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혜린이 전집을 사주려고 좀 기웃거리다보니 문득 저 어릴 때 집에 있던 전집들이 참 좋았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에는 뭐가 그렇게 복잡한지 인지 발달 무슨 발달 해서 뇌를 아주 쫄깃하게(?) 다방면으로 발달시켜줘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제가 책을 좋아하게 된 건 엄마가 지치지 않고 수백번 읽어주셨던 60권짜리 월트 디즈니 동화 전집 때문이었던 것 같거든요.
텍스트 양도 적당하고 그림도 디즈니 것이다보니 예뻤던 데다가 내용들도 참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구할 방법이 없어(간간히 헌책방에는 보입디다만) 아쉬울 따름입니다. 지금은 망한 계몽사에서 냈던 전집인데 다른 출판사에서 더 내지 않는 걸 보면 판권료가 비싸거나(?) 요즘 엄마들에게는 인기가 없나봐요. 새로 나온다면 저는 한 질 사고 싶은데 말이죠…

학교 들어가고 나서 엄마가 사주신 전집은 웅진에서 나온 세계명작이었어요. 당시 대세는 메르헨이랑 ABE였는데 당시 엄마 친구분이 웅진 영원사원을 하셔서 구입하셨던가, 뭐 그랬던 것 같네요.(메르헨이나 ABE는 워낙 집집마다 한질씩 있어서 빌려서 다 보게 됐음)
주변에 둘러봐도 이 책 가진 사람은 별로 없어서 꽤 마이너한 전집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웹이 워낙 광대하다보니 그래도 이 책이 있었던 사람들이 간간히 보이더군요. : )

참 다양한 국가에서 골라온 작품들이라 내용도 다양했고 잘 몰랐는데 알고보니 유명한 작품이었던 것들(창가의 토토라든지 테라비타로 가는 길, 로냐 같은…)도 많았더라구요.

재미있는 책, 재미없는 책이 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한권씩 클리어해서 두고두고 참 잘 봤던지라 대부분 작품들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목록을 보니 의외로 제목만 기억나고 내용은 깜깜한 것들이 많네요. 대상연령대를 감안할 때 심각한 내용이나 어두운 이야기도 많아서 작품을 선정한 사람의 기준도 좀 궁금해질 때가 있긴 합니다. : )

★ 현대판 웅진 세계명작 리스트 | 닫기 |
1 : 창가의 토토 (구로야나기 테쯔코, 신경림 역)
일본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장수 프로그램인 테츠코의 방을 진행하는 방송인 구로야나기 테츠코가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산만해서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고 얼마 안돼 퇴학당한 토토(테츠코의 애칭)가 전차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교육 방식도 상당히 획기적인 토모에 학원에 입학하면서 겪는 이야기들인데 이게 몇년 전 이야기인지를 따져보면 정말 그 당시에 벌써 이런 학교가 있었다는 점에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학교 원장 선생님도 참 좋았지만 저 자신이 아이를 낳고 보니 토토가 퇴학을 당했어도 ‘넌 퇴학을 당한 거야, 이제 어떻게 하니’라고 말하지 않고 자신의 딸에게 맞는 학교를 열심히 찾아다닌 토토의 어머니가 가장 존경스럽더군요. 책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작가 본인도 그 점에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무한한 감사를 하고 있지요. : )

2 : 가장 행복한 아이 (닉 호아킨, 연점숙 역)
3 : 꼬마 신문 기자 (하리 요노, 정영림 역)
4 : 안 보이는 친구 (류신우 외, 유중하 역)
5 : 귀뚜라미 표류기 (토오 호아이 외, 전혜경 역)
6 : 고무풍선 (자야쁘라 까쉬바르띠, 이정호 외 역)
7 : 날개 달린 배 (릴리아나 산티르소 외, 김은중 역)
8 : 모험 소년 헤르완 (아밀자야 외, 박재봉 외 역)
9 : 나의 형제 팬더 (쥐 비띠앙, 김남일 역)
10 : 우리 마을 (마들레느 트레에른 외, 전채린 외 역)

11 : 진열장 속의 들고양이 (알키 자이, 김진옥 역)
신화 시대의 그리스가 아니라 현대의 그리스가 배경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연령대의 아이들이 쉽게 접할 일은 없는 1936년 파시스트 독재 치하에서 주인공 소녀 멜리사가 겪는 이야기라는 점이 특이했더랬습니다.
한줄로 요약하자면 ‘우리 사촌 오빠는 운동권이래요‘ 쯤 될까요. ^^;

멜리사가 언니인 미르토와(표기가 뮈르토였던가 미르토였던가..) 행복할 때는 엡포, 불행할 때는 리포, 라는 암호를 만들었던 것도 지금까지 기억이 나네요. ^^
12 : 나 홀로 알고 있는 나라 (에르네스토 올리베로 외, 한성철 역)
13 : 꼬마 요한네스 (프레데릭 판 에이던, 김영중 역)
인생에서 처음 접한 철학 소설이 아닐까 싶은데 당췌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그 음울하고 왠지 어두운 분위기에 압도당해 단숨에 다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도 지금 읽으면 좀더 내용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감상은 어떠려나요….
14 : 녹는 돌의 비밀 (크리스티안 돌라르 마르텔 외, 이한헌 역)
15 : 꼬마 모리쯔 이야기 (아힘 브뤠거 외, 이범수 역)
꼬마 모리쯔의 상상 속 이야기들. 그맘때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빠져드는 공상들이 마치 사실처럼 펼쳐지지요. 마지막 에피소드가 미래의 모리쯔가 현재의 모리쯔에게 찾아와 ‘어른이 되니 먹고 사는 게 좀 고달파’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던 듯? ^^;
16 : 팀과 힐라모어의 난장이들 (힐데 하이징어, 김수진 역)
17 : 문신이 새겨진 개 (파울마, 김명수 역)
문신이 새겨진 개가 지나가던 무언가(…)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그 이야기들은 가물하고 아스라히 기억나는 건 마지막의 ‘문신이 새겨진 개의 문신에 새겨진 개에는 무슨 문신이 새겨져 있을까’ 뭐 이런 질문이었는데 답은 문신이 새겨진 개의 문신에 새겨진 개에는(헥헥) 또 문신이 새겨진 개가 있었다 였…던 듯?
18 : 착하기는 어렵다 (하우스 호퍼말렌 외, 강태형 외 역)
19 : 뺏은 집 (힐다 반 스토쿰, 홍윤기 역)
이 번역자 홍윤기님이 대학 때 논리학 수업에서 조금은 졸리는, 그러나 너무너무 열심히 수업을 하셔서 참 좋았던 그 교수님이라는 걸 알고 나중에서야 왠지 반가웠지요.
이 시리즈 전체에서 드물게 ‘연애물’입니다.
배경은 히틀러 치하의 독일, 여주인공인 독일인 소녀 얀나는 유명한 배우인 부모와 떨어져 살다가 부모의 부름으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가게 됩니다.
무려 히틀러 유겐트였던 그녀가 그곳에서 당시 독일의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모습들을 접하게 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른들의 질투와 불륜도 목격하고, 그녀가 살게된 집의 숨겨진 방에서 서류를 위조하던 (무려) 유태인 소년 세프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한편의 장대한 로맨스 소설 되겠습니다.

마지막이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20 : 한낮의 친구 (매리 스톨즈 외, 김성원 외 역)
내용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마지막에 주인공 소녀의 아버지가 드디어 구직에 성공해서 도시락을 싸다닐 수 있게 되었다, 라는 훈훈한 엔딩만 기억나네요. 도시락이라고 하니 동양쪽이 배경일 것 같지만 무려 미국 작품이었어요. -_-;
21 : 천년 묵은 여우 (수잔 쿠퍼, 이재성 역)
중학교 때, 미국에서 전학왔던 친구랑 우연히 이야기를 하다가 이 책이 단권으로 된 이야기가 아니라 시리즈 중 한 권이라는 걸 알게 되었더랬습니다.
어떻게 보면 처음 접한 판타지물이었는데 아더왕이 소재인데다가 내용도 신비스러워서 좋아했었네요.
예전에 작가인 수잔 쿠퍼를 검색해보니 그럭저럭 유명하던데 의외로 국내에 이 시리즈가 안 나오는구나, 싶었건만 오늘 검색해보니 작년에 시리즈 첫권 ‘어둠이 떠오른다’가 나왔었는데 반응이 그냥 그랬는지 뒷권은 발매가 안 됐군요. ^^; 요즘에 읽기에는 좀 밋밋한 작품이려나요.

22 : 산적의 딸 로냐 (아스트리드 린그렌, 오숙자 역)
삐삐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그렌의 작품입니다.
배경이 되는 마티스 숲이나 로냐가 사는 산적의 성, 숲에 사는 마물들에 대한 묘사를 보면 좀 음습한데 주인공 아이들-로냐와 비르크는 이 작가 작품답게 발랄하고 행복합니다.
마티스 숲에 사는 원수 집안인 두 산적패-마티스 집안과 볼카 집안-의 아이들인 로냐와 비르크가 만나 서로 친구가 되고 종국에는 으르렁대던 양가 아버지들을 화해시킨다는 훈훈~한 이야기 되겠습니다.
작가의 인지도가 있다보니 이 전집 말고 국내에서 단행본으로 두번 더 나왔었네요.

23 : 얼음 덮인 땅 (아서 캐서럴 외, 박발진 역)
24 : 노예춤 (파울라 폭스 외, 유종호 외 역)
25 : 인디언 소녀 치위 (그레이스 문, 김경미 역)
인디언 소녀의 엄마찾아 삼만리… 분위기였던 것만 기억이 나는데 그게 맞는지도 가물하네요. ^^;
26 : 붉은 계곡 (제임스 링컨 클리어 외, 박미옥 외 역)
27 : 테라비타로 가는 다리 (캐더린 패터슨, 조삼남 역)
얼마전에 나왔던 영화의 원작입니다. 이 작품을 워낙 오래 전에 접했던지라 이제와서 영화화되었다는 것도 좀 의외였어요.
웅진판에서는 테라비타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 스펠링을 보니 테라비시아가 맞을 것 같네요.
마지막 엔딩이 너무 강렬해서 어린 마음에 읽다가 막판에 정말 입을 쩍 벌렸던 기억이 납니다. 도저히 누군가가 죽을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과감하게 중요 인물이 죽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거든요. 다 읽고나서 3박4일 우울했었어요…;

28 : 빠블로의 두 아저씨 (해리 벤, 안정효 역)
29 : 말 타는 소녀 렝카 (얀 프로하즈카, 정병권 역)
30 : 밍게스 가족 (에드가 르네비에, 장선영 역)
스페인 작품인데 속물인 밍게스 엄마가 기억에 남네요. ^^; 뭔가 먹을 것에 대한 묘사가 많아서 읽으면서 즐거웠던 듯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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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esponses

  1. 지구

    저도 요즘 나오는 전집들 살펴봤는데 대상연령대가 어려서 그런 건지 도통 마음에 드는 게 없더라구요. 어릴때 읽었던 계몽사의 세계명작이라든가 등등이 그리워요~

    그나저나 모게시판 만들어진 거 이제서야 알고 가봤는데, 도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

    1. 리츠코

      요즘 생각해보니 계몽사에서 나오는 전집이 참 좋은 게 많았더라구요. 근래에 나오는 전집들은 뭔가 너무 계산된(?) 효과를 바라는 전집 같아서 살짝 부담스러워요. ^^;;

      모 게시판은 가입만 한 상태에서는 글만 읽을 수 있거든요. ^^;;; 레벨 조절해둬서 다시 로그인하시면 댓글 달기나 글 쓰기가 가능해요. : )
      그리고 저 게시판 툴이 좀 상상을 초월하게 괴상한데 이미 쓰기 시작해서 다시 옮기기가 좀 어렵네요. ^^;;;

  2. abe는 우리집엔 없었지만 다른집에 가면 꼭! 있어서 많이 읽었던 기억이…..

    근데 거기에 개구장이 에밀이 있었던가..

    요즘엔 에밀을 찾을수가 없던데. 채운이한테 꼭 읽어주고 아니면 지가 읽게라도 만들고 싶은책.

    1. 미사

      에밀과 탐정 얘기인가? 에밀은 개구쟁이가 전혀 아닌데 왜 그런 제목이 붙었을꼬… 이번에 abe도 모았던 거 다 처분해버렸군 ㅠㅠ

    2. 리츠코

      그 당시에 abe나 메르헨 중 하나는 집집마다 꼭 있었던 거 같아.
      단권으로 구하는 거라면 헌책방 사이트 같은 데에 종종 있더라. 내 동생이 얼마전에 저 웅진 세계 명작 중에서 빠진 권을 좀 채웠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