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참으로 간만에 본,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 천년여우는 퍼펙트 블루의 곤 사토시 감독의 최신작으로, 연출 면에서나 퀄리티 면에서나 참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만, 내용 면에서는 약간 허하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군요.

내용은, 간략히 요약하자면 ‘주인공인 후지와라 치요코가 소녀시절 잠시 몸을 숨겨주었던 사상범을 짝사랑하게 되어, 평생~에 걸쳐 그 남자의 등을 쫓는다‘입니다. 더도 덜도 아닌 딱, 이 이야기 뿐입니다. 그러나 감독은 이 간단한 이야기를 연출로 멋들어지게 만들어냈더군요.

명배우 후지와라 치요코는 말년의 자신을 취재하러 온 사람들에게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자신의 평생에 걸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 과거는 취재하러 온 사람과 관객들 앞에 한편의 영화처럼 펼쳐지고, 오로지 맹목적으로 한 사람의 뒤를 쫓는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그녀는 자신의 평생의 걸친 사랑과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의 사랑을 동일시하며 앞만 보고 달려나갑니다. 같은 여자 입장에서야 보고 나면 그 무모함에 혀를 찰 수밖에 없습니다만 결국 그녀가 평생 쫓아갔으나 결국은 그 남자를 만나지 못했어도, 그녀가 행복해보이는 까닭은 알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녀가 평생에 걸쳐 사랑한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의 뒤를 쫓는 자신의 모습이었으니, 결말 역시 결국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나 싶군요.

요근래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스펙터클하다거나 눈요기거리가 많다거나 한 것도 아니고, 확실히 센과 치히로와 같이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기는‘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요즘과 같은 불경기에 이런 소재의 애니메이션이 극장판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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