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요미우리 신문의 제16회 ‘일본판타지소설대상’ 우수상 수상작인 이 ‘보너스 트랙’은 요 근래에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유쾌하면서도 읽고 나서도 왠지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국내에서 판타지라고 하면 칼 잡고 용이 날아다녀야 할 것 같지만 여기서 판타지라 하면 ‘비현실적인 요소’를 가진 장르를 지칭하는 말이니 어감이 좀 다르긴 하네요. ^^

표지로 봐서는 청소년의 로맨스 소설같은 분위기이지만(표지도 원작보다 약 100만배 예뻐졌음..;) 실제 정체는 어느 사회초년생과 (비오는 날 AV 빌리러 가던 길에) 창졸간에 뺑소니 차에 치어 유령이 되어버린 대학생의 범인잡기 되겠습니다.
큰 줄기는 범인잡기이지만 작품 전체를 감싸는 것은 유령 요코이 료타와 삶이 한참 피곤한 사회초년생 쿠사노 테츠야의 코믹한 동거생활기라고 봐야겠네요.
전지적 작가 시점과 료타의 1인칭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구성도 독특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어느 등장인물의 말처럼 ‘다른 유령들처럼 좌절도 한도 남지 않았지만’ 미련만은 남아 유령이 되어버렸지만 자신의 새로운 생활(…)에 쉽게 적응하고 그 나름대로 즐기며 사는, 왠지 보는 사람이 덩달아 즐거워지는 유령 료타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갑작스레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사회에서도 왠지 늘 주변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어 괜히 아쉽기도 하더군요.

전체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유쾌한데 작가가 순간순간 완급을 조절하는 솜씨가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묘합니다. 읽는 내내 웃다가 찡하다가 정신이 없더군요.
감동을 해야 할 시점에서는 작가 자신은 절대 그 감정에 침몰되지 않은 상태로 읽는 이를 끌어들이고, 재미있어야 할 지점에서는 툭툭 던지듯이 개그 요소를 터뜨립니다.
저는 료타가 자신의 장례식을 찾아가는 에피소드와 후반부의 차 안의 유령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

책 분량도 제법 되는데 처음 잡은 날에 그냥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네요.
이래저래 마음만 뒤숭숭해지는 가을에 잡기에는 딱 좋은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왠지 갑자기 인생이라는 앨범에서 연주가 끝나고 얼결에 보너스 트랙을 받은 주인공이 ‘본 트랙을 연주하고 있을 때 후회없이 잘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자매품(…)으로는 제16회 ‘일본판타지소설대상’ 대상수상작 ‘라스 만차스 통신’이 함께 발매되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라스 만차스 통신보다는 이 보너스 트랙 쪽에 한표 주고 싶네요.
소재나 무게감 때문에 우수상으로 밀린 게 아닐까 싶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치는 대상에 비해 월등합니다. ^^

ps.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 료타는 아무리 봐도 개굴님(…)과 너무 느낌이 비슷해서 보는 내내 친근감이 아주 장난 아니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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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sponses

  1. 근데 개굴님은 누군가요? (…)

    1. 리츠코

      개굴님을 개굴님이라 부르지 못하고…(이하생략)

    2. 미사

      호개호굴을 못하는 슬픔이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