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무하 전시회는 국내에서만 세번째 보는데, 이번에는 아마 봤던 것 위주겠지 하고 가면 또 처음 보는 작품들이 걸려있을 때마다 대체 이 작가는 평생 얼마나 그렸던 건가 싶다.

매번 전시회 볼륨도 커서 앞의 두번 전시회로 꽤 많은 작품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가니 또 처음 보는 작품들이 눈에 띄고 3년 전의 전시회가 무하의 인테리어 디자인, 장식 미술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상업용 포스터 위주라 또 새로웠다.

유난히 엄청나게 사이즈가 큰 작품들이 몇몇 보여서 특이하다 했는데, 전시회장에 마련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니 이번 무하전은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 이반 렌들의 개인 소장품을 주축으로 한 전시회였다. 가짓수나 다양함이나, 개인의 소장품이라기에는 너무 압도적이라 지금까지 미술품 모으는 사람을 별로 부러워한 적은 없었는데 다큐멘터리에서 이반 렌들이 저택의 큰 벽에 자신이 좋아하는 무하의 작품을 가득 걸어놓고 내내 감상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으로 ‘와, 나도 집 벽에 저렇게 거대한 무하 작품을 걸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_-;

무하는 보통 상업적으로 화려하게 성공한 화가 정도로 알려져있지만 개인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면 그야말로 먼치킨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회화 뿐 아니라 조각에서 무대예술까지, 천재가 성실하면 저렇게 무섭게 모든 영역을 장악할 수 있구나 싶은데(전시회장 끝에서 도슨트 타임과 겹쳐서 그쪽 그림을 마저 보려고 잠시 설명을 들으며 기다렸는데 도슨트 말로는 체코에 돌아가서 작업한 ‘슬라브 서사시’는 20여년을 매일 10시간씩 그리면서 완성한 작품이라고. 웹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각 작품이 가로세로가 4-5미터가 기본인 엄청난 대작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조국인 체코의 독립에 열심이었던 애국자, 민족주의자로 말년에 프라하가 독일에 점령되면서 그 작품 성향 때문에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고문당한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인간적으로도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에 드는 스타일리시한 그림을 많아서 전시회를 보러 갔지만 관련 서적 등으로 자세히 접하니 인간적으로 더 호감이 가서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또 무언가 새로운 면을 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화가. 이 사람의 생애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자신의 조국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열정 때문인지 변월룡의 이야기를 읽을 때와 비슷한 감동이 있다.

Pantheon of Czech Music 1929

무하의 아르누보 스타일 상업 작품들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체코에 돌아가서 그린 정통 회화 분위기도 좋아하는데 이번 전시회는 그쪽으로는 작품이 많이 오지 않은 편이라 그 점은 좀 아쉬웠다.

이번 무하전은 삼성역 섬유센터 안에 새로 생긴 마이아트뮤지엄이라는 곳의 첫 전시회였는데 전시회장 크기가 아주 큰 편은 아니어도 동선이 나쁘지 않아서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았다. 우리집에서는 예술의 전당보다 오히려 접근성이 좋아서(대중교통이 잘 돼 있어서…) 이후로도 좋은 전시회가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 :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