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여름 캠프는 스케줄이 제법 빡빡해서 주말이 되면 린양이 좀 쉬고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한지라 어디 관광을 열심히 다니기도 애매한 상황.(지난주도 페달보팅에 수영까지 몹시 바빴음)
게다가 이번 캠프 일정을 보니 (고맙게도) 인근에 아이들이 갈만한 주요 스팟들은 한번씩 다 들러주고 있는 중인데 나는 당연히 셔틀로 이동하는 줄 알고 있었더니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는 대중교통으로 다닌단다.(어느 정도 말귀 알아들을 나이의 아이들이 모인 캠프라 가능한건가; )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새 린양은 이미 이곳에서 전철과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누빈 경력자(?)가 되어 있더란. 어쨌거나 언어가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채로 일행에 끼어 대중교통 타고 여기저기 다니려면 자기 딴에는 엄청 긴장할테니 왜 그렇게 집에만 오면 피곤해 쓰러지는지 그제서야 알았다…; (다음주 일정을 보니 샌프란시스코 과학관exploratorium 찍고 페리타고 오는 코스도 있던데 은근 멀리도 나간다 싶음)

그래서 주말에 별다른 일정 없이 보내려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MoMA (현대미술관)정도는 보러가고 싶어서 알아보니 근처 주차 사정이 지옥이라고. 대중교통을 알아보니 마침 집근처 전철역에서 급행 타면 한번에 이동할 수 있는 코스라길래 처음으로 세 식구 전철 타고 읍내 나들이에 나섰다.
에미 애비는 어리버리한데 린양은 전철역도 전철 타는 것도 너무나 익숙한 모습.(…) 전철 노선표 보며 ‘나 저기까지 가봤어’ 하는데 우리가 가는 곳보다 몇 정거장 뒤에 있는 곳이었다…;

미술관에서는 에르바르트 뭉크전을 하고 있다길래 막연하게 예술의 전당 가는 기분으로 집을 나섰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다른 전시회 볼륨도 커서 보다가 지쳐 떨어질 정도였다.

어쨌거나 사람이 가장 붐비는 건 뭉크전.

뭉크의 작품들은 직접 보니 ‘아, 이 인간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 같다’ 싶을 정도로 음울하고 어두운 색조에 제목이 굳이 절규가 아니어도 그림속 여자도 남자도 자화상조차도 하나같이 어딘가 절규하는 느낌.(ㅠ.ㅠ)
이번 전시회에 ‘절규’는 안 왔고 ‘사춘기’와 ‘마돈나’는 직접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작품은 실물로 보면 색감 때문에 마치 작품에서 ‘요기(妖氣)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전시회장 한바퀴 다 돌고 나면 무슨 뱀파이어물을 테마로 한 전시회를 보고 나온 기분임)

이번 전시회의 메인 작품은 뭉크 말년의 자화상인 ‘Between the Clock and the Bed’.

Self Portrait : Between Clock and Bed(1940–43)

나도 뭉크는 유명한 몇몇 작품만 눈에 익어서 이 그림은 생소한데 삶과 죽음을 ‘시계와 침대 사이’라고 표현한 것이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린양이 아는 건 ‘절규’밖에 없다보니 그 작품이 안 보여서 좀 아쉬웠나본데 걷다보니 절규와 연관된 초기작인  ‘Despair’는 전시되어 있어서 ‘절규’는 없어도 그 다리 근처 다른 그림은 와 있네 라며 둘이 웃었다.

Sick Mood at Sunset: Despair (1892)

Edvard Munch ‘Between the Clock and the Bed’

뭉크전을 보러 간다고 생각하고 나섰는데 다 둘러보고 나니 여러가지 전자음이나 소리에 관한 현대미술 전시를 하고 있는 ‘Soundtrack’전이나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들, 비디오 아트만 알고 있었는데 작가의 다양한 낙서나 그림들을 볼 수 있어 의외였던 백남준 전시회 등등 참으로 호사스러운 감상의 시간이었다.

우리 셋 다 마음에 들었던 건 이거. 물 위에 그릇들이 띄워져 있는데 물결 흐름에 서로서로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차랑차랑 소리를 만든다. 마치 풍경소리 같기도 해서 한참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봤다.

미술관 자체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도 워낙 쟁쟁해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니어도 ‘아 이 작가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다니’ 하는 반가움이 먼저 드는 경우도 많았고.

Valley Streets, 2003

그 중 뜻밖에 만나 반가웠던 건 웨인 티보의 작품들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 그림은 아니지만 그 작가 특유의 색감을 실제로 볼 수 있어 만족.

그 외에 기억에 남는 건 마티스.

Femme au chapeau (Woman with a Hat), 1905

맨 위층부터 감상하면서 내려오다보니 5층쯤에서 이미 슬슬 점심 때라 나가서 먹고 들어올까 어쩔까 하다가 아직 볼 게 한참 남았는데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 귀찮아질 것 같아(…) 미술관 내의 카페에서 해결. 가격에 비해 맛은 나쁘지 않았고 뭣보다 먹고 다시 관람하기 편해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1층의 기념품샵까지 다 훑고난 후 린양의 너덜너덜해진 운동화를 새로 장만하기 위해 근처 블루밍데일 백화점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4시쯤 다시 전철로 귀가. 갈 때보다는 사람이 좀 더 있었지만 아주 부대낄 정도는 아니어서 여기 전철도 타고다닐만 하겠는데? 싶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나 좀더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모드인 린양과 매우 휴식하는 하루.

6 responses

  1. 즐거우셨군요! 저도 아직 뭉크전 못봤어요. 린양 다크써클이 안쓰럽네요.

    1. Ritz

      덕분에 잘 다녀왔어요~ 뭉크전은 볼만했는데 주말이라 사람은 역시 많더라고요. ^^ 린양은 아마 저때 밥 먹기 전이라 다크서클이 더 내려와 있었을 거예요…( ”)

  2. 혜린이는,지쳐보이는구만 ㅠ

    1. Ritz

      혜린이 인생에서 이보다 빡시게 산 적이 없을걸…

  3. raoul

    우왕 모마 너무 좋아요 ㅠㅠb

    1. Ritz

      좋더라고요. 기회되면 한번 더 가서 찬찬히 보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랑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