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전날 과도한 운전 거리(?)로 가장들이 피로를 호소하는 바, 이 날은 집에서 슬렁슬렁 굴러댕기다가 오후에 근처 바닷가를 나가보는 정도에서 마무리하기로.
오전에 근처 성당에 미사를 보러 나갔던 두 집은 인터넷에 있는 예배 시간에 맞춰 갔더니 무려 스페인어 미사(…)여서 허탕을 치고 들어왔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딜런 비치는 생각보다 깨끗했고 언제나 그렇듯 탁 트인 바다는 보기에도 시원했다. 날씨가 아주 춥지는 않아도 그래도 겨울인데 서핑하는 사람들도 몇몇 보이고 그 와중에 시원하게 수영복 차림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아이들까지 보여서 경악(…) 아무리 그래도 10도 채 안되는 기온인데, 서양인들은 추위를 안 타나요…

아이들마다 바닷가에서 노는 방법도 제각각….

모래사장에 조개껍질이라도 좀 굴러다닐까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곱디고운 그냥 모래사장이라 아이들은 적당히 모래놀이 좀 하고 린양은 바닷물에 발만 담그고 왔다갔다 하며 한시간쯤 놀다가 귀가. 특별히 한 거 없어 보이는데 린양은 생각도 못했는데 바닷가에 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단다.

우리집과 식님네는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일정이라 저녁 시간에는 각자 짐 정리 다 끝내두느라 정신이 없었고 늦은 시간 마루에 나와보니 졸고 있는 샹하이를 무릎에 두고 한참 힐링 타임.

두 식구는 16일 비슷한 시간 비행기로 각자 집으로 향하느라 사일런트 힐을 방불케 하는 자욱한 안개가 낀 새벽 산길을 뚫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출발.
돌아가는 길에 금문교를 지나왔는데, 톨비를 받는 걸로 알고 있었건만 아무것도 없이 그냥 지나와버려서 왜 돈을 내는 곳이 없지? 하고 당황하며 지나쳤더니 나중에 공항에서 만난 식님네가 우리 차가 뜬금없이 인터넷으로 나중에 톨비를 납부하는 입구로 빠져나가는 걸 보시고 부랴부랴 차 번호를 찍어서 대신 납부해주시겠다고 챙겨주셔서 마지막까지 신세를 졌다.(다음에 족발과 보쌈으로 꼭 갚겠숴요… ㅠ.ㅠ)

모노레일의 묘미는 역시 맨앞자리.

돌아가는 길에 길동무가 있을 줄이야.
안녕, 샌프란시스코~

가족 여행을 떠나면서 모처럼 모였으니 마지막 날에는 부모와 아이들 모두 모여 꼭 단체 사진을 기념으로 남겨야지, 결심했었는데 정작 가서는 제각각의 시간에 잠들고 밥을 찾은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 결국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야 ‘아, 맞다. 단체사진’ 하고 생각이 났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대 시절에 이렇게 가족이 다 모였는데 애를 챙기느라 정신없을 줄 상상이나 했던가 싶어 문득 웃음이 났다.

처음 만난 날 열몇시간 목이 쉴 때까지 수다를 떨었던 것도, 결혼을 앞두고 서로에게 반려자를 소개하던 기쁜 순간도 모두 행복한 추억. 그 ‘풋풋한 시절’은 흘러갔고 우리는 어느새 모두 ‘부모’가 되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 중.

이제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아마 머리가 굵어진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쑥쓰러워하며 피해서 단체사진을 남기기 힘들겠지.

어쨌든.

이번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리고 만나줘서 너무 고마워요.🙂
우리 식구는 지금까지처럼 도곡동 두바이 공항(…)을 항상 열어놓고 있을테니 언제든지 들러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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