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미처 동영상으로 보지 못한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우리나라 극장에서 보게 될 날이 온 걸 보면 역시 세상이 변하고 있긴 한가 봅니다.
그간 일부러 동영상이나 시사회를 피하고 피해서 메가박스에 보러 갔습니다만, 정말 화질과 음향이 좋은 곳으로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군요.
아무래도, 처음 보는 작품이라는 메리트도 상당했습니다. 토토로를 볼 때와는 정말 비교도 안될 만큼 집중하면서 봤으니까요.

센과 치히로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여러가지 평을 듣고 갔습니다. 하지만 역시 영화란 개개인마다 느끼는 바가 다 다르고 한 작품을 보는 백 사람의 느낌은 백가지일 수 밖에 없더군요. 아래 다이어리의 ‘패닉룸‘처럼 말이지요.
제가 영화를 보기 전에 들은 가장 일반적인 평은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의 ‘최고‘도 아니었고, 마무리도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였는데, 저는 오히려 제가 본 미야자키의 작품 중에서는 두번째였습니다. 라퓨타 다음 정도라고 할까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작품이었습니다. 머리 복잡할 필요도 없고, 보면서 사상이니 감독의 의도니 이런 것에 신경쓸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일단 이전의 미야자키 작품과는 많이 다릅니다. 약간은 신경질적이고 불만 많은 요즘 아이들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여주인공 센(비쩍 마른 다리가 정말 인상적이었음…;)이라든지 미야자키 작품 중에 두번 나오지 않을 초절의 미형 소년 캐릭터 하쿠(근간에 본 작품 중에 정말 최고의 소년 캐릭터였음..;)… 같은 면이 말이지요.
이 영화의 강점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유쾌함‘이겠습니다. 익살스러운 캐릭터들, 전혀 예상치 못한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들(그 가마 할아버지의 ‘굿-럭‘이라든지…;) 같은 것들은, 애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온 부모들도 웃게 만들더군요.
장면장면마다 어느 부분에서 웃겨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노련한 완급 조절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전통을 현대에 잘 녹여 만들어낸 설정이 2시간이라는 (애니메이션 치고는 긴) 러닝 타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진은 지난번에 지브리 미술관에 갔을 때 찍은 것인데,
미술관 입구 홀의 천장이 바로 ‘센과 치히로‘에서 아가 방의 천장이더군요.

이 작품은 어려운 사상이고 뭐고 떠나서 ‘그저‘ 즐기면 되는 것입니다. ‘왜 미야자키가 이런 작품을…‘이라는 것도 전혀 쓸데없는 의문인 것이지요. 센과 함께 싱크로해서 ‘잘 모르는‘ 세계에 들어가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어느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비디오나 컴퓨터 동영상 따위의 작은 화면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동이 큰 화면에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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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responses

  1. Tom

    ‘인랑‘에 애들 끌구와서 구연동화 하는 사람도 있었답니다. 하물며 지브리의 작품에야…. –; [07/19]

  2. 손유정

    그러고 보니 훈련소에서 첫 편지를 받고선 눈물흘리며 컵라면 먹던 기억이… –;;;;;; [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