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예전에 넷플릭스 메인에 언뜻 지나가는 제목을 보고 무슨 내용이길래 제목이 저런가, 웃었는데 어제 우연히 추천글을 봐서 밤에 혼자 돌려봤다.
마침 4k 영상이라길래 거실 티비에 틀어놓으니 하염없는 바다속 풍경에 소소히 힐링되고 내용도 기대 이상이었다.

직업적으로 번아웃이 왔는지 아무것도 찍기 싫어져서 바닷가 집에 자리를 잡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취미로 뛰어든 바다 속에서 우연히 만난 문어를 관찰하며 다시 ‘무언가를 찍고 싶은’ 의욕을 되찾고 1년 가까이 문어 한 마리를 꾸준히 찍으며 그 문어와 교감하는 이야기.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문어라고 하면 ‘다리가 예쁘게 말리게 삶는 법’🙄 말고는 접할만한 정보가 없다보니 문어의 생태에 대해서는 이 다큐에서 처음 알았다.

문어의 수명은 대략 1년 정도, 이 다큐의 주인공은 암컷인데 암컷은 알을 낳으면 부화하기까지 먹지도 않고 그 알을 지키다가 그대로 생명이 다한다고 한다. 지능이 생각보다 높아서 개나 고양이 정도?라는데 내가 보면서 느낀 건 문어는 정말 철저하게 고독한 생물이었다.
알이 부화할 때쯤에 엄마 문어는 수명이 다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50여만개의 부화한 알은 각자 바다로 흩어지는데 그 중에 살아남은 개체는 그야말로 혈혈단신 살아남은 셈.

감독은 우연히 만난 문어와 끈기있게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면서 자신과 문어의 교감, 문어가 천적에 쫓기거나 혹은 그 천적을 피하기 위해 기지를 발휘하는 순간과 그 문어의 마지막까지 잔잔하게 쫓는다. 문어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감독이 개입하고 싶은 마음을 눌러야 했다는데 보고 있으면 그 기분이 이해가 간다.

문어가 보여주는 호의적인 행동도 신기했지만, 얕은 수면에 무리지어 다니는 작은 물고기들을 배를 채우기 위한 사냥이 아니라 그저 심심해서 휘이휘이 팔로 휘저어보다가 촬영하던 감독에서 스르륵 다가와 밀착하는 문어의 모습은 너무나 기이하고 신비롭기까지 해서 내내 기억에 남는다.

기승전결이 분명한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이다보니 전반적으로 잔잔하다. 가능하면 큰 화면으로 보는 걸 추천. 보고 나면 당분간 문어 숙회는 손이 안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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