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인문계 학생 중에 꽤 많을 것 같긴 하지만, 어찌됐든 한때 사학과에 가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잡다구리한 역사 서적들도 좋아하고 고등학교때도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내내 잡고 살았는데, 결정적으로 저는 암기과목에 매우 약하다는 어이 없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_-;;

대학을 인문학부로 들어갔기 때문에 막판에 사학과와 철학과를 두고 고민을 했었는데, 아빠가 사학과는 밥벌어먹기 힘들다고 철학과를 권해서(상당히 오십보 백보일 것 같지만) 결국 철학 전공을 선택했지요. 뭐, 어느 쪽이든 다 좋아하는 분야이긴 했으니까요.

사설이 좀 길었지만,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역사서적들은 좋아합니다. 왠만한 소설들보다 차라리 읽을 맛이 난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에 기초한 것들이다보니 더 흥미진진한 맛도 있고 말이지요.
지난번에 미쳐야 미친다를 보고 나서 뭐 괜찮을 게 없을까 인터넷 서점을 뒤지다 보니 이 책, 궁녀-궁궐의 꽃이 보이더군요.
요즘 책을 좀 자주 지르는 것 같아서 잠시 머뭇거렸는데 결국은 선물로 받았습니다. ^^v

일단 이 책은 얼마 전에 태풍처럼 휩쓸고 간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에 약간 편승하는 기획으로 보이더군요.
일반적으로 찾기 힘든 궁녀들에 대한 기록을 어느 정도 모아두었다는 점에서는 유용한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아서, 그야말로 ‘옛날에 궁녀들은 이랬다더라~’ 하고 편하게 이야기 듣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지요.
노비에서 궁녀, 결국에는 세종의 후궁까지 올라가 한평생을 평안하게 산 신빈 김씨나 자신의 월급을 모아 1만여평의 땅을 샀던 상궁 박씨 등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상궁 박씨의 경우 자신의 재산을 결국 양손주를 들여서 물려주었는데 그 양손주는 박씨가 죽고 나서 곧바로 그 땅들을 반값도 안되는 가격에 팔아버렸다는 뒷맛 씁쓸한 엔딩이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_-;

반면, 기대했던 것보다는 내용이 좀 겉핥기에 그친 편이었습니다.
궁녀들의 일상적인 면과 직업적인 면, 양쪽 다 다루면서 역사 속에서 눈에 띄는 궁녀들의 기록을 다루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너무 많은 토끼를 잡으려다보니 다 읽고 나서 어느 토끼를 잡았는지 딱 감이 오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읽고 나서 2% 부족한 느낌이 약간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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