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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후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전시회는 그래도 얼른 움직이는 편인데 이게 조금만 장소가 멀어지면 밍기적거리게 되네요. 시작한지는 꽤 됐는데 그 사이에 비가 와서, 더워서 차일피일하다가 그래도 안 보기는 좀 아쉽지 않을까 싶어 고갱전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고갱이라고 하면 저는 그냥 고흐랑 잠시 같이 살던 화가(…),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 주인공의 실제 모델 정도의 인상만 남아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의 인생도 대충 달과 6펜스에 나왔던 주인공 같았겠거니 하고 알고 있었는데 전시회 보기 전에 한번 훑어 본 고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다르더라구요.

파리의 증권시장이 붕괴되자 주식거래인이었던 자신의 직업도 그리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나이 서른다섯에 하필(?) 직업 화가의 길에 들어섰던 고갱은 당시 이미 다섯 아이를 둔 가장이었습니다. -_-;

화가로 전업 후 닥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아내와의 사이도 멀어져 아내와 아이들은 처가가 있는 코펜하겐에 두고 혼자 파리로 돌아왔다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시골을 전전한 후(이 시절에 고흐와도 잠시 같이 살았었지요. 끝은 안 좋았지만) 결국에는 원시의 ‘낙원’을 찾겠다고 타히티 섬으로 향하지요.
그러나 막상 도착한 타히티섬은 이미 식민지화되어 백인 술주정뱅이들이 뒹구는 곳일 뿐 원했던 낙원도 아니었고, 좀더 깊은 섬으로 들어가서 작품 몇점을 완성한 후 빈곤과 고독에 못견디게 돌아오고 싶어진 고갱은 별의 별 수단을 다 마련해서 다시 파리로 돌아옵니다…-_-;

파리로 돌아와서는 한참 잘나가고 있던 무하 같은 친구들에게 적당히 빌붙어(?) 전전하다가 그 뒤의 인생은 대강 전시회, 상업적인 실패, 다시 타히티 행을 반복하며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서서히 외면받은 채 결국 매독으로 타히티에서 생을 마감했지요. -_-

고갱의 일화들을 보면 일부러 기괴한 모자를 쓰고 다닌다든지 타히티에서 데려온 애인 나이를 좀더 어리게 속여서 소개하며 다닌다든지 다분히 과시욕도 강하고 주목받고 싶어하는 성향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살아 생전에 원하던 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니 내내 괴롭고 고독했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림에 대해 잘 몰라도 화가에 대한 호불호는 있기 마련인지라 저는 고갱의 그림은 그렇게 취향도 아니고 위에서 말한것과 같은 저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한층 더 좋아하지 않다보니(인생을 마음대로 살고 싶으면 애를 다섯씩이나 두지 마…) 이번 전시회는 보고 나서도 뭔가 ‘아, 이 그림들을 원화로 봤구나’ 하는 감동이 다른 전시회에 비해 좀 적었어요..;

그림을 보면서 든 감상은 ‘아, 역시 인쇄할 때 황색은 그렇게 원본이랑 차이가 나지 않는구나’ 라는 점? -_-; 고흐의 그림 같은 건 워낙 붓터치 등이 강렬하다보니 책이나 인터넷으로 보는 것과 원화가 주는 느낌이 확 달라지는데 고갱 그림은 왠지 책이나 원화나 거기서 거기(?) 같더라구요. 크기만 커졌구나 싶고…
전시회 구성도 좀 미묘해서 시대별이 아니라 중기-전성기를 거쳐 한층 더 올라가니 뜬금없이 초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더라구요. 중간중간 고갱 그리고 그 이후라는 현대미술작품들이 같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것도 비전문가 눈에는 좀 겉도는 느낌이었고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해외에 여행을 가더라도 딱히 일부러 찾아볼만한 작가가 아닌데 비교적 손쉽게 국내에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좋았던 전시회였어요. 요즘은 이런 메이저(라고 쓰고 미술 교과에서 봤던 이라고 읽는) 작가들의 전시회가 꾸준히 열려서 다니는 맛이 쏠쏠하네요.

where-do-we-come-from-what-are-we-where-are-we-going-1897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번 전시회 간판(?)은 역시 이 그림이겠죠. 실제로 보면 크기가 꽤 큰데 크기에서 오는 임팩트는 있지만 뭔가 와닿는 건 좀 적은 듯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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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onses

  1. 어디서? 언제까지하는고?

    1. 고갱전은 9월 2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