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3년전에 후쿠오카 여행을 갔을 때 린양이 유후인 온천 일정이 너무 짧은 걸 두고두고 아쉬워 해서 이번에는 1월 30일~2월 2일까지, 유후인 2박, 후쿠오카 1박으로 오랜만에 일본 여행을 나섰다.

지난번에는 시간에 쫓겨서 제대로 못 둘러봤던 유후인 거리도 천천히 돌아보고 게으른 세 식구가 뭐라도 챙겨 보겠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긴린코로 가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도 본 나름 알찬 여행이었…
으나 집에 오자마자 내가 A형 독감으로 뻗었다. -_-;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에서 독감이 유행중이었고 나는 도착한 날쯤에 어디선가 옮아서 잠복기를 거쳐 집에 올 때쯤에 시작된 게 아닌가 싶은데 평소보다 여행 일정이 짧았길 망정이지 하루만 더 있었으면 너무 아파서 인천공항에서 집까지 실려왔을 것 같다…;;

이번 여행은 후쿠오카에서 유후인으로 이동해서 2박, 마지막날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와 1박을 하는 일정이라 세 가족 이동하기 편하게 차를 렌트했는데 언제나 일정을 짜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옆사람이 이번에도 유후인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어야하니 웹서핑으로 그 중에서 제일 밥이 맛있는 휴게소에 들러야겠다! 라며 자신있게 어딘가 휴게소를 1차 목적지로 찍고 고속도로를 탔으나…
종종 그렇듯이 이번에도 구글 맵은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사 휴게소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인적이 드문 곳을 헤메다가 그냥 유후인에 가서 적당히 떼우자며 다시 길을 나섰다.

 Yufuno Kahori

그리고 유후인에 도착하니 화요일이라 점찍어뒀던 식당들은 대부분 휴일.(관광지라 그런지 가게들이 보통 화, 수요일 중 하루를 쉬는 듯)
시간도 꽤 늦어 배가 고파서 문 연 곳 중에 식사가 될만한 걸 하는 분위기다 싶은 가게에 그냥 들어갔는데 스파게티, 카레, 갈레트 정도가 메인인(그나마도 시간이 늦어서 카레는 완판된) 작은 동네 카페였다.

정말 일본 드라마 같은 데에 나올 법한 평범한 ‘동네 가게’였는데 옆사람은 돌아오고 나서도 가끔 한번씩 저 갈레트가 생각난다고.(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마 저때 배가 엄청 고파서 실제 맛보다 한 200퍼센트 쯤 더 맛있게 느껴졌을거야…)

 和食 もみじ

다음날 점심 때 간 곳은 ‘모미지’라는 일본요리집.

테이블이 너덧개 남짓?인 작은 가게였는데 스테이크동이 맛있다고 한다며(조사는 모두 옆사람이 함….) 오픈 시간에 맞춰 갔더니 우리가 이 날 첫 손님이었다.
먹고 있는 동안 하나둘 손님들이 들어와 테이블이 꽤 금방 채워졌는데 그 후에 손님이 더 들어오니 6인석을 차지하고 있던 2인 손님이 가게 주인에게 먼저 ‘합석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는데도 그 손님들에게 ‘그러실 필요 없다’며 오래 기다려야할 것 같다고 나중에 온 사람들을 정중히 돌려보내는 게 좀 신기했다.

어쨌거나 스테이크동은 지금까지 먹어본 고기 중 최고. -_-d
옆사람은 가이세키 정식 스타일 런치세트를 시켰는데 아기자기하니 깔끔하게 나왔다.
런치 정식에는 흑설탕 아이스크림이 디저트로.

 スヌーピー茶屋 由布院店(스누피 카페 유후인점)

유후인 거리의 가게들이 다 작고 고만고만하다보니 어디 들어가 편하게 잠깐 쉴 곳이 눈에 잘 안 들어오는데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여유있는 매장 크기(….)와 SNS용 사진 찍기 좋은 메뉴들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곳이 스누피 카페.
하카타로 이동하는 날 눈 그치기를 기다리느라 계획에도 없이 두번이나 여기를 들러서 어쩌다보니 메뉴도 다양하게 먹어봤다(…)

위, 왼쪽의 안미츠 위의 스누피는 떡이 아니라 마시멜로.(이거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음…)
제일 맛있었던 건 두번째 줄 왼쪽의 젠자이. 스누피 전병은 뭔가 볼륨감이 있어 보이지만 뒤가 비어있었다.(…)

 山椒郎(산쇼로)

옆사람이 이번 여행에 조사한 맛집 중 하나였는데 원래는 이 날 벳부로 이동할 예정이라 인연이 없을 뻔하다가 눈 때문에 발이 묶이면서 점심은 이 집으로 정했다.

나는 산의 정식(…), 옆사람은 스키야키 정식, 린양은 스테이크 정식을 시켰는데 내가 시켰던 산의 정식이 정말 지금까지 먹어본 야채 요리 중 최고의 맛이었다.

야채 덮밥(?) 느낌의 산의 정식.(회 위주의 바다의 정식도 있음…)
야채 하나하나가 너무 맛있게 조리되어 있는 데다가 야채끼리 조화가 너무 잘 어우러져서 사진으로는 별 특이할 게 없어 보이지만 두고두고 생각나는 맛이었다. 흔히 일본 요리 만화에 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가장 맛있게 잘하는’ (…) 류의 묘사가 어울릴 법한 메뉴.
린양은 전날 먹은 스테이크동보다 이쪽이 더 좋았다고.
옆사람이 시킨 스키야키 정식.

이번 여행은 유난히 ‘맛있는 걸 먹었던’ 기억이 남아서 늦게나마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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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1. 저 대파를 유자즙에 담궈서 숙성한 절임도 많이 인상적이었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