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으로는 지금까지 본 중 가장 재미있었던 전쟁 영화.(전쟁 영화에 재미 운운하니 좀 그렇네;)
방구석 1열이었던가, 영화를 꽤 자세히 요약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에서 이미 내용을 봤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러닝타임 두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고, 심지어 도중에는 이걸 작은 화면에서 보면 아까운 것 같아 1/3쯤 보다가 거실로 나가 티비로 마저 봤다. 여러번 보는 영화가 잘 없는데 아무래도 찬찬히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막연하게 영화 기생충과 아카데미에서 붙었던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 보고 나니 세상의 모든 일에는 운때라는 게 있구나 싶다.
이 영화의 스타일이나 소재 모두 기존의 아카데미라면 딱 좋아했을 법한데 마침 영화제가 쇄신(?)을 목표로 한 타이밍에 기생충이 등장했고, 두 작품 모두 너무 훌륭했지만 그저 이 작품은 때를 잘못 만났고 기생충에는 우주의 기운이 한곳에 모였던 게 아닐까.
줄거리는 놀랍도록 단순한데 두 시간을 촘촘히 채워나가는 대본에 놀랐고 길어질만하면 계속 바뀌는 배경, 체리꽃과 같은 소소하지만 지나치기 힘든 상징들, 그리고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의 흐름은 영화를 모르는 사람 눈에도 아름답고, 그럼에도 무심하게 바닥에 널려있는 시체들과 타인에게 베푼 호의가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이 잔인한 전쟁의 순간을 상기시킨다.
이런저런 평을 검색하다가 부기영화에서 이 영화에는 ‘데미안’의 정서가 깃들어 있는 것 같다는 코멘트를 보고 왠지 공감이 갔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왜 이 영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알았다. 그러고보면 내 취향은 나이를 먹어도 참 변하는 게 없어…(생각해보면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독일군인데 말이지)
지난번에 봤던 덩케르크도 그렇고 요즘 전쟁 영화 흐름은 전쟁 속에 피어나는 사랑! 이라든지 물량으로 때려박는 전쟁의 참담함! 이런 쪽보다는 전쟁을 겪는 ‘개인’에 집중하는 추세인 모양인데 전쟁의 잔혹함은 오히려 이렇게 개인이 겪는 모습이 더 가깝고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영화 중간의 스미스 대위의 말처럼 그저 싸우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사상자 수는 그저 숫자로 기록에 남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 수만큼의 죽음과 그 수보다 훨씬 많을 가족을 잃은 슬픔이 있었을 테니 1차 세계대전의 총 사상자만 수천만,이라는 숫자는 볼 때마다 너무 아찔하다.
무슨 힘이 남아있을까 싶은데 아군을 살려야한다는 생각만으로 질주하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두 번의 큰 전쟁의 결과는 위에서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저렇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수행해낸 전쟁터의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터에 나와 총탄에 죽을 일이 없는 사람들이 전쟁을 결정하고 그 결정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다. 전쟁을 결정한 사람이 가장 앞에 서서 가장 먼저 포탄이든 총알이든 맞아야하는 구조라면 전쟁은 지금보다 쉽게 일어나지 않을텐데.
요근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뉴스를 보고 있자니 푸틴을 전쟁터 맨 앞에 세워놓고 싶어진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대해서는 넷플릭스의 ‘Winter on Fire’ 라는 다큐멘터리로 처음 알았는데 그 다큐가 2013년작이니 그뒤로도 역시나 아무것도 나아진 것은 없었구나, 절망스럽다.
이 장면 보다가 주인공이 진짜 요단강 건넌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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