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어쩌면 우리 엄마의 지론은 ‘딸은 손에 물 안 묻히고 커야 시집가서도 고생 안한다(?)’였는지도 모르겠다.
막내와 내가 띠동갑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보통 ‘누나가 다 업어 키웠겠네~’ 라고들 하는데 내가 귀여워서 업어준 적은 있지만 적극적으로 육아에 동참(?)한 기억은 거의 없고 언젠가 엄마가 다른 분과 이야기하다가 굉장히 단호하게 ‘쟤가 낳아달라고 한 게 아닌데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게 아니면 설거지든 뭐든 시키는 경우가 아예 없었고(이 나이가 되어보니 애 셋 정신 없으셨을텐데 설거지라도 한번 더 할 걸 그랬다) 중학교 들어간 이후에는 공부를 핑계삼아 둘째와 나는 명절에 아예 안 데려가고 남겨놔서 집에서 동생 밥을 챙길지언정 명절날 전 부칠 일 없었다든지 뭐 그런 식이라 남 일에 입 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딸을 그렇게 키우면 안 돼’ 소리도 종종 들으셨다.

입시도 다 지나고 어느 해인가 명절에 친척 중 한 분이 노동력이 아쉬웠는지 ‘딸을 그렇게 아무것도 안 가르쳐서(전집 차릴 것도 아닌데 전을 굳이 가르쳐야 하나?) 시집 보내면 안된다’고 하길래 엄마가 대학 공부까지 하는데 그거 못 배우겠냐고 하고 넘어가셨다는데 그 후 나는 결혼하고 보니 시댁이 제사 없애고 예배만 보는 집이라 전 부칠 일이 없다.(는게 우리 엄마의 승리)

각설하고.

이렇다보니 ‘인간으로서 할 줄 알아야 하는 일’을 교육하는 시기에 대해 신경은 쓰고 있으나 딸을 키우다보니 나도 모르게 린양에게 집안일을 가르치는 데에는 오히려 좀 적극적이지 않은 편.🤔 요즘처럼 인터넷만 열면 필요한 것들이 다 설명이 잘 돼 있는데 가르쳐달라고 할 때 가르쳐주지 뭐, 하게 된다.(물론 린양은 불 쓰는 일 말고는 오히려 저 나이때의 나보다 대개 자기 일은 혼자 알아서 잘 하는 편임)

갑자기 이번주 온라인 수업이 전면 실시간으로 바뀌면서(원래는 선생님들이 올려둔 영상을 본다든지 하는 식이라 여유가 좀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11시반~12시 10분으로 딱 고정돼버렸는데 아침 먹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바로 점심 먹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린양이 점심은 간단히 먹고 싶다길래, 얼마전에 본인이 계란 프라이 정도는 해보고 싶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가르쳐줄테니 토스트에 프라이 얹어서 먹으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신이 났다.

옆에서 인덕션 켜는 법부터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자니, 좀 느즈막히(?) 가르치면 볼 때 덜 어설프고 말귀를 빨리 알아듣는 점은 역시 편하다.

처음에는 약간 이런 느낌이었다만 -_-;

당연히 린양 나이에 화려한 요리도 가능한 아이도, 동생들까지 챙기는 집도 있겠지만 처음으로 계란 후라이 하겠다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가더라는 이야기. 계란 후라이 해봤으면 다음에는 뭐 다른 것도 볶을 수 있겠지.

아무튼 그래서 이번주 점심은 린양이 셀프로 해결 중인데 어쨌거나… 나는 편해! 근데 닷새 내내 계란 토스트만 먹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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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sponses

  1. dan

    우와-!! 첫 후라이!!!! ㅊㅋㅊㅋ
    토스트도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점점 늘어나겠군!! 린짱… 프렌치토스트를 추천해!! 빵에 계란만 적셔서 구우면 된다궁!! ㅋ
    사실 노동으로써의 요리는 안 해도 되지만 본인이 먹고 싶어서 하는 요리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_<

    1. Ritz

      아니 이게 축하까지 받을 일인가 ㅋㅋㅋ 안그래도 저 다음날 프렌치 토스트 이야기했는데 간장계란밥이 더 좋대(….)

      나도 스스로 먹고 싶은 걸 해먹을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앞으로 관심있어 하는 건 하나씩 알려줄라고. : )

  2. 친구녀석은 [내가 맛있는걸 해서 내가 먹겠다]라는 주의인지 어떤지 얼핏 들었지만, 뭐 그런것과 상관없이 요리를 잘 하다보니 결혼했을때도 요리는 자기가 다 했었고, 지금도 자기가 하고 있으며, 동생과 제수씨가 명절에 놀러와도 시식만 시키고 자기가 다 하고 있긴 합니다. 그리고 잘 하지요(…) 그런점에서 결국 먹고싶은 사람이 하는 목마른자가 우물을 파는 요리가 가장 좋은게 아닐까 가끔 핑계를 대 봅니다. 참고로 저는 컵라면을 잘 끓입니다. (…………..)
    그리고 상황 보니 여차하면 5일동안 토스트를 드실것 같긴 한데요(………)

    1. Ritz

      정말 요리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것도 즐기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 린양의 토스트는 워낙 시간이 일러서 본인 것만 해먹고 있는데(저랑 옆사람은 느즈막히 적당히 다른 것 챙겨먹고) 아마 내일도 같은 메뉴일 듯합니다. -_-d 다음주는 등교주간이라 급식 먹을 거예요.( ”)

    2. Ritz

      오늘은 점심시간 전 수업이 일찍 끝나서 시간이 많다며(?) 간장 계란밥을 해먹더군요.(….)

      1. 간장…계란밥은…시간이…많이…걸리는…요리.. (적어둔다)

        1. Ritz

          제가 좋아하는 짤을 붙여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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