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매주 한번씩 산부인과에서 하는 요가 수업은 요가만이 목적이 아니라 1시간은 요가, 1시간 정도는 신생아를 다루는 법에 대한 이런저런 교육으로 채워져 있어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막연히 책으로 읽는 것보다 직접 듣는 게 역시 더 머리에도 잘 들어오더군요.

병원측에서 이 수업을 통해 항상 강조하는 건 출산 시기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한 자리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친분을 나누면서 출산에 대한 공포를 완화시키자, 라는 점이더군요. 그래서 임신 주수에 따라 오전/오후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지난주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은, 요가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가니 한가운데에 방석이 놓여있고 그 위에 대각선으로 무언가 꼬물거리며 눕혀져 있는 겁니다.
자세히 보니…

신생아더군요.

그것도 정말 태어난지 며칠이나 됐는지 팔다리에 태지도 채 안 벗겨진 완전 신생아!
저보다 먼저 도착한 다른 임산부 몇몇이 아기 주위에서 손도 못대고 보고만 있는데 둘러봐도 애 엄마는 안 보였습니다..; 저도 덩달아 다른 사람들 옆에 앉아서 애가 고물거리는 걸 보고 있으니 옆에 있는 임산부가 “태어난지 4일 됐대요” 라고 알려주더군요.
‘오호, 생각해보니 태어난지 4일 된 아기를 실물로 본 건 처음이로고~’ 라고 생각하며 차마 건드리지도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는데 앞쪽에서 수업 전에 접수를 받고 있던 간호사가 임산부들에게 하는 말이 “만져봐도 돼요~”

정말로 만져도 되는 겁니까!

이 날은 정말 그 아기로 수업을 하더군요. 엄마가 검진 중이라 잠깐 맡아왔다는데 물론 애 엄마에게는 허락을 받았겠지요.
좌우지간 우연히 간호사 옆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안아보세요’ 라면서 아기를 저에게 덥썩 넘겨 엄청 당황했습니다. 평소에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아기 엄마들이라서 아기는 개월수별로(?) 비교적 자주 안아봤다고 생각했는데 신생아는 정말 완전히 느낌이 다르더군요. 정말 너무 작아서 이거 안다가 잘못될 것 같아 안절부절 못하고 있으니 옆에서 다른 임산부들은 ‘느낌이 어때요? 무거워요?’하고 마구 물어대더군요.(…)

간호사가 다시 아기를 받으면서 ‘보통 처음에 아기가 너무 작아서 엄마들이 조심스러워서 잘 안지를 못하는데 사실 편하게 안으셔도 됩니다(…)’ 라며 아기를 안는 요령을 몇가지 직접 보여주시더니, 그 다음은 마침 아기가 기저귀를 버려놔서 그걸 갈아주면서 기저귀를 가는 요령을 설명, 그러고는 홀랑 벗고 있는 아기를 뒤집더니 ‘신생아 때는 등쪽에 털이 많지요. 자라면서 서서히 빠지는데 그동안 옷에 털이 소복히 묻기도 합니다’ 라며 직접 등쪽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팔다리에 아직 각질처럼 남은 태지를 설명하면서 ‘아까 오전 수업에는 더 어린 아기였는데 그 아기는 얼굴에도 아직 태지가 까슬하게 남아 있었지요’ 라는데 ‘그럼 대체 걔는 태어난지 며칠 된거냐!’ 라고 (속으로만) 부르짖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수업 중에 태어난지 5일 이내의 신생아를 볼 일이 제법 있는데 이렇게 실물로 신생아를 접하면서 얻는 가장 큰 효과는 한참 출산에 불안한 시기인 8-9개월차 임산부들이 꼬물꼬물하는 신생아에 귀여워 죽으면서(…) 자기 뱃속의 아기도 빨리 만나고 싶다라는 의욕(?)을 고취시켜 불안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산부인과에서 하는 수업이라 누리는 일종의 특혜 중 하나겠지만 한국 같으면 아기 엄마가 왠지 태어난지 4일 된 아기를 이런 자리에 보내는 데 대한 거부감이 더 클 것 같아서 나름 문화의 차이를 실감했지요.

어제 수업은 베이비 마사지 관련이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인형으로 수업을 하더군요…;
함께 수업을 듣는 임산부들 중에 슬슬 낯이 익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서로 간간히 말도 거는 분위기입니다.
그 중에 몽골인 임산부는 같은 외국인인 게 반가웠던지 먼저 와서 제 전화번호를 물어봐서 좀 당황했군요..; 얼결에 가르쳐주긴 했는데 과연 두 외국인이 전화로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될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 다음 요가 수업 예약을 하러 내려가면 거기에서 서로 말을 거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는 저보다 예정일이 2주 빠르다는 분은 제게 ‘아기가 딸이래요? 아들이래요?’ 하고 물어보시더니 딸이라고 하자 그럴 것 같았다며 ‘자기는 아들인데 아들은 배 모양이 앞쪽으로 솟아 나오고 딸은 옆으로 좀 퍼져서 나온다더라’ 뭐 그런 이야기도 하시더군요(듣고보니 내 배모양과 그 분 배모양이 좀 다른 듯도 했음). 어디든 이런저런 ‘딸아들 구별법’은 존재하나봅니다. : )

예정일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예정’일 뿐이라서 한두주 차이 나는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확실히 애 낳고 병원에서 만날 확률이 높겠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여기는 입원하면 가족면회 시간 이외에는 산모 혼자 있어야 하니 그때를 대비해 미리 친구 만들기를 권장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 점에는 요가 수업이 새삼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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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responses

  1. 가을이가 무사히 잘 자라고 있다니 다행.
    좁다고 활개친다니, 나와서 얼마나 별나게 자라 줄지 기대가 마구 되네^^.
    살이 별로 안 쪘다니, 당신 몸 축나는 건 아닌가 좀 걱정이 되이. 뭐, 한국 임산부들이 유난히 많이 찌는 거긴 하지만. 낳고 나서 몸조리하면서 대나무숲한테 도가니탕도 끓여달라고 하고 해^^.

    1. 리츠코

      지난주 주말은 정말 완전히 태동 피크(…)여서 결국 잘 버티던 살이 트고 말았다지…ㅠ.ㅠ 아빠 닮아 순하기를 바랐건만 아무래도 내쪽인가벼….( -_-)
      아무래도 더워서 입맛이고 뭐고 없었는데 주변의 이야기로는 더워서 식욕이 돌 사람은 또 엄청나게 돈다고도 하대. 그냥 체질인가벼. 병원에서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현재 페이스대로 몸무게가 느는 게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보다 하고 있지. : )
      갑자기 이야기 들으니 도가니탕 먹고 싶네..;

  2. 미사

    헉… 4일 된 아기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본 기억이….;;;;
    순조롭게 요가도 하고 육아법도 배우고 잘 지내는 것 같아서 기쁨~ ^^
    이제 추석이네. 금년 우리 집안에선 모든 명절을 다 건너뛰기로 했던지라 다른 해보다는 훨씬 덜 번잡스러워서 다행… ^^

    1. 리츠코

      보통 아기 낳아도 삼칠까지는 손님에게 보이는 걸 조심하는 편이니 가까운 친척이나 가족이 아니면 볼 일이 없더라구요. 저도 유식이를 신생아때 봤어도 병원 퇴원 후였으니까 거의 4-5일은 지났을 듯.

      아니, 명절을 건너뛰기로 하다니 그런 훌륭한 일이..; 연휴때 좀 편하시겠어요. : )

  3. 사촌언니 아이 돌 때 가봤는데 솔직히 어린 아기는 안기 겁나더군요.
    손도 발도 작고 약해 보이는게 잘못 안으면 어딘가 잘못되지 않을까 겁나서 말이죠. ^^;
    돌 지난 아이도 그런데 태어난지 4일 된 아이라면 정말로 무서워서 건들지도 못할 것 같아요.

    1. 리츠코

      돌쯤 되면 사실 다리부터 거꾸로 안거나(…) 떨어뜨리지만 않으면 별 탈 없지요.( ”)
      생후 4일된 신생아는 정말 작아서 안을 수가 없더군요..;

  4. 태어나서 1주일 된 아기를 실제로 봤을 때 생각이 문득 드네요.

    몸에 비해 머리가 커서 안기가..참 어렵던데..

    그래도 눈도 못뜨고 잠만 자는 중간 중간 보이는 표정변화가 정말 귀엽더라고요.

    순산 기원입니다. 예쁜 아기 사진 고대하지요^^

    1. 리츠코

      그러고보니 한국 신생아들은 보통 머리가 눈에 띄게 큰 편이고 일본 신생아들은 좀 작더군요. 아무래도 그런 데서 나라별 차이가 있긴 하더라구요. 머리 크기도 그렇고 워낙 몸이 작고 아직 엄마 젖도 많이 안 먹어서 꽤 마른 편이라 너무 조심스럽더라구요.
      아기들 잘 때 베냇짓하는 걸 보면 정말 그 자체가 신경안정제가 아닌가 싶어요. : )

  5. 릿짱님도 이제 얼마 안남으셨겠군요 ^^;
    신생아 보면서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으셨겠어요…;

    1. 리츠코

      아무래도 신생아를 직접 보면 정말 낳을 때가 오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나지요. 뭐 요즘은 신생아를 볼 때뿐만 아니라 배속이 좁다고 꼴라닥 꼴라닥 움직여댈 때 좀더 리얼하게 느끼긴 합니다만…( ”)

  6. so539

    제 동생은 신생아일때는 거의 마지막까지도 본인이 못했어요..무섭다고…–;; 저도 딸이래요~~ 너무 기대되네요. 글고 택순선배 날짜 잡았답니다. 12월 22일… 어린신부를 데려가면서 나름 고민이 많더군요. 가을이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너무 기대되요~~

    1. 리츠코

      오, 딸이구먼. 축하축하~ ^^ 몸은 좀 괜찮은지? 이제 슬슬 배도 나왔겠다.
      정말 올해 안 넘기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결혼 날짜라는 생각이 드누만. ^^ 나중에 메신저에서 만나 이야기합세~

      나도 초음파로 보면서 어찌 생겼을지 요리조리 상상해보고 있는데 역시 직접 낳아봐야 알 것 같아..; 게다가 신생아들은 내 친구 말마따다 ‘눈도 아직 못떠서 일자, 입도 일자’모양이라서 다 비슷비슷한 듯도.. ^^;

  7. Tom

    아가들을 보고 있으면…
    셋째를 낳아볼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우리집 막내는 이미 커버렸다. (14kg 돌파!)

    1. 리츠코

      그래서 셋째를 낳아서 갸가 크고 나면 또 낳게요?..; 무슨 네버 엔딩 스토리도 아니고. -ㅁ-
      태오는 지난번에 보니 키도 크고 든든하겠던데요. ^^ 보기만 해도 듬직하시겠심~

  8. 하루카

    저도 조산원에서 교육받고있는데 신생아 목욕법을 가르켜 주신다며
    태어난지 일주일정도 된 아기를 데리고 와서 직접 씻기는데..
    다른 산모들도 조심조심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조산원장님은 아기에게 다정스럽게 말을 걸면서 척척 잘도 씻기시더라구요… 정말 대단하신 ~ 다른 산모들 다들 감격하는 분위기 홍홍.
    엄마가 되면 다 할수 있는거겠죵!!
    순산하세요^^

    1. 리츠코

      여기서는 목욕법은 출산 후에 입원하는 동안 병원에서 가르쳐주나보더군요. 수유하는 법이라든지 목욕시키는 방법 같은 기본적인 건 병원에서 거의 배우고 나갈 듯합니다.
      이제 예정일도 얼마 안 남았지요? 순산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