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어릴 적에 집이 별로 넉넉한 편도 아니고 나나 동생이 별로 철이 들었을 무렵도 아니었는데 두 딸래미 챙기는 와중에도 엄마는 항상 무언가 취미를 가시셨더랬습니다.

등나무 공예를 하신다고 온 목욕탕에 젖은 등나무를 축축 늘어놓기도 하셨고 비누 공예를 하신다고 앉아서 비누에 열쉼히 핀 꽂으시더니 제가 고3때쯤 베이킹과 요리를 배우셔서 집에 스콘과 스펀지 케이크가 떨어질 날이 없었지요.

아무튼 그런 걸 내내 봤던 게 잠재의식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 집에서 전업주부를 한 1년쯤 하고 나니 뭔가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이것저것 쑤셔보고 있군요(실은 컴퓨터 쓰는 시간을 좀 줄여볼 요량인데 그러려면 뭔가 다른 취미가 필요하니..).

맨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베이킹입니다.
모처럼 일본에 와 있는데 집앞 수퍼에만 가도 왠만한 베이킹 재료가 다 갖춰져 있는 환경에서 시작하기도 제일 만만할 것 같고 그래도 역시 먹는 게 남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어제 장보러 나간 김에 예상했던 것보다 싼 거품기가 눈에 띄어 사왔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스크랩해뒀던 카스테라 레시피를 찾아서 도전해봤지요.

3천엔쯤 예상하고 갔는데 1,400엔 하길래 질러버린 거품기.
아래쪽에 코드와 거품내는 부분을 수납할수 있게 되어 있어 편하더군요.
끼우면 요런 식.

왜 하필 카스테라인고 하니 여기 와서 별의 별 케이크에 빵을 다 봤지만 의외로 잘 안 보이는 게 카스테라더군요. 일반 오븐이 아닌 오븐토스터로 만드는 게 잘 되려나 싶어서 일단 소심하게 가진 레시피의 재료 양 반만 가지고 만들어봤습니다.

원래 양을 줄였다는 레시피에서 또 반만 가지고 만들었더니 낮아서 이렇게 카스타드 크림 모양이..-_-;
네가 정녕 카스테라더냐

흰자로 거품 올리는 것도 생각보다 힘든 데다가 유산지가 없어서 사온 유리틀에 그냥 버터 둘러서 구웠더니 재료를 적게 부어서 그랬는지 거의 다 구워져갈 때쯤에는 빵 중간 부분이 마구 휘기 시작하더군요.
만드는 데 썼던 것이 박력분이 아닌 강력분으로 만드는 좀 쫀득한 느낌의 카스테라 레시피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보이는대로 폭삭하기보다는 좀 촘촘하더군요.
맛은 뭐…
그냥 적당히 카스테라 맛이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스폰지 케이크와 카스테라의 중간쯤 되는 느낌이더군요.

오늘 낮에는 좀더 용기를 내어 어제 레시피 그대로 정량에 맞춰서 재도전을 해보았지요.
어제보다 거품 올리기도 좀더 잘 되는 것 같고 그럭저럭 할만은 했는데 역시 양이 많아지니 집에 있는 오븐 토스터로는 무리가 있는지 위쪽에 열선 모양의 가로줄이 가면서 탄 자국이 남았습니다(뭐 탄 부분 빼고는 잘 먹고 있지만). 시간도 레시피에 거의 두배쯤 걸리고요.

여기에서 다시 작은 오븐을 하나 사야 하나 고민 중(울 엄마가 들으면 ‘됐네 마이클’ 할 게 뻔하다).

오븐을 새로 사서 얼마나 빵을 구우려나 싶기도 하지만 실은 오븐을 살까 말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퀼트는 어떨까…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절 아는 사람들이야 별일이네 하겠지만 의외로 바느질하는 걸 좋아해서 학교때 가사 시간에도 실기는 즐겁게 하고 점수도 잘 나오는 편이었거든요. 이 퀼트 역시 집앞 백화점 취미 코너 쪽에 가니 없는 재료 없이 다 갖춰져 있더군요(역시 취미의 천국인가).

요즘은 워낙 네이버 신이 못 찾는 게 없어서 시작하려면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퀼트 쪽도 하고 나면 뭔가 남는 게 있으니 좋을 것도 같아서 수요일 수업 끝나면 돌아오는 길에 백화점 퀼트 코너에 한번 둘러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네요. 이러다가 그냥 둘 다 말고 쭈욱 컴퓨터 앞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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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sponses

  1. 하임맘

    오래만…^^
    참 아기자기하게도 사는구나…
    나는 요리까지는 어떻게 생각해보겠는데
    퀼트나 바느질 등등은 체질이 아닌가봐..- -;
    나중에 2세를 위해 예쁜 거 많이 만들면 좋겠다~^.~

    1. 리츠코

      아기자기할 것까지야… ^^;
      그냥 소일거리 삼아 할 일을 찾는 건데. 퀼트는 어쩔까 아직도 고민 중이로구먼. ^^;

  2. 거품기가 다리미처럼 생겼다 했더니 저런 옵션이 있었군 ㅡㅡ;

    1. 리츠코

      저도 처음 볼 때는 어떻게 된 구조인가 잠시 당황했군요. -_-;; 수납하기 편해서 좋더라구요.

  3. 미사

    어차피 둘 다 언젠가는 한 번씩 할 것 같으니 ^^; 좀더 땡기는 것을 먼저 하는 식으로 순서를 정해서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아아~?
    나 같은 경우엔 요즘 퀼트(혹은 패치워크)가 저렴하게 나와서… 배우려다 그냥 사고 마는데;;; 바느질에 취미가 있다면 해도 좋을 것 같네. 아니면 일단 미싱부터 익히는 건? 이것도 꽤 쓸모가 있던데… ^^ (일본은 부라더 미싱도 싸지 않던가?)

    1. 리츠코

      음, 역시 어차피 언젠가 둘 다 하게 되겠지요? -_-;

      한국은 퀼트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인터넷에 나온 걸 보면 다 만들어진 것도 별로 안 비싸긴 하더군요. 굳이 만들 필요 없이 그냥 사는 게 쌀 듯. 여기는 다 만들어진 건 비싸서…-_-;

      미싱이 싼 것도 꽤 많은데 사려면 욕심나는 건 그래도 가격이 좀 된다더군요. 근처 사는 친구가 남편이 가죽 쪽으로 공예를 해서 좀 알아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