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리더기에 등록된 아는 분 글을 읽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포스팅.

예전에 아는 사람 중에 자기가 어릴 적에 발레도 배웠고, 바이올린도 좀 하다 말았는데다가 형제들이랑 벽난로 앞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함께 노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고 말하던 이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건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상황이 썩 좋지 못해서 실제로 발레를 배운 적도 바이올린을 켜본 적도 없었다더군요.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가 지금 있는 위치가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좀더 나은 모습이기를 원하기도 하지만 가끔가다 그게 도를 넘어서 자기 자신마저 속인 채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나’가 되어버리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그리고 웹이라는 공간은 그런 사람들이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조건이 좋은 곳이기도 하겠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거짓말에 거짓말로 자기 자신마저 속여버린 그런 사람들을 보면 속인 것에 화가 나기 보다는 딱한 마음이 먼저 드네요.
남의 어머니 사진에다 ‘홍콩 여행에 동행하신 어머니’ 라는 멘트를 달면서 저 아가씨(아가씨인지도 알 수 없지만 –-)는 정말로 자신의 어머니와 홍콩 여행을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행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진지하게 저 홈의 주인은 저 홈페이지에서만큼은 외모는 김태희인(프로필에 보니 김태희 사진이 있길래. –-) 세계를 떠돌며 사진을 찍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겠지요.
자신이 창조한 신기루 속에 빨려들어가버린 그 정신이 가슴 깊이 딱하고 안쓰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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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responses

  1. 골룸 증세… 딱 맞는 말이로군 (구르고 있음)

    1. 리츠코

      우리 예전에 저기 키딕키딕이랑 해서 누구누구더러 골룸 증세라고 맨날 그랬었거든요.( –)

  2. 미사

    헉,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자기는 사생아고 지금 부모는 양부모라던 구라걸 -_- 이 떠오르는구려.
    자기 친부모는 국내 굴지의 재벌 아들과 유명 디자이너인데 막상 친부모가 재결합하고 자기 만나러 오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음 -_-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식날 보니까 그 양부라던 아버지는 그 여자애랑 생김새가 판박이였음;; 하긴 그 아버지도 좀 이상한 사람이었지. 그 아파트 단지의 <부녀회장>으로 설치는 활동가였으니;;;
    역시 결론은 자식 농사 잘 지어야 한다일지도;;;

    1. Tom

      사생아? 양부모? 굴지의 재벌아들과 디자이너??
      오호… 아침 드라마??

    2. 리츠코

      읽다가 한참 웃었음. 푸하하하.

      >>자기 친부모는 국내 굴지의 재벌 아들과 유명 디자이너인데 막상 친부모가 재결합하고 자기 만나러 오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음 -_-

      이 부분이 압권.

    3. 미사언니가 좋아하는 ‘다락방의 꽃들’ 이런 거 분위기인데요^^ 그 때 유행이었던 거 아녜요?

    4. 리츠코

      언니 친구는 학교 나오고 있었으니 다락에는 안 갖혔나보군. ^^

    5. 장미의신부

      다락방의 꽃들이라…그거 나온 건 90년대 아니었나 싶네요. 대학 다닐 때 친구집에서 봤던 기억이…^^; 제가 아무리 남매물의 팬이라지만 이건 좀 징하다 싶었던 책이었지요. 헐…(개인적으론 의사 아저씨가 취향이었는데…)

    6. 미사

      85년에 다락방의 꽃들이 나왔을 리가 ㅠㅠ 아, 릿짱 말대로 구라걸 가라사대, 친아버지의 유산을 탐낸 사람들이 자기를 엄청 구박하고 학대하고 감금했다고도 했음(주말에만) -_- 아아, 기억할수록 그 구라의 스케일에 나조차도 감탄을 금치 못하겄음 -_-

  3. 키딕키딕

    지대로 불쌍하네요. 누군가가 떠오르는군요…흠…

    1. 리츠코

      우리 주변에도 있었잖수. -_- 생각보다 저런 사람이 많다니까.

  4. 장미의신부

    전 위쪽 그림이 더 무섭군요…-_-; (영화 같은 데서 저런 상황이 연출되면 매우 두려워함)

    1. 리츠코

      마땅한 그림이 없길래..^^;

  5. 예전, 제 “네트워크 도둑 조심!”이라는 글과도 비슷하군요. 남의 코스튬플레이 사진과 남의 일러스트들을 모아 귀여운 코스튬 플레이어 겸 일러스트레이터라 떠벌리고 다니던 홈페이지.. 들키면 또다시 다른 타겟을 잡아 만들고…
    그러다 좀더 치밀하게 만드느라 “가짜” 커뮤니티 사이트도 만들어 거기서 활동하는 인물들인냥 주변 사진사(코스튬 플레이어 촬영)들도 만들어 글을 쓰고… 서로 놀러다니는 양하고..

    1. Tom

      그건 정성이 넘치는걸? –;

    2. 그러게=_=
      처음엔 여자애 키/사이즈/체중에 대한 감각이 없었는지 뚱뚱한 스펙(?)을 적어놓다가 나중엔 바꾼 것으로 봐서… 변태남이 하는 것으로 보고있음. 한참 하다가 예전에 들통났던 애와 일러스트레이터 홈에 와서 껄떡대다가 IP가 드러났는데, 최종 IP 추적지는 싱가폴.

    3. 리츠코

      그쯤되면 위의 저 여자와는 또 좀 다른 소위 골룸 증세(…)로군요. -_-;

  6. Tom

    그러게나 말이야. 황당하고 화가 난다기 보다는 딱하고 안쓰럽다는 게 맞겠군. 이상형을 만들어 자신을 대입하여 위안을 얻는만큼이나 그 사람은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는 것이겠지. 그 페이지 잠깐 가봤는데, 그 정도라면 상담을 받아봐야 하는게 아닐런지. 장난질 정도로 봐주기도 무리가 있던데.

    1. 리츠코

      웹상의 자신에 빠지면 빠질수록 현실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싫었겠어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다른 사람 사진들을 가져다 자기 가족을 삼았으니(…;) 이미 장난이라고 보기에는 도가 한참 넘었죠. 아무래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7. 나도 어제 그 아가씨(일지 알 수 없는)의 블로그에 갔었는데 참 서글프더라. 본인 사진이라고 하는 (김태희 사진 말고)사진들은 또 누구의 사진인지…. 참으로 안쓰러운 사람이야.

    1. 리츠코

      어디선가 가져온 누군가의 연인일수도 있고 지나가던 행인일 수도 있고…. 그렇게까지 현실의 자신이 싫었나 싶어서 딱하네.

  8. 세상을 살다보면 다수의 ‘허언증’ 환자들을 접하게 되지요. “말”을 하고 그 “말”이 현실인것 처럼 믿는 사람들..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선생님에 의하면 “지식인의 책무” 는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추가질문에 “있는 그대로를 가감없이 이야기하는 것” 이라고 정의하셨죠. 간단하고 쉽지만 힘든것이겠죠.. 소개해주신 링크를 보고 대략 어이없음…이네요… 리츠코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

    1. 리츠코

      저도 처음 볼 때는 정신이 멍할 정도더군요. 저 정도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게 아닌지.
      좋은 하루 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