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집 근방에서 며칠 연이어 뒤숭숭한 사건들이 들려왔다.

주말에는 근처 고등학교 1학년 아이가 밤새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고 집에 가는 길에 무단횡단을 하다 사망했다는 소식이었고,
강남역에서는 10대 소녀가 SNS 라이브 방송을 켜둔 채로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있었고,
어제는 린양이 졸업한 중학교에서 3학년 남학생이 다른 반의 여학생의 목을 찌르고 자신은 인근 아파트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었다.

첫번째 소식에서는 고1에 벌써 밤샘을 하고 집에 가는 아이가 있다는 게 안쓰럽고
두번째 소식에서는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타인의 이목을 바라는 마음이 안타깝고
세번째 소식에서는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리고 무언가 자신이 사고를 쳤다고 생각했을 때 수습하기보다는 그대로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데에 아연실색했다.

모두 딸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이라 소식들을 접한 것만으로도 뭐라 말할 수 없이 착찹하고 우울해져서 오늘 상담 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상담 선생님이

왜 (자기자신을 포함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중세 즈음까지는 종교가 그 이유를 만들어주고 있었으나(사람을 죽이면 천국에 갈 수 없다 같은) ‘모두가 종교를 믿는’ 시대를 벗어나면서 저 질문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지 않은 채 그저 계속 달리고 있는 것 같지 않느냐는 말을 했는데 집에 와서도 저 말에 대한 답은 무엇일지, 계속 머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아이에게도 저런 본연의 문제를 고민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좀 깊고 차분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싶은데 학원과 숙제와 수행평가와 눈앞의 시험에 끌려다니는 현실이 안타깝고 고민만 많아진다.

정말 나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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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responses

  1. 단단단

    저 중학교가 린짱 나온 중학교 였다고??!!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했는데 아는 사람네 동네라고 하니 더 충격적이야!!.
    모든 사건이 하나로 이어져 우리 사회의 커다란 문제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맘이 아파. 우린, 아이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배우고 있는 걸까?? 정작 배워야 할 것들 (실패 혹은 거절을 수용하는 법이라던가, 힘들어 지면 주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라던가)은 어디서 알려주는 걸까??
    매일매일 뉴스가 너무 가혹한 일들과 화나는 일들만 가득해서 어디까지 견디나 보자!! 라며 대결하는 느낌이야- 현실도피처를 자꾸 찾게 되는듯!!
    뭐… 그래도 힘 냅시다!! : )

    1. Ritz

      나는 영상 안 봤는데 린양 말로는 작년 담임 선생님이 모자이크 상태로 인터뷰도 하셨더라고…-_-;

      린양 학교가 남학생:여학생 비율이 2:1이라 3년 내내 너무 마음에 안 들었거든.
      남학생 수가 월등히 많으니 그맘때 나이 남자애들이 아무래도 더 큰소리를 낸다고 해야 하나, 으스댄다고 해야 하나. 남녀 학생 비율을 못 맞출 거면 제발 분반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저런 뉴스를 보니 너무 아찔하더라고. 이게 올해 있을 수도 작년에 있었을 수도 있는 거잖아.

      정말 요즘 부모들이 아이들한테 뭘 가르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1. 단단단

        이 정도의 성비면 분반 필요해 보이는데!!!

  2. misha

    아…세 이야기 모두 충격적이지만 전 마지막 세번째가 제일 쇼크였는데…더구나 린양 졸업한 학교였다니 더더욱 심란하셨겠어요ㅠㅠ 제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가는 물론이고 내 아이가 만나는/혹은 만나게 될 아이들도 잘 자라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1. Ritz

      혜린이 말로는 어제 학교 가니 애들이 온통 저 이야기였다더라고요.

      아이 키우면서 아이나 엄마들 중에 정말 이해가 어려운 사람들도 종종 만나다보니 내 아이가 같이 살아나갈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지, 살아갈 세상은 어떨지 가끔은 걱정이 되네요.
      우리 때보다 너무 이른 나이에 온갖 미디어와 매체에 노출되며 안전망 없이 자란 세대가 아닌가 싶어요.

  3. yuna kim

    마음이 무겁네요. 어제도 2학년 아이 받아올림 가르치고 오늘도 눈 밑 까만 중학생 애 배웅하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었는데… 정말 왜 우리는 사는 걸까요?…

    1. Ritz

      어른인 우리가 중심을 잘 잡고 아이를 잘 이끌어줘야 할 텐데 그러고 있는지 가끔 자신이 없네요.

  4. Jieun Min

    무단횡단 사건은 몰랐었는데… 그런 일도 있었고만…

    1. Ritz

      어쩌다보니 듣게 됐네. 혜린이랑 같은 학년 애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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