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예약이 시작되고 우리 두 부부의 접종 날짜가 정해지자 난데없이 그 즈음부터 자려고 누우면 (보통 왼쪽으로 눕는데) 마치 피부가 종이처럼 얇아진 마냥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온몸에 진동처럼 느껴져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낮에도 서 있을 때는 잘 모르겠는데 어디에 앉으면 명치쪽에 진동? 경련?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혹시 홈트한다고 안 하던 스트레칭을 너무 해서 근육이 놀랐나? 하는 생각으로 며칠 보내고 좀더 생각해보니 이거 혹시 백신 맞는 데에 스트레스 받아서 온 공황인가? 싶었다.(뉴스면만 열어도 매일매일 아주 보란듯이 헤드라인에 대환장 파티잖아? )
옆사람이 8월 31일, 내가 9월 3일 예약이었는데 일단 옆사람이 맞기 전날에 걱정돼서 심장 진동에 공황 증세가 한번에 올라와서 약으로 버텼고 옆사람이 맞고온 후 경과가 다행히 별 일 없어 보이니 일단 잠시 소강상태.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는 내가 맞을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지─사실 애니동에 이미 2차까지 맞은 사람이 몇이나 있어서 별일 없다는 건 알고 있고 분명히 나는 걱정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 공황 부캐는 나의 의식의 뒤편에서 걱정을 하고 있는 모양. ─ 다시 증세가 시작됐다.
백신 접종 전날에는 정말 심장은 심장대로 뛰고 받았던 약도 이번에는 잘 안 들어서 밤새 시달리다가 간신히 아침에 정신을 차리고 빨리 이 주사를 맞고 공황을 끝내리라! 라는 일념으로 시간을 확인하려 핸드폰을 보니
9월 2일…
목요일을 금요일로 착각할만큼 요며칠 내가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이 코스를 하루 더 밟을 생각을 하니 암담해서 차라리 이렇게 하루 번 김에 이번에야말로 미리 봐뒀던 집 근처 병원에서 공황 치료를 시작해보자,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다행인 건 고민하다 고른 병원은 의사분도 차분하게 설명을 잘 해주시는 분이라 마음에 들었고 병원 위치가 딱 집에서 운동삼아 걸어서 다니기 좋은 거리라 그대로 정착하면 될 듯해서 겸사겸사 숙제를 해치운 기분.
일단 내 검사 결과는 불안감은 높은 편, 우울감은 낮다고.
의사 선생님에게 심장이 심하게 뛰는 증세에 대해 설명하니 그건 실제로 부정맥일 가능성도 있는데 내가 그걸 직접 ‘확인’해야 아마 편해질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대망의 백신 접종일.
확실히 전날 병원에서 상담한 효과도 있었고 새로 받은 약도 잘 들었는지 잠은 어느 정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도 심장은 여전히 바운스바운스 중. 예약 시간이 10시였는데 한 8시부터 2시간을 안절부절 온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일단 약 하나 챙겨 먹었다.
어지간하면 혼자 갔을텐데 먼저 다녀온 옆사람 말이 병원에서 접종하려면 지하 1층, 지하 2층을 오르내려야 한다길래(좀 큰 병원이라) 이 정신으로 모르는 곳에 이리저리 쫓아다닐 엄두가 안 나서 옆사람을 끌고 출발.
그 다음은 뭐 보통의 백신 접종 코스.
예진하는 의사분께 공황 이야기를 하고 미리 약을 하나 먹었다고 하니 그건 문제 없음, 주사 맞으러 가서도 간호사분에게도 공황이 있다고 먼저 말을 하라길래 이야기했더니 공황의 경우 심장이 뛸 때 이게 백신 때문인지 공황 때문인지 잘 알 수가 없는 경우가 있으니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일단 가까운 병원 어디든 가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백신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놀랍게도 요며칠 중 가장 쾌적한 컨디션.
공황은 증상이 나타난 동안에는 정말 힘든데 그게 지나가고 나면 그야말로 짠~ 하듯이 멀쩡해져서 이번에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대로 반응하는 나를 보면 은근 자괴감이 든다.
아무튼 심장 쪽도 확인을 안 하면 오늘도 완전히 발 뻗고 자기 힘들 게 뻔해서 일단 오후 진료 시간 전까지 컨디션이 나쁘지 않고 발열만 없으면 집 근처 내과에 다녀오려고 마음 먹었는데 집에 와서 간단히 밥 먹고 요근래 중 가장 숙면(…)하고 나니 마침 열도 없고 팔도 아직 상태가 다닐 만해서 마저 해결하러 나섰다.
갔더니 의외로(!) 부정맥은 맞았고 어떤 종류인지 보려면 심전도 검사를 해봐야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검사 완료. 결과지를 보시더니 심실조기수축 혹은 심실기회수축이라는데 보통은 증상도 없어서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고─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닌데 지금 나는 그것 때문에 불편한 상황이니 심장 전문 내과의사한테 가서 약을 받는 게 낫겠다며 근처 개인병원을 추천해주셨다.(내가 간 병원에는 심장 전문의는 없어서)
추천받은 병원으로 이동.
가서 앞뒤 설명하니 당장 증상을 가라앉혀줄 약 처방해주시고 빈혈이나 갑상선 기능 쪽으로 혹시 문제가 있을 때도 이런 경우가 있다며 확인해보자고 하셔서 채혈해놓고 귀가했다.
집에 오면서 생각해보니 보통은 모르고 살 일을 굳이 알게 된 건 아무래도 공황과의 콜라보가 아니었나 싶다.
얼결에 여기저기 돌고 들어오니 어느새 4시…;
백신 한번 맞으려다 이 나이에 새삼 부정맥이 있다는 정보까지 얻었다!
아직까지는 주사맞은 부위가 약간 뻐근한 것 말고는 별 증세는 없는 듯. 다음날 고생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 지금부터 내일까지는 좀 푹 쉬어야겠다.
박나래가 마음고생 다이어트만큼 확실한 게 없다더니, 근육통인 줄 알고 홈트 쉰지 일주일 넘어서 다시 몸무게가 돌아갔겠거니 생각했는데 공황으로 며칠 고생해서 그런가, 오늘 아침에 재보니 그렇게 운동하고 덜 먹어도 꿈쩍을 안 하던 한 근(…)이 빠져 있다! 세상에…
그래도 백신은 이번에 한번 겪었고 공황은 그 사이에 치료도 받고 있을테니 2차는 무탈하게 넘길 수 있겠… 지?
ps. 내가 이렇게 기를 쓰고 백신을 맞고 왔는데 성시경 개소리를 들으면 빡이 안 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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