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화요일, 일주일만에 건강 검진 결과가 날아왔다.

재작년 검사받았던 곳은 결과지를 우편으로 부쳐줘서(심지어 위내시경 찍은 사진까지 고스란히… 굳이 이것까지 안 챙겨주셔도 되는데….) 보고 나서 버리는 것도 한번 더 일이었는데 올해 간 곳은 검사 끝나고 나올 때 ‘결과는 카톡으로 보내드릴게요’ 하길래 카톡창 한가득 결과가 뜨는 걸 상상했더니(🙄) 검진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링크를 발송해주는 방식이었다.

건강검진 결과를 받을 때는 언제나 근거 없이 걱정이 앞서는 법. 심난한 마음으로 링크를 열었는데 난데없이 첫줄부터

‘술을 줄이라’

고 되어 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몇년째 맥주도 거의 마신 기억이 없는데 혹시 다른 사람과 결과가 바뀐 건가, 내가 대체 문진표에 뭘 썼던 건가 기억을 마구 거슬러 가보니 문득 짚이는 게 음주량에 대해 묻는 항목에 ‘최고로 많이 마실 때의 주량’ 비슷한 항목이 있어서 적어넣은 기억이 난다. 그게 아무래도 ‘하루에 최고로 많이 마실 때’ 였던 모양. 이른 아침부터 가서 비몽사몽 제정신이 아니었나…

그리하여 나는 매일 소주를 한 병씩 때려 마시는 여자가 되었고 결과표에는 매 페이지마다 ‘술을 줄이라’고 되어 있으며 음주량 관련 항목에는 모두 뻘겋게 경고 마크가 붙어 있었다…

이런 느낌인가…

‘술을 줄이라’는 문구 말고 다른 결과들은 별 문제 없다고 나와서 그냥 알아서 걸러서(…) 보면 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왠지 찜찜해서 병원에 전화해 ‘건강검진 결과 카톡을 받았는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음주량에 대해 제가 실수로 잘못 기입을 한 것 같은데…’까지 말했더니 이런 경우가 많았던지(역시 그 항목 질문이 좀 이상했던 거야!) 저쪽에서 한번에 알아듣더니 수정이 가능한 항목인데 수정을 하시겠냐고 물었다. 근래 거의 술을 마신 적이 없다고 했더니 음주한 적 없다고 수정해서 다시 결과를 보내주겠다고 하고 통화 끝.

한 20여분 뒤에 다시 링크를 받았는데 ‘술을 줄이라’는 문구는 모두 사라져 있었다.
나의 일상은 언제나 한번에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는 시트콤. 😑

어쨌거나 다행히 건강검진 결과는 별 이상없이 클리어. 이틀 늦게 했던 대장 내시경 결과도 별 이상은 없다고 오늘 전화로 받으며 올해의 숙제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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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sponses

  1. misha

    음…전 다른 케이스인데 ‘평소에 술을 자주/얼마나 마시는가?’에 대한 질문에 ‘한달에 두 세 번 정도, 맥주 한 두 캔 정도’라고 대답했더니 빤히 쳐다보면서 ‘정말요?’하고 되물으시더라고요. 뻥친 게 그렇게 티가 났나봐요(…) 그렇다고 일주일에 두 세번 정도, 맥주 500짜리 한두 캔 정도라고 이실직고는 차마 못 하겠더라고요ㅠㅠㅠㅠ

    1. Ritz

      아놬… 이 글 읽다가 빵 터졌어요. 혹시 술을 안 마실 리 없는 관상이신 건가요. 어떻게 그냥 보고 그게 뻥인 걸 알까요. ㅋㅋㅋㅋ
      뭐 제가 적은 것처럼 매일 소주 한병도 아니고(….) 일주일에 두어번 맥주 5백씩은 괜찮지 않을까요. ^^;; 주변에 직장생활하면서 집에서 기분전환 삼아 그 정도 마시는 분들은 꽤 본 것 같은데. ^^;;;

  2. 나도 그랬음.. 술담배를 줄이래.. 아니. 술담배를 안하는데? 생각했더니만 같은 상황이었지.. ㅎㅎ

    1. Ritz

      문항을 좀 잘 만들어놔야할 것 아녀. =_=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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