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이것은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난 주위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과 가설과 검증에 대한 이야기다.

1.
십수년 전 일이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업계 사람과 깊게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내 대답을 듣는 상황이었는데 답변을 기다리는 그 사람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눈빛이 흔들리고 다리도 떠는 등 온 몸으로 조바심을 내던 그는 긍정적인 답변을 듣는 순간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면서 기뻐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 명예 등이 워낙 나보다 높아서 내 답변은 아무래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렇게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사람도 아직 칭찬이 고프구나. 어쩌면 이런 욕구는 세상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으며, 저축과 같이 일부 누적되긴 하겠으나 기본적으로 식사처럼 계속해서 섭취해야 할 지도 모른다. 이 일은 내가 ‘인정 욕구’라는 것을 강하게 인식한 한 사건이었다.

2.
사회로 나와서 일을 시작한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그 가운데 재미있는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화를 하다보면 ‘맞아요’, ‘좋아요’, ‘그렇네요’ 등 긍정적인 리액션을 습관적으로 한다. 흔히 있어 보이는 타입이지만 나는 20년의 시간 동안 이런 타입의 사람을 단 3명 밖에 못 만났다. 즉 희귀하다면 희귀한 부류인데, 재미있는 것은 나는 아직도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고 아직도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오랜 세월 연락이 없었던 사람도 있지만 만약 지금 나에게 와서 도움을 청한다면 어지간한 일은 수락할 것이라는 것이다. 덤으로 이들은 모두 사회에서 일정 이상의 성취를 거두었다. 나랑 딱히 가깝지 않았던 사람도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까지 그들을 호의적으로 느끼게 되었을까.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혹시 그들은 나의 인정 욕구를 채워줬던 걸까? 그래서 나는 그 양 만큼 언젠가는 갚고 싶다는 심리를 가지게 된 걸까?

3.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심리, 교육계에서 히트를 친 이후 이것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인정 욕구라는 개념이다. 아니, 딱 잘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 두 단어로 뉴스, 칼럼 검색을 하다 보면 대강 이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태생이 이렇다 보니 별로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는 아니다. 직장 상사의 갈굼을 당하는 의기소침한 회사원. 공부 안 하고 유튜버가 되겠다는 아이를 교화할 수 있는 무기 등 대강 이런 거추장스럽고 극복해야 하는 내면적 욕구 등으로 취급되는데 이번에 할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내 인정 욕구를 어떻게 채울 수 있는가는 일단 내려놓고, 남들도 꾸준히 채워야 하는 욕구라면 그것을 내가 채워줌으로서 인간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나는 그 관련 전문가(?)들을 만난 적이 있어서 그 방법을 알고 있다. 이 글은 이와 관련한 지난 3개월간의 실험의 이야기다.

4.
실험의 방법은 이렇다. 남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 트리거다. 어떤 말을 들으면 자문한다. 동의하나, 아니면 동의할 수 없나. 동의한다면 ‘맞아요.’ ‘좋아요.’ ‘그렇네요.’ 라고 대답한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리는 것도 있다면 일단 맞는 것에만 집중해서 먼저 긍정하고 시작한다. 처음 시작한 건 집의 밥상이었다. 집에서 와이프가 식사를 준비한 경우 식사 시작 직후 주 메뉴를 맛을 본 다음 자문한다. 맛있는가 아니면 맛이 없는가. 맛있으면 말한다. ‘맛있다.’ ‘맛있네’ 등. 맛 없으면 말하지 않는다. 이게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집 밖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친구를 만나건 회사 동료와 대화를 나누건 말이다.

5.
일단 결과 발표 전에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다.
(1) 생각하고 말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걸 의식하고 수행하면서 내가 얼마나 긍정적인 말을 안 하고 살았는지 자각했다. 애초에 처음에 입이 잘 떨어지지 않고 매번 매번 자문하면서 뇌에 쿼리를 때리는 게 낯설었다. 이건 의지로 해결한다기 보다 습관이 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사실 지금도 완전히 잘 동작하지는 않는다. 집 안에서는 70%, 밖에서는 30%?

(2) 이건 아부도 아니고 봇도 아니여
마치 주위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보고 봇처럼 대답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마음 속으로 동의하지 않으면 긍정 반응을 안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공개해도 주위 사람에게 미안한 건 없다. 거짓이 아니니까.

(3) 반복이기에 생략되는 긍정의 표현이 너무 많았다.
이전에 긍정한 바 있는 항목은 그 다음 반복해서 표현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경향이 있다보니 남의 말에서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있을 때 나는 부정적인 요소에만 피드백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자각했다. 많이 반성했고, 아쉬웠다. 아마 대부분의 집 내부 문제들은 이 항목 때문에 시작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4) 긍정의 말은 길게 하기 보다 짧고 단정적으로 하는 게 쉽고 효과도 크다.
‘~는 좋았는데 ~는 잘 모르겠어’ 이런 식으로 부족한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 긍적적인 부분을 전제로 활용한 듯한 인상을 주는 건 별로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장 내가 듣는 입장이라도 쓴소리를 위한 전제를 까는 것 같아서 긴장만 된다. 길게 늘이지 말고 ‘맞아요.’ ‘좋아요.’ ‘그렇네요.’로 끊어서 말하는 게 실행하기도 쉽고 효과도 컸다.

6.
뭐가 달라졌나?
사실 정량적으로 측정은 어렵다. 남의 마음 속의 변화를 어떻게 정량적으로 측정해. 집에서 식사 반찬이 좋아졌냐 하면 원래 좋았기 때문에 더 나아질 것도 없다. 그런대 집 안이건 밖에건 유의미한 변화가 하나 있다. 남이 나에게 대화를 거는 빈도가 늘었고 대화 시간도 길어졌다. 숫자로 정리한 건 아니지만 확실하게 변화를 인지할 수 있다. 나에게 호감이 생긴 걸 수도 있고 나와의 대화가 즐거워진 것일 수 있다. 인지하고 행동하기 시작한지 아직 3개월 남짓이다. 당분간 현행 유지다.

7.
그래서 뭘 말하고 싶나.
이것은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난 주위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과 가설과 검증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편이어서 어렸을 때 부터 어머니에게 웃고 다니라는 주의를 많이 들었다. 특히나 중고등학생 때는 지나치게 내성적이었기에 주위의 오해도 많이 샀다. 사회생활도 많이 한 지금은 왜 남을 대할 때 웃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지만 웃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쩌다 보니 이전 직장에서 100명 가까운 인원의 관리를 하면서 밥, 술을 사는 일이 많았고 그게 사회생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게 효과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사람들이 내가 산 사실을 잘 기억 못 할 것 같지만 나는 그걸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도 얻어먹은 기억이 서서히 희미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관계라는 게 시간적, 금전적 희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쌓이다 보면 근본적인 관계성이 달라질 수 있다. 나에게 그 세 명 처럼.

일을 오래 하고 싶다. 이 시점에 와서야 30대 40대 인맥이 재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명함을 많이 보유하자는 게 아니고, 내가 먼저 일을 잘 해서 주위 사람들이 나를 계속 일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으로 인식해야 한다. 실제로 실력, 커뮤니케이션 둘 중 하나라도 결여된 사람은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직장에서의 하루 하루가 주위 동료에 대한 내 프리젠테이션이다. 실력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저 사람이라면 계속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인상을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가설에 대한 중간 보고를 한 문장으로 하자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고 있으니 앞으로 현재 정책을 유지합니다.

여러분도 아래의 좋아요와 공유를 눌러서 제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by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