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를 가끔 챙겨 보는데 이번 주에는 모차르트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러고 마침 예약도서를 찾으러 간 김에 둘러보다 이 책이 눈에 띄어 빌려왔다.
영화 ‘아마데우스’ 세대인 나같은 사람에게 모차르트란 ‘천재’, 그리고 살리에리와의 경쟁(이제는 영화에 왜곡이 많이 들어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과 무덤조차 알려지지 않은 비극적인 최후 등으로 기억되는데 이 책을 읽은 후의 모차르트는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존재이며 천재였지만 결코 재능에 기대어 태만한 적도 없는, 당시의 음악가들이 여느 왕실의 ‘고용인’ 위치였던 데에서 탈출해 프리랜서의 길을 만들어나간 개척자로 기억할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재능을 누구보다 일찍 발견했던 부모의 존재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알아보고 계발하고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분주하게 뛰어다녔던 설계자이자 연출가는 아버지 레오폴트였다. 레오폴트는 아들 모차르트가 유럽에서 가장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치밀하게 기획한 뒤 직접 데리고 다녔다.
p314
문제는 부모의 안목과 추진력이다. 모차르트의 유년기에서 가장 특별하고 남달랐던 점은 레오폴트의 존재였다. 따라서 ‘우리 아이를 모차르트처럼 키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p317
‘모차르트 같은 아이가 있다면 과연 우리는 레오폴트 같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이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10세, 6세인 남매를, 아이들 엄마 없이 아빠 혼자 데리고 유럽을 (비행기도 아닌) 마차 여행으로 몇 년에 걸쳐 돌아다닌 걸 보면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도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다.(…)
모차르트가 재능을 타고난 건 사실이었지만 그 재능을 알아보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개화시키기 위해 음악가 레오폴트가 아닌 ‘모차르트의 아버지’로 남은 아버지 레오폴트가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더 눈에 들어왔고 그렇게 아이에게 넓고 화려한 세상을 보여준 뒤에 의외로 아이에게 원했던 결과값이 수수했던─어딘가 왕가의 궁정악장이 되어 안정적인 수입으로 가족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던─점도 흥미로웠다.
1778년 2월 편지에서 “나는 대주교의 행동에 굽힐 수 있지만, 너의 행동에는 무너지고 마는구나. 대주교는 나를 아프게 만들지만, 너는 날 죽게 할 수도 있단다”라고 괴로움을 토로했던 건 모차르트가 아니라 레오폴트였다.
p172
모차르트를 ‘자식’이라기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노력의 ‘결과물’로서 인식했던 그에게 성년이 된 자식을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은 정말로 ‘죽고싶을 정도’의 고통이었을지도.
그렇다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도 이렇게 솔직하게 자문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모차르트처럼 똑똑 하고 재주 많은 아이가 갑자기 부모 품을 떠나겠다고 선언하면 흔쾌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결코 대답하기 쉽지 않다. 독일의 음악학자 폴크마르 브라운베렌스는 “위대한 교육자였던 레오폴트가 교육의 원래 목적은 놓아 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고 말했다.
p318
그래서 레오폴트가 ‘좋은 부모’였는가 라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는 어려운 게, 음악가로서의 아들은 완전하게 키워냈지만 한 사람의 몫을 하는 ‘성인’으로 잘 키워냈는가,는 또 다른 이야기.
모차르트 말년의 경제적인 궁핍이나 기타 등등의 문제는 아이를 자립할 수 있는 한 인간으로 키우기보다는 재능을 ‘육성’하는 데에만 치중했을 때에 벌어지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지.
결론적으로 모차르트는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재능에 못지 않게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것을 완전하게 펼치도록 도와줄 부모를 만났고 사후에는 잊혀지지 않도록 빠르게 일생을 기록으로 남긴 배우자가 있었다.
영화라는 허구의 이야기에 가려져 몰랐던 한 인간의 여러 모습을 알 수 있었던 한 권.
그리고 다시 한번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은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