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요즘의 트위터에 크게 돌아다니는 RT 글들을 보고 있자면 모두 짧고 강렬하게 자신의 기분을 표현할 뿐 언어를 풍성하게 유지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 보여서 한국어는 종국에 ‘시발’과 ‘존나’와 ‘미친’만 남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도 매일 쓰는 말만 쓰고 사니 아름다운 것을 봐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표현이 궁색해져서 올해는 일부러라도 한국 작가들의 시집이나 수필집 같은 걸 찾아서 볼까 생각하던 차에 언뜻 타임라인에 백석의 전쟁 이후 북한에서의 삶에 대한 픽션 소설이 나왔었다는 글을 보고 주문했다.
백석 평전을 읽은 이후로 시가 아닌 시인 백석에 대한 흥미는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백석 이야기라고 또 눈이 가는 걸 보니 그래도 여전히 내가 가장 끌리는 시인은 백석인가보다.

“저 역시 시를 썼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제 안에서 점점 지워지고 있습니다. 음식 이름들, 옛 지명들, 사투리들… 폐허에 굴러다니는 벽돌 조각들처럼 단어들은 점점 부서지고 있어요.”

(나는 시인은 아니지만 저 ‘단어들이 부서지고 있다’는 말이 왠지 와 닿더란.)

제목인 ‘일곱 해의 마지막’은 1956년부터 시작해 백석이 북에서 마지막으로 시를 발표한 1962년까지, 7년 동안의 이야기로 일제 시대에도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며 꿋꿋이 우리 말을 노래하던 시인이 그 시대를 벗어난 후에 오히려 훨씬 더 혹독한 환경에서 시어를 빼앗긴 채 끊임없이 괴로워하다 마지못해 쓴 기색이 역력해보이는 ‘수령님 찬양’ 동시를 한편 남기고 다시는 무엇도 세상에 내놓지 않은, 마지막 시에 대한 결심과 그 후의 침묵에 대해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한편의 픽션이었다.

몇년 전 근원 김용준의 수필을 읽고 나서 그의 일생에 대해 알아보니 말년에 ‘김일성의 사진이 들어 있는 신문을 그대로 밖에 버린 사실이 드러나 큰 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이자 자결했다’라는 이야기도 있다길래 저 시절 각자의 이유(백석의 경우는 원래 고향이 북한이라 요즘은 월북 작가가 아닌 재북 작가라고 표기하기도 하는 모양)로 북에 있었던 예술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예술혼을 팔든지 아니면 목숨과 바꾸는 기로에 서 있었구나, 생각했는데 백석의 경우는 결국 자유롭게 쓸 수 없는 환경에서 시인으로서의 삶을 접고 자신의 인생의 나머지 시간은 가족과 함께하는 협동농장의 양치기의 삶을 선택한 게 아닐까.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아까운 일이지만 그곳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지냈다고 하니 본인에게는 꼭 불행하기만 한 여생은 아니었을 것 같다.(그러니까 깡촌 중 깡촌이라는 삼수갑산의 그 삼수에서 그 뒤로 30여년을 더 살았겠지 싶기도 하고)

작가의 의도겠지만 소설의 문장들에서 어딘가 백석의 느낌이 나고, 내용도 아마 시인의 현실도 이 이야기와 감정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공감대가 생겨서 재미있게 읽었지만 러시아의 시인 벨라와 백석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구성은 좀 산만하고 진행이 어수선한 건 아쉬웠다.

다 읽고나니 아무래도 백석의 일생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이야기에서 훨씬 많은 걸 볼 수 있는, 어찌 보면 백석의 팬픽 같기도 했던 책.

백석 연구가인 송준이 받은 백석 부인 이윤희 여사의 편지라고.
작품활동이 전혀 없다보니 이 편지 전까지는 64년경에 사망했다는 게 정설이었다는 모양.
편지에는 95년 사망했다고 되어 있으나 이후 다시 백석의 유족들이 조선족 지인에게 전한 소식으로는 96년 1월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by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