나오는 게 무려 밥. 지난번에는 죽순이 들어간 밥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개살을 넣고 만든 것이 나와 살짝 비려 아쉬웠네요.

두부탕을 먹고 슬슬 배 두드릴만하면 밥이 나옵니다..;
뭐, 양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일단 밥을 먹어야 먹은 것 같은 동양인의 식성에 맞춘 걸까요.
반찬으로는 생선튀김이 나왔는데 사진으로는 못 남겼네요.
후식은 찹쌀 새알이 들어간 찬 단팥죽.
여기까지 먹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이 2시간이었습니다.

전형적으로 조금씩 자잘하게 천천히 나와 나중에 가서 배가 불러버리는 구성으로, 가격이 만만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본에 와서 일본식으로 무언가를 먹었다는 기념이 될만한 집이네요.(저나 대나무숲도 평소에는 거의 갈 일이 없더라구요)
요리를 내오는 여점원들이 모두 센과 치히로에서 센이 입었던 것처럼 소매를 묶어 고정시킨 전통옷을 입고 다니고 방에서 나갈 때 뒤로 해서 퇴장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습니다.
그래도 두부를 워낙 좋아하는 대나무숲은 두부탕을 혼자 1.5인분쯤 먹어치우니 이집 요리 만족도가 높은 편일테고 저는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나오는 구성이나 가게 분위기 때문에 좋아하는 곳이로군요.

ps. 아빠가 왔을 때 못갔던 건 집에서 거리가 좀 있어서..; 차별하는 거 아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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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responses

  1. 오, 진짜 일본식 식사다^^
    두부 좋아하긴 하지만 저렇게 먹다 보면, 분명 중간에 김치를 찾을 거 같아.

    1. 리츠코

      그러게. 그러고보니 저기에 김치만 나오면 진짜 퍼펙트할 것 같다. ^^;

  2. 정란마…아니 정가을이는 잘 자라고 있군요! ^^;
    두부가 아주 정갈하고 맛있어 보여서 글을 남기게 되네요.
    일본음식들은 많은 가공을 안하고 깔끔하고 예쁘게 담아서 내놓는 것이 그 멋이 있는 듯…^^

    1. 리츠코

      안 쓰기로 한 이름까지 굳이 챙겨 불러주실 것까지야…
      일본 요리가 워낙 먹기 전에 눈으로 한번 즐기는 것이라고들 하지요.
      유럽 여행 즐겁게 다녀오시길.

  3. 이쁜감자

    아아..
    금방이라도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질것 같이 맛있어 보이는 두부네요…
    (워낙 두부류를 좋아해서…)
    갑자기 뭔가 담백한것이 먹고 싶어지네요…

    1. 리츠코

      두부 좋아하는 사람이면 괜찮을 집이예요. 저 집 두부는 포장해서 따로 팔기도 하던데 별 요리에 안 쓰고 그냥 먹어도 맛있더라구요. : )

  4. 신혼여행으로 처음 일본 갔을때 먹은 일본정식이 정말 내입맛에 아니올시다여서..매우 실망이 컸었는데
    두부요리면 먹을만 할것 같아요.
    오호~ 다음에 간다면 꼭 가보고싶은데요~
    여기도..반찬은 접시당 500엔 추가인가요.
    단무지를..싸가야 하는것인가… (먼산~)

    이젠 태동도 느끼시겠네요^^

    1. 리츠코

      일본 요리가 한국식의 그 매운 맛이 전혀 없어서 보통은 입맛에 잘 안 맞죠.
      이 집은 요리가 나올 때마다 반찬이 같이 딸려 나오지요. 반찬이 추가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5. 삭은이~

    저는 예전에 화끈하게 쏜적이 있긴 한데 이렇게 제대로된데가 아니라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다음에 일본가기전에는 이런데 찾아서 예약해놓고 가야겠군요.

    아아.. 밥시간 30분 남았는데 리츠코님 너무해 T_T

    1. 리츠코

      도쿄 쪽으로 가면 저런 집은 더 비싸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 제가 간 집이야 주택가에 있는 곳이니…
      요즘은 인터넷에 워낙 맛집 정보도 잘 모아두니 미리 찾아보고 오시면 괜찮을 것 같네요.

  6. 그러고 보니 일본에 갈때 마다 和食라고 부를 만한걸 먹어본 기억이 없는데, 저런 집도 한번 가볼만 하겠네요.

    1. 리츠코

      초밥도 좋긴 한데 저런 집도 한번쯤 가보면 경험도 되고 좋을 것 같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