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격동의 컴퓨터 교체 시대를 보낸 이 중 한 명이었습니다.
국민학교 때는 프로그램 짠다고 MSX2사달라고 하고 열심히 게임만 했습니다.
X2가 나왔을 때는 디스켓 한 장에 야한 게임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 벅차했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컴퓨터 학원에 다니고 640K XT컴퓨터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허큘리스의 슬픔’이란 글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SIMCGA말고 SIMEGA란 게 있다는 소문을 믿고 정말 2DD 5장 짜리 SIMEGA를 받아서 깔다가 엄한 바이러스 걸려버린 경험도 있습니다.
삼국지 1을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삼국지 1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게임이었습니다. 불 걸리고 트릭 걸리고 그 턴에 안 튀면 그대로 전원 즉사.
삼국지 2도 열심히 했습니다. 컴퓨터랑 싸우는 건 지루했지만 사람 대 사람 싸움은 그럭저럭 재밌었습니다. 언제 한번 형의 세이브 데이터를 엎어 써 지워서 열라게 얻어맞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 다시 돌아보니 충분히 맞을 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국지 3는 하드 드라이브가 필요하다는 말에 한두 푼 모아서 하드를 샀습니다. (당시 20메가 20만원…) 그러나 AT가 아니면 삼국지 3가 구동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결국 좌절했습니다. 중2의 나이에 20만원은 지금의 200만원에 필적하는 돈이었는데…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소년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대학교도 졸업하고 회사 생활도 어언 5,6년차에 접어들고, 결혼도 해서 가정도 꾸몄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는 웹서핑 중에 갑작스레 찾아왔습니다.
三國志II豆知識
(6)貂蝉イベント発生方法(Win版、PC98版限定のはず)
1.プレイヤー君主が12.17.24.33の4国のみ領有し、12国に君主がいる。
2.10国が他君主が領有している。
3.交戦中の属領が無いこと。
そうすると翌季節に特別コマンドに「貂蝉」が現れる。
貂蝉に会うと他の属領に命令を下せないので注意しよう。
何度も会っていると…まあ自分の目で確かめてください。
즉슨, 삼국지 2에서 플레이어가 12,17,24,33, 4국을 점령하고 12국에는 군주가 있을 때, 그리고 10국은 타 군주가 점령하고 있을 때, 전쟁중인 속령이 없을 때 다음 계절에 특별 커멘드로 ‘초선’ 이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초선과 만나면 다른 땅에 명령을 내릴 수 없으니 주의하랍니다. 몇 번이고 만나다 보면…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보시오…
어랍쇼? 소년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삼국지 2에 그런 이벤트가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입니다. 낚인 것이 아닌가, 소년은 우선 낚시를 염두에 두고 웹 서핑을 더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관련 이야기는 이곳 저곳에서 많이 다루어지고 있었고, 더군다나, 초선 이벤트는 매달 매달 ‘초선이 벗는다’ 라는 갈수록 구라 같은 정보가 그것도 많이 잡혔습니다.
소년은 컴퓨터가 안 받쳐줘 삼국지 3는 손도 못 대고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만 나름 삼국지 2는 매우 빠삭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너무나도 충격이 컸습니다. 그래서 dos에뮬레이터 어쩌고 하는 dosbox를 구하고 삼국지 2 파일을 다운받았습니다. 의외로 아주 간단하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받으면 되는 거구나.
그래, 달리는 거야!
그런 거 안 나와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웹 서핑을 다시 해 보니 실은 동탁으로 해야 나온다는 정보가 나왔습니다. 위 정보가 적혀있는 사이트 주인에게 살의를 느낀 다음 동탁으로 다시 시작해 보려다가 소년은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구글 코리아에서 삼국지2 초선 이벤트로 검색했을 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 역시 이상했던 것입니다. 누군가 이 사실을 안다면, 더군다나 한글화 한 이들도 입이 있을 텐데 검색 결과가 하나도 없는 것은 너무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렇다면 영문판에는 있지 않을까?
그래서 소년은 동탁으로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옛날에는 자학 플레이라고 해 봤자 원소나 유표 정도였습니다만 동탁은 정말 너무 답답한 군주였습니다.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착하게 살아보려고 해도
부하라는 놈들이
하나같이 병신들인걸
나쁜 놈들 교화시키면서 동탁은 선정을 폈습니다. 동탁이 평화로운 시대를 이끌자 조조도, 원소도, 손견도 할 일이 없이 그냥 지네들 땅만 지키고 있었습니다. 태평성대로다.
그건 그렇고 땅은 차지 해야지. 달리자!
그런 거 안 나와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아하, 12,17,24,33 4국만! 소유하고 다른 땅은 비워둬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에라이! 이렇게 플레이하는 변태가 어딨냐 툴툴대면서 다시 모아 보았습니다.
그런 거 안 나와
더 이상 초선을 벗기고 말고 하는 게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소년은 남자의 자존심이 짓밟혔다는 생각에 치를 떨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사나이의 문제입니다.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불굴의 의지에 불타올랐습니다.
내가 한 짓이지만 참 지랄맞다 (…)
야후 옥션에서 일판 삼국지 2를 샀습니다. 가격은 500엔. 골동품으로도 어느 정도는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어이없는 가격에 그냥 밑져도 본전이다 싶어서 샀습니다. 아마 지금은 읽을 길 없는 5.25인치 디스크 때문이 아닌가 싶군요.
당연히 5.25 디스크를 어떻게 해 볼 자신은 없었습니다. 외장 드라이브도 팔긴 합니다만 그거 가격만 2만엔 대라서 그때부터는 배보다 배꼽이 하늘 땅 커집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판매자가 3.5인치 디스크에 백업을 해 준다고 해서 3.5인치 디스크도 같이 받았습니다.
자, 도착했어, 가슴이 두근거려.
안 읽혀
슬슬 지치기 시작합니다만 그래도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왜 안 읽힐까, 우리나라에는 그런 거 없는 거 압니다만 혹시 일본에는 3.5인치 레코딩 룰이 따로 있나 싶어서 또 구글의 힘을 빌렸습니다.
구글… 이 아니라 위키피디아 님이 설명해 주신 ‘3모드 디스크’란?
설명이 깁니다만, 하여간 일본은 지만 이상하게 놀아서 PC-98 시리즈 특정 메이커에서는 디스크 회전 속도도 다르고 용량도 다른 포맷이 있다고 하고, 그게 요즘 노트북에서는 거의 인식이 안 된다는 스토리가 됩니다. 소년이 공대생이 아니었다면 이 단계까지도 못 오고 대번에 때려쳤습니다만 공교롭게 그 소년은 꽁한 성격의 공대생이었습니다.
불굴의 투지로 소년은 소니 메이커에서 그 디스크를 인식하는 3모드 디스크 드라이브 드라이버를 다운 받아 설치했습니다. 이제 디스크를 읽는다!
일본산 DOS/V 에뮬 이야기 시작하면 또 혈압 오르고 입안에서 단내가 납니다. 하여간 고생고생해서 결국 일본산 삼국지2 기동에 성공했습니다. 소년은 자신 스스로 참 대견하다고, 스스로를 칭찬했습니다.
동탁으로 달리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 그걸 두 번 달리자니 소년은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모든 것은 초선누드
사나이의 신념을 위해서!
초선이라 합니다
꼭 한번 만나뵙고 싶었사옵니다 ♥
해냈다!
오늘 밤은 이걸로 참아 주세요
초선이는 아직 부끄럽답니다
…….. -_-;
초선 커맨드는 한달에 한번 가능합니다.
자, 다음은 한달 뒤.
초선이는 헤픈 아이가 아니랍니다
동탁님만을 사모하고 있어요♥
속에서 슬슬 욕이 나오려고 하지만, 자, 그럼 다시 한달 뒤…
이쪽으로 오세요
침상까지 안아서 데려가 주세요
이래놓고 한달을 또 기다리라는 건…
동탁은 정말 성인군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탁님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다음에 만나뵐 때는 꼭 ♥♥♥
또, 한달?
… 어디선가 많이 본 문구다 했더니 영락없이 핸드폰 메일 스팸…
왓더헬…
참담한 충성도… 하고는…
아니 왜, 초선이 혼자 유혹하고 혼자 자결했는데 왜 애들 충섬심이 떨어져!
다들 은근히 초선이를 노리고 있었던 거 아냐? 폭정해 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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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여간에 이번의 교훈은 역시 모든 일은 하면 된다. 시간이 걸려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사나이의 신념은 굳고 강하다.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소년은 그제서야 지금까지의 일련의 행위를 옆에서 와이프가 모두 지켜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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