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ula Rasa

올여름은 후속작들의 퀄리티가 모두 상당히 좋은 시즌이네요.
지난번의 슈렉 2에 이어 오늘 본 스파이더맨 2 역시 전편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언뜻 듣기로는 해리 포터 역시 이번 3편이 전편보다 낫다고 하는데(사실 이야기 자체도 아즈카반의 죄수가 가장 재미있었음) 보는 김에 마저 봐야 하나 고민이 되네요.

이번 스파이더맨 2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영웅과 피터 파커라는 평범한 사람의 생활 사이에서 생기는 너무나 인간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많이 다루다보니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꽤 유쾌한 분위기더군요.
물빠지는 스파이더맨 옷의 비애와 자신의 능력을 먹고살기 위해서도 종종 써야 하는 상황들이 딱하긴 하지만 ‘평범한’ 사람인 관객로서는 상당히 공감할 수밖에 없더군요.
이제 시대는 치트키를 먹은 영웅보다는 소시민적인 친근감 쪽을 더 원하는지도 모르겠네요.

1편에 비해 빌딩 사이를 누비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훨씬 더 자연스러워졌고 액션은 전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거미인간의 움직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2편은 사실 액션신들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볼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스파이더맨은 아무래도 배트맨이나 슈퍼맨보다는 ‘현실감’에 비중을 둔 캐릭터라는 게 이번 2편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실제로 만약 남들 모르게 히어로를 하려면 자신의 생활에서 희생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많을 테니까요. 그걸 줄이기 위해서는 역시 ‘돈’이 제일 필요하다는 것도 솔직하게 보여주었습니다… ^^;
보는 내내 ‘배트맨은 집사까지 두고 사는데 쟤는 참 딱하네’ 싶더군요.

이번 2편에서도 역시 메리 제인의 머리 위에는 납치의 별(-_-)이 떴고, 징징대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막판에 피터를 만나러 나오면서 왜 ‘속옷은 안 입고 나왔는가‘ 역시 엄청하게 궁금했지요(피터가 OK하면 그 뒤로는 속전속결로 끝내버릴 참이었는가).
저는 지금까지 봤던 몇몇 맨들의 파트너 중에서는 역시 배트맨의 파트너였던 비키 베일이 제일 나았던 것 같네요.
그나저나 이런 ~맨 류의 불문률이 깨진 채 2편이 끝나버렸으니 다음 3편이 나오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정말 궁금하네요.

ps. 영화 도중의 지하철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같으면 사람들이 냅다 폰카부터 들이대고 그날부터 싸이월드에 ‘스파이더맨의 실제 얼굴!’이라고 떴을 거야, 라고 잠시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