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취향이 많이 다른 린양과 내가 드물게 동시에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기도 하고 트위터에서 작가의 ‘책 사세요~’ 라는 성냥팔이 소녀와도 같은 외침이 안타까워서(ㅠ.ㅠ) 기대하던 SF 장르 소설이 아니었음에도 주문했던 책.
린양이 먼저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웃으며 “잘 읽긴 했는데 바로 전에 읽은 「고르고 고른 말」이랑 정반대 분위기의 책이었어”라길래 “저자가 한쪽은 시인, 한쪽은 변호사여서 그런 것 아닐까?” 하고 넘어갔었는데 내가 직접 읽기 시작하니 과연 무슨 이야기였는지 알겠다.
「고르고 고른 말」이 한 개인의 풍부한 감성에 대한 서술이었다면 이 책은 희망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인류애를 박박 긁어모아보겠다는 느낌.
안그래도 매일매일 이게 정치 기사인지 개그인지, 이제 웃으며 넘기기도 한계치를 넘어서 아예 기사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지긋지긋한 시절에 나나 옆사람이 부모로서 혜린이에게 가르쳐줘야 하지만 너무나 방대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작가가 변호사로서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진지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찬찬히 이야기를 풀어내며 마지막에는 결단코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외친다.
이런 사회의 문제들은 트위터의 타임라인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짧은 문장들로 접할 때도 가슴이 답답한데 이렇게 단정하게 정리된 글로 접하면 한층 괴롭다. 혜린이가 도중에 책이 재미없다고 관두지 않고 끝까지 꼼꼼하게 읽은 게 다행이고 이런 내용을 묶어서 내준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
비정규직은 이제 정규직의 작고 좁은 문을 통과할 힘이 없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어떤 계급이 되었다. 한국도로공사의 저 ‘동료가 될 우리’라는 괴물 같은 현수막과 그 아래를 가득 메운 경찰과 정규직 구사대가 보여주듯, 비정규직은 이제, 계급이다.
p96
갑질은 인권을 가르치지 않은 교육의 문제고, 비윤리적 인간을 계도하지 않는 제도의 문제고, 괴롭힘을 오락으로 축소하여 소비하는 미디어의 문제고, 침묵을 개인의 생존 전략으로 만든 사회의 문제다. 가해자의 잘못이고, 우리의 과제다.
p.111
책 첫장을 펼치자 적혀있는 작가의 글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도 무언가를, 무엇이든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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