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누구나 실수를 한 후 되돌아가서 고쳐버리고 싶은 경우가 한번쯤은, 혹은 자주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인지 시간을 넘나드는 타임 리프물은 꾸준히 등장하는가 봅니다.

짜임새가 탄탄한 타임 리프물들은 마치 퍼즐을 맞추어나가는 듯한 재미가 있기 마련인지라 굉장히 좋아하는 장르로군요. 타카하타 쿄이치로의 타임 리프라든지 애쉬튼 커쳐가 나왔던 나비 효과라든지 그런 작품들 말이죠.

작년에 게드 전기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의외로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상영중이던(그렇다고 수입이 더 좋은 건 아니겠지만..;) 또 하나의 타임 리프물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고 왔습니다. 에비스쪽 극장에서 봤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네요.

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 소설 ‘시간을 달리는 소녀'(1965년. 츠츠이 야스타카 작. 時をかける少女)는 일본에서는 거의 타임 리프물의 고전으로 대접받으며 이미 여러번 미디어믹스가 된 적 있는 작품으로, 이번 애니메이션판은 그 소설의 애니메이션화라기보다는 작품의 외전(?)에 가까워보입니다. 원작의 여주인공은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 마코토의 고모로 나오고 있으니까요.

저같은 경우 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대해 처음 들은 건 타카하타 쿄이치로의 타임 리프의 작가후기에서였네요. 애니를 보니 타임 리프에서 카시마 쇼우카가 이리저리 정신없이 리프했던 건 딱 이 작품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더군요. 다만 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주인공 마코토는 자신의 의지로 (달려서) 리프하는 점이 차이더군요.

여고생 콘노 마코토는 친하게 지내는 남자 친구들-츠다 코스케와 마미야 치아키-과 방과후 캐치볼을 하는 것이 여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더 즐거운 평범한 여고생. 특별히 누구와 사귄다기보다는 셋이 함께 노는 그 시간이 즐거운 것이지만 각각의 진로를 정해야 하는 3학년이 되기 직전에 그들의 관계는 조금씩 변해가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마코토는 우연히 타임 리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그녀가 부딪히는 일상에서 고치거나 외면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과거로 돌아가 재생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일들은 한층 더 복잡하게 꼬여만 갑니다. 그리고 그녀가 얻은 타임 리프 능력의 이면에는 또 하나의 숨겨진 비밀이 있었는데…

소재 특성상 판타지라면 판타지겠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풋풋하고 애잔한 학원연애물에 가깝습니다.
주인공 마코토와 코스케, 치아키간의 캐릭터 밸런스도 잘 맞는 데다가 사다모토 요시유키 캐릭터 디자인 특유의 살짝 나른한 느낌(예전 에바의 나기사 카오루와 닮았다면 닮았으려나)의 치아키 캐릭터나 성실하면서도 차분한 모범생 코스케도 마음에 들더군요.

초반에는 마코토가 시간을 열심히 되돌리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인해 즐겁게 웃다가 후반부에 가면 뇌 뒤쪽이 찌잉 울릴 만큼 감동적이면서도 애잔한 연출을 보이는 등, 이야기의 완성도도 훌륭합니다.
더불어 정말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치 옆동네와도 같은 충실한 배경과 소품 묘사, 경쾌한 극 흐름을 따라가는 음악 등 근래에 보기 드문 잘 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이었군요.
개인적으로는 왠지 이와이 슌지의 러브 레터와 이어지는 감정의 연장선이 느껴져서 러브 레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볼 것 같네요.

보고 있으면 정말 내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은,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이게 하는 귀여운 작품이었습니다. 나중에 DVD가 출시되면 구매 순위 1위 작품이로군요. : )

4 responses

  1. 민윤

    우리나라에선,, 얼마전 고소영이 출연했던 ‘언니가 간다’라는 타임리프성 영화가 나와서 쫄딱 망했더랬지… ‘첫남자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고색창연하고 유치찬란한 마케팅 탓도 있었지만, 온통 ‘남자’에게 운명적으로 매달리는 ‘여자’이야기만 그려낸 영화탓도 있었던 듯… 이 애니메이션은 보고싶어지는 걸…

    1. 리츠코

      언니가 간다가 타임리프가 소재였구만. 타임리프는 잘 쓰지 않으면 엄청 유치해지는데 그 영화는 기사만 봐도 영 안 땡기긴 하더라. 최강희가 하기로 했던 것 고소영이 뺏어서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홀랑 망했으니 고소영은 이제 영화 찍을 수 있을라나. -_-;

  2. 한정판 DVD 단돈 10500엔(세입) 되겠습니다 (…)

    1. 리츠코

      츠타야에서 빌려서 봐야겠군요. (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