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제인 에어’도 ‘폭풍의 언덕’도 좋아해서 브론테 자매들에 대한 좀 자세한 걸 알고 싶었는데 마침 타임라인에 소개글을 보고 바로 주문.

읽고 있자면 외딴 곳에서 친구도 거의 없이 가족들끼리만 서로 어울려 놀며 자란 네 남매는 사회로 나갔다가 적응에 실패하고 반복해서 집으로 돌아온다.(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한 집에 모여 더 이상 나갈 생각 안하고 집에서 어떻게든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다…)
네 남매는 각자 뚜렷하게 다른 성격을 가졌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 감수성이 예민하고 어딘가 불안정해서 이들이 살고 있는 바람 부는 벌판같은 배경을 상상하다보면 읽는 내내 마음이 황량해진다.

보통 평론가들이 이렇게 은둔해서 단조로운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유난히 격정적인 이야기를 지어냈을까 라고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결국 ‘제인 에어’도 ‘폭풍의 언덕’도 결국 작가 자신들이 겪은 경험과 본인의 모습을 펼쳐낸 것일 뿐.
어린 나이에 환경이 나쁜 기숙사 학교에서 병을 얻어 죽은 언니들은 제인 에어의 천사같은 친구로 바뀌었고, 로체스터가 유부남인데도 결혼을 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사라지는 제인 에어는 유부남 교수를 포기하지 못해서 질척거리는 샬럿 브론테의 양심이었을테고, 한밤중에 로체스터 방에 와서 불을 지르는 전처 버사 메이슨은 회사도 잘리고 집에 돌아와 술에 절어 결국 침실에 불을 지른 브랜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책을 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가 갔던 건 ‘폭풍의 언덕’의 에밀리 브론테였는데 정말 대인기피증에 가까울만큼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 은둔하면서 잘도 그런 과격한(?) 이야기를 펼쳐낸 이 여자는 글이 없었으면 그 속내를 어떻게 풀었을까 싶기도 하다.

6남매 중 그나마 가장 오래 산 샬럿 브론테는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가-그것도 자신의 창작물인 제인 에어처럼 본인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와 한 것도 아니고!- 임신 중 심한 입덧 등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사망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녀가 결혼 후 친구에게 보낸 편지글은 지금 시대의 누군가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다.(…)

그녀(샬럿 브론테)는 6주간의 결혼생활이 자신의 ‘생각의 색채’를 바꿔놓았다는 말로 설명을 시작한다. 그녀는 ‘아무에게나 무분별하게 결혼을 권하는’ 유부녀들의 행동은 ‘욕먹어 마땅하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 여성에게 얼마나 큰일이고 이상한 일이며 위험한 일인지’ 이제 알았다는 것이다.

다들 워낙 요절한 데다가 대단히 이야기거리가 많지 않은 삶은 살아서 인생만으로는 분량 뽑기(?)가 힘들었는지 그 시절(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풍습이나 분위기에 대한 설명이 많아서 좀 산만했지만 이 작가들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이었다.

ps. 사실 이 가족 중에 가장 가혹한 인생을 산 사람은 아버지인 패트릭 브론테가 아니었을까. 아내와 여섯 남매를 모두 먼저 보내고 본인은 84세까지 살아남아서 결국 마지막은 하나뿐인 사위(샬럿 브론테의 남편)이 돌봐줬다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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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1. misha

    가뜩이나 예민한 성향의 형제 자매들이 한 공간에서 부딪치다보면 더욱 날이 세워져서 내면으로 침잠하는 글이 나온건가 싶기도 하네요. ㅠㅠ 그나저나 아버지 인생 어쩔…;; 지금으로 봐도 나름 장수하신 편인데 참으로 박복한 삶이었군요. ㅠㅠ

    1. Ritz

      엇, 그러고보니 저런 남매들이 한 집에 복닥거렸던 것도 문제긴 문제겠어요. -_- 책 보면 술이랑 약에 중독된 브랜든이 결핵으로 죽고 나서 나머지 자매들이 크게 슬퍼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도 적혀있지요. ( ”)

      저 아버지는 사실 요즘 기준으로도 장수를 누렸는데 자식 누구 하나 그 유전자 안 받아간 게 아쉬울 따름이예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