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타임라인에서 노라 크루크라는 이름이 낯이 익어서 찾아보니 <나는 독일인입니다>의 작가.
전작을 인상깊게 봐서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했고 어제 받아와서 이틀 동안 틈틈이 읽어내렸는데 글밥이 많은 책은 아니라 쉽게쉽게 페이지는 넘어갔지만 내용은 한없이 무거워서 저절로 손이 느려졌다.

그렇지만 오늘날 식민주의적인 공격을 일삼는 러시아의 정치 체제는 꺼림칙하게도 친숙하게 느껴진다. 나치 체제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도, 그렇다고 그에 저항하지도 않았던 단순 “동조자” 의 손녀인 나는 모호하고, 복잡하고, 또 때로는 모순적인 서사들을, 그러니까 어쩌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서사들을 부각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독재 정권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이해하려면 이런 서사들이 꼭 필요함에도, 이걸 간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웅을 칭송하거나 가해자를 비난하는 일은 쉽다. 그렇지만 양가적인 서사들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수동적인 모습을 직시하도록, 그리고 우리의 도덕적 진실성이 지닌 불완전함을 직면하도록 우리를 독려한다.

(중략)

전쟁의 책임은 결코 단 한 명의 폭군이나 그 폭군의 프로파간다에만 물을 수 없다. 나치의 ‘제3제국’을 떠올릴 때 우리는 그것이 사람들이 실제로 내린 선택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는 한다. 방관자로 남을 것인가, 또는 크건 작건 간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저항할 것인가라는 선택 말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선택지가 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또는 안 하겠다고 결단을 내리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과거 억압적인 체제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되었겠는가? 내일의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이 되겠는가?

p.14~15

전작에서 ‘독일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작가는 이번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키이우에 거주하는 기자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자 이 전쟁에 반대하는 예술가에게 연락해 안부를 물으며 이들에게 전쟁이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 여파를 기록했다. 두 사람의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게끔 세부적인 내용은 바꾸었고 본인들에게도 최종 확인을 받은 후 완성했다고.

책의 왼쪽 페이지는 키이우의 기자, 오른쪽 페이지는 러시아에 살고 있는 예술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양쪽의 폰트를 조금 다르게 차이를 뒀더라면 좀더 직관적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제목 그대로 2022년,

전쟁이 나고 말았다.

어떻게든 빠르게 결말이 나리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멀어진다.
작가의 말처럼 크건 작건 저항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고 더더군다나 우리는 늘 그 가능성의 줄 위에서 걷고 있지 않은가.

이 책에 나오는 두 사람 모두 아이와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고 아이와 반려자의 안전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상황은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격하게 공감하면서도 한층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나마 이 책에 나오는 키이우의 기자는 여느 우크라이나 사람보다는 월등하게 상황이 좋은 편이지만(아이들과 친정 엄마는 바로 덴마크로 이동하고 본인은 취재를 하느라 덴마크와 우크라이나를 왕복, 남편은 국가 전체적으로 내려온 남성 출국 금지령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남음) ‘내 나라’라는 기반이 흔들리면 내가 어디를 가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럽은 육로이동이 가능하니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길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일 수나 있지, 우리나라처럼 이동 방법으로 치자면 섬나라에 가까운 곳은 대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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