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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처음에 배용준이 사극을 찍는다는 이야기가 연예가 소식을 전하는 프로그램들에서 나올 때만 해도 ‘저 얼굴로 왠 사극, 저 영화 망했군‘했습니다. 이미숙이나 전도연같은 배우들이야 기라성같지만 언뜻 보기에 그다지 끌릴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으나 막상 개봉이 가까워오자 이 영화는 ‘야하다‘와 ‘화면의 화려한 색감‘이라는 두 요소로 마케팅 방향을 잡더니 홍보를 때려붓더군요. 전도연의 벗은 몸이나 배용준의 벗은 몸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실제로 영화도 별로 안 야했습니다. -_-;) 얼마 전에 ‘장화, 홍련‘에서의 그 화려한 색감이 생각났던 탓에 ‘화면의 화려함‘에 끌려 보러 갔습니다. 의외로 시사회 이후의 평들도 괜찮은 편이더군요.

이 영화는 쇼데를로 드 라끌로의 ‘위험한 관계‘라는 소설을 ‘한국적으로‘ 리메이크한 것으로, 의외로 성공적으로 한국화했습니다.
한국적인 귀족 사회의 화려함과 약간은 나른하고 퇴폐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 속에서 교차하는 등장인물 간의 감정의 고리들을 매끄럽게 끌고 나가서 보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정절녀 숙부인 정씨(전도연)에게 소위 요즘 말로 ‘작업‘을 걸기 위해 전념하는 조원(배용준)과 뒤에서 교묘히 이야기를 쥐고 나가는 조씨부인(이미숙), 이 두 사람 사이에서 놀아나는(-_-;) 소옥이의 개그 때문에 가볍게 가볍게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후반에 이르러서는 뜻밖에도 비극으로 마무리가 되지만 그 흐름이 그다지 부자연스럽다거나 하진 않더군요. 오히려 정신없이 웃으면서 봤던 만큼 후반부를 보면서 등장인물들의 독백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더 절절한 맛이 있었습니다.
원래 배용준이라는 배우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을 만큼 연기를 잘 했습니다. 거기에 이미숙의 무게감과 전도연의 차분함이 어우러져 한층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았나 싶네요. 이미숙과 배용준의 연기 호흡도 상당히 죽이 잘 맞았습니다. ^^;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옷 색 배치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는 정말로 화면이 볼만했습니다. 얼마 전의 장화, 홍련에서 봤던 그 눈부실만큼 강렬한 색감도 멋있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기존의 틀을 깨고 한복에 정말로 고급스럽고 세련된 색을 유감없이 사용해서 화면을 우아하게 만들었습니다. 캐릭터 제각각의 성격을 옷 색으로 드러내려 한 것 같은데, 마냥 눈이 부시기만 한 밝은 색이 아니라 적절히 절제되었으면서도 보는 사람들이 감탄할 만큼 색을 조화롭게 썼더군요. 게다가 지금까지 나왔던 사극들과는 다르게 배경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마지막에 숙부인이 조원을 따라가는 장면 같은 것은 인상에 오래 남았습니다.

여자 배우 중에서는 지금 이 사람만큼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외국에 소개할만한 ‘한국적‘이라는 건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 같이 재미를 무시한 작품이 아니라 이 ‘스캔들‘같은 작품일 듯합니다. 실제 조선 시대는 꼭 유교에 갇힌 어두운 중세가 아니라 귀족적인 문화를 향유하는(영화 속에서 배를 타고 음악을 즐기는 장면은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사람사는 시대였을지도요.
엔딩은 가슴이 싸아해질 만큼 비극적이었지만 그래도 보는 내내 유쾌한 영화였습니다. 상반기에 한국 영화 중에서 ‘살인의 추억‘이 있었다면 하반기에는 이 ‘스캔들‘이 장악하지 않을까 점쳐봅니다.

ps. 영화관에서 ‘금발이 너무해 2‘의 광고 문구들을 보고 있자니 *플님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_-
“10월 2일, 전국은 온통 핑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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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onses

  1. 김형진

    …지금껏 배용준이 이리도 멋지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아니, 없었다). 색이 참으로 멋진 것에 비해 사운드가 참으로 후진 영화이기도 하더군요. 음악은 나중에 보니 이병우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