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전 얼리버드 티켓은 무려 날짜를 ‘지정’해서 끊어야 했는데 같이 가기로 했던 난다님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소영 언니와 다녀왔다.
뭉크의 그림은 (어느새) 7년 전에 샌프란 MoMA에 갔을 때 본 적 있는데 그때 전시에서 받은 느낌은 큼직한 유화 그림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작가의 어두운 기운! 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유화보다는 판화 위주여서 그런지 작가가 한 작품을 가지고 여러 버전으로 시도하면서 고민한 디테일들을 볼 수 있어 색달랐다.
더는 남자가 책을 읽고 여자가 뜨개질하는 장면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숨쉬고, 느끼고, 고통받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인간을 그릴 것이다.
당신은 그 일상의 성스러움을 이해해야 하며, 이 일상에 대해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처럼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같은 그림으로 작가가 직접 다양하게 채색과 소재 등등을 바꿔 그려낸 여러 작품들이 주로 전시돼 있다.
그러고보니 지난번 전시 때는 절규는 못 봤었는데 이번에는 판화버전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유화 버전보다 선이 좀더 선명해서 오히려 마음에 들기도.
저 그림의 ‘절규’는 가운데 사람의 절규가 아니라 저 사람을 둘러싼 자연의 ‘절규’에 대한 이야기.
작가는 무엇을 보며 맞은편의 저 흐늘한 인간의 형상과 화면을 압도한 ‘덩어리’를 그린 걸까.
연인에 대한 뭉크의 작품들은 대부분 어떤 ‘하나의 질감으로 뭉쳐진’ 느낌.
작품 옆에 적힌 설명에 따르자면
이 작품은 남녀의 시각적 융합을 완전한 방황의 순간으로 묘사한다. 그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함께함은 일시적이며, 개인성을 잃는 대가로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이별, 질투, 우울, 깊은 절망,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죽음이라는 주제가 항상 그 뒤를 따른다.
불안한 사람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세상에서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 뭉크 아닐까.
아무래도 이름 있는 화가다보니 오픈 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전시회 열리자마자 들어가면 입구 쪽에서 사람들이 몰려서 작품을 제대로 보기 힘드니 차라리 중간쯤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끝까지 보고 다시 맨앞으로 오는 걸 추천.
전시회장 들어가니 초입이 너무 붐벼서 난감했는데 안내하는 분이 앞으로 쭉 가서 보고 다시 앞으로 오는 걸 권해서 중간쪽까지 나갔더니 순식간에 한산해져서 거기서부터 편하게 잘 보고 다시 맨앞으로 돌아왔다.
한 작품으로 여러 판화 버전이 온 게 많아서 맨앞부터 순서대로 볼 필요는 굳이 없을 듯.
지난번 전시회의 그 강렬함이 기억에 남아서 좀 기대했는데 그 강렬함은 부족해서 아쉬웠지만 그 사이에 뭉크에 대한 책들을 이것저것 보고 가서 그런지 작품들에 대한 디테일은 좀더 많이 보여서 좋았다.
전시회 가기 전에 간단히 볼 만한 책이라면 <뭉크─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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