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인터넷 서점 국내 표지 이미지의 띠지가 너무 거슬려서 대표 이미지는 원판으로 대체.(저 이미지도 뭐 그냥 그렇긴 하지만)

기록을 찾아보니 한 달 가까이 책을 손에 잡지도 않고 있었다. 이 책도 도서관에 신간신청한 거라 받아오긴 했는데 한 쪽에 두고 차일피일하다가 오늘은 어디 카페라도 나가서 다 읽고 올까 생각만 하다가 낮기온이 30도를 육박하길래 그냥 집에서 뒹구르기로.

두 달 뒤,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한다.
이제 곧 멸망을 앞둔 세계는 행성이 격돌하는 지점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멀리 피난하려는 이들과 어차피 희망이 없다며 비관한 자살자들, 공권력의 부재를 틈타 약탈을 일삼는 자들로 인해 아비규환에 휩싸인다.

한편 대혼란의 와중에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운전면허를 따겠다며 후쿠오카의 운전교습소를 찾은 23살의 하루와 그런 하루에게 운전을 가르치려 홀로 출근한 강사, 두 사람은 자신들이 타려던 차량의 트렁크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여성의 시체를 발견하고.

곧 세상이 멸망하면 다 죽을 텐데 왜 살인을?
증거까지 인멸해가며 굳이 차 트렁크에 감춰둔 이유는 무엇일까?
의구심을 품은 하루와 강사는 각각 다른 사정이 있음을 숨긴 채 전력을 다해 지구상 마지막 수사에 임하는데…

오랜만에 정신없이 읽었다.
호흡도 빠르고 등장인물들은 여기저기 고무공처럼 튀어다닌다. 작가가 23세라는데 그 나이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필력과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대단했다.

세계의 종말을 앞둔 상황에서 저렇게 열심히 범인을 찾을 일인가 싶으면서도 종말이 오기 전 시간을 저렇게라도 유의미하게 쓰고 싶은 심정을 알 것도 같아서, 요근래 집중력이 바닥이라 책 한 권 잡으면 읽다말다 하기 일쑤였는데 잡고 단숨에 다 읽어치운 게 얼마만인가 싶다.

넷플릭스의 <돈룩업>이 지극히 미국적인 ‘종말’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 <세상 끝의 살인>은 참으로 일본스러운 ‘종말’이었다. 한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주인공 하루의 결벽적일 정도의 ‘사과’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마음이 좀 삐딱하게 보이기도 했고. 🤔
그러고보면 한국의 작가가 쓰는 ‘종말’의 이야기는 어떤 식일까.
이런 소재의 책을 보고나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이 작품에서처럼 지나치게 애매한(?) 기간을 두고 알게 된다면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갈 일이 아찔하고 얼마 남지 않았다면 역시 내 가족과 한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한국에는 핵전쟁을 대비한 벙커가 있을 거라는 유언비어가 돈다는 설정은 재미있었네. 그런 거 없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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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sponses

  1. 모루

    관악산에 있는 서울대 순환도로 끝에 통제 구역이 있는데 무슨 장소인지 모르겠지만 대피소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었죠. 산 중턱 지하대피소라면 핵방공호나 수방사 사령부 지휘소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1. Ritsko

      소설에서는 북한 핵을 대비하기 위해 남한에서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벙커를 만들어놨다더라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거든요. 일본이 생각하는 남한의 북핵에 대한 대처는 그런 이미지인가 싶었어요. 아니면 작가가 젊다보니 그런 생각을 했나 싶기도 하고. ^^;

  2. 그 와중에도 주인공의 ‘사람다움’이 너무 일본식이라 ㅎㅎㅎ
    (아니 그렇게 사과를 잘 하고, 용서를 구하는데 진심인데? 라는 생각이 드는건, 제가 한국인이어서겠지요)

    – 제가 블로그에 접어놨던 부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빨리 읽히고 재밌죠?!
    냅다, 제목만 보고 ‘누가 이 책을 읽었지!!’ 하고 헐레벌떡 달려오니 리츠코님네 댁이네요.

    1. Ritsko

      와기님 읽는 거 보고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요즘 예산이 없긴 한지 이제서야 받아봤네요.
      정말 후루룩 읽히더라고요.

      하루의 감정이 미묘하게 부자연스러운 게 저만 그런 게 아니죠? 동생의 일에 저렇게까지 진심으로 정색하면서 동생도 아닌 본인이 용서하지 말라고 할 일이냐고요. -_- 그럴 거면 우리한테도 좀 그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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