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토요일 저녁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우리 세 식구는 일요일 오전에 대구로 내려갔다가 밤에 올라왔다.(srt 만세)

11월 30일에 생신을 넘기셨으니 94세셨고, 달리 병원 가실 일도 없으셨을 만큼 잔잔히 건강하셨는데 4개월 전쯤 뇌졸중으로 입원하시고 그 뒤로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하다 떠나셨다.
그 사이에 가족들은 격동의 시간이었지만 크게 보자면 큰 병으로 길게 고생하지 않으신, 그럭저럭 호상일지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습은 병문안을 갔을 때인데, 나를 알아보지는 못하시는 것 같으나 손을 잡으니 그 손을 도로 꼭 쥐고 도무지 놓지 않으며 한참을 빤히 보셨다. 마치 얘가 누구였더라, 열심히 생각하시는 마냥.

11월 초부터 몇번이나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연락을 받은 터라 그 사이에 조금은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영정 사진 앞에 서니 눈물이 막 쏟아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사진 속의 할아버지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먹먹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잔소리 때문에 내가 남보다 말이 유난히 빠르다는 걸 처음 알았던 게 생각났다.
내가 뭔가 열심히 말을 하면 할아버지는 희한하다는 듯 나를 보며 “누가 안 쫓아온다, 천천히 말 해라” 하셨는데 이 나이가 돼서도 말을 하다가 빨라진다 싶으면 할아버지 말이 생각나며 마치 브레이크 마냥 무의식 중에 속도가 줄어든다.
그럼에도 가장 최근까지도 할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너는 말이 빠르구나’하는 눈으로 나를 보셨다. ( ”)

어릴 때는 종종 장난 삼아 일부러 “그~러~니~까~ &&하~고~ **했~다고~~”라고 길게 늘여 말하곤 했는데, 그러고보니 할아버지가 원하는 내 말의 속도는 어느 정도였을까.
이제는 알 수가 없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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