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2007년 시카고 경매장에서 시작한다.
경매장을 찾은 존 말루프는 그곳에서 구매한 물건을 살펴보다가 자신이 엄청난 걸 찾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자에는 무명 사진작가가 찍은 네거티브 필름이 잔뜩 들어있었고 그 사진들이 범상치 않음을 직감한 그는 경매에서 같은 작가의 사진을 구매한 사람들을 찾아내 사진과 네거티브 필름을 사모으기 시작했고 그 상자에 들어있던 사진 봉투에 적힌 이름으로 사진을 찍은 작가의 이름이 비비안 마이어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그녀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2009년 4월, 시카고 신문의 부고란에서 발견한 보모에 대한 부고 기사에서 그녀가 이 사진들의 주인임을 알게 된다. 부고에 따르면 그 보모는 ‘뛰어난 사진 작가’였고 ‘존과 레인, 매슈 3형제의 제2의 어머니’였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이 책의 작가의 말대로 어떤 필연적인 운명의 힘이 아니고서는 일어나기 힘들 정도인데, 그래서 사람들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공개됐을 때 더 호기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흔히 반 고흐가 살아 생전에 가난과 악전고투하며 작품활동을 했지만 사후에 명성을 얻은 점에 안타까워하지만 비비안 마이어는 심지어 살아 생전에 그녀의 작품이 발견되었고 인터넷에서는 시끄러웠지만 그녀 자신이 인터넷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일생을 살아왔기에 살아있는 동안에도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알지도 못한 채 떠났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건 그녀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일상인 지금이라면 좀더 빠르게 자신의 작품들을 평가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애용했던 카메라 롤라이 플렉스로 정사각형의 사진들을 남겼고 후반에는 홈 비디오로 기록을 찍는데에도 몰두했다고 하니 아마 지금이라면 인스타와 유튜브 브이로그 양쪽을 섭렵하지 않았을까.
책을 읽기 전에는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이 그저 찍는 데에 즐거움을 만끽했던 게 아닐까, 추측했었는데 다 읽고 나니 그녀는 자신의 사진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충만했지만 그럴 만한 루트를 잘 찾지 못했던 데다가 말년에는 저장 강박으로 모은 것을 내놓을 수 없게 되어버렸을 뿐이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 그녀의 사진이 어느 정도 작품성이 있는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그녀가 찍은 인물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거침없이 렌즈를 바라보는 피사체의 또렷한 시선, 대담하게 화면을 꽉 채운 구도에 끌린다.
자신의 행적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숨긴 채 평생을 산 한 사람의 일생을 이 정도로 디테일하게 찾아낸 작가도 새삼 대단하고 이렇게 세상을 등지고 사회적인 소통이 힘든 사람이 평생을 ‘보모’라는 직업으로 살아간 점도 놀랍다.(그 시절 부모들의 보모를 고르는 기준이 대체 뭐였단 말인가…)
요즘 SNS에 흔히 오르내리는 ‘비혼의 삶’이라는 주제와도 통하는 면이 많았던 책.
내가 지나가듯 접한 짧은 길이의 해외뉴스만 보고 생각했던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을 타인의 집에 고용되어 생계를 이어나간 고독한 독신 여성이었는데, 다 읽고 나니 본인이 그리 외롭다고 느끼지도 않았고 오히려 충분히 행복하게 잘 누린 삶으로 보여 나 역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기꺼이 즐거웠다.
https://vivianmaier.blogspot.com/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11월 13일까지 그라운드 시소 성수에서 열리고 있다는데(이 책도 여기에 맞춰 출간한 모양) 기회가 된다면 들러보고 싶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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