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신문 기사를 보다가 눈에 띄어서 도서관에 신청하려고 보니 어느새 누가 신청해서 비치되어 있었다.

작가는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로, 책 맨 앞에 명시해두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했으나 환자나 등장인물의 이름, 인종, 나이 등의 세부 사항은 각색한 내용이다. 책에 등장하는 환자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작가가 그 환자를 대하면서 느낀 감정에 초점을 맞춰 읽으면 좋다.

페이지가 많지 않아 읽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데 이야기 하나하나에 생각할거리가 많아 읽고 난 후의 여운이 좀 길다.

왜 분열의 사회가 되어가는 걸까.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우리가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그리고 배울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평균적인 공감 능력은 30년 전에 비해 40퍼센트 가까이 감소했다고 한다.

p126

예전에 차이나는 클라스에 진화학자가 나와서 인간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문명을 이룬 비결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진화된 심리인 ‘공감력’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인간이 공감력을 잃어가고 분열이 가속화되면 남는 건 유인원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을지도.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는 나라임에도 이 중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하기보다는 덮기 급급했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도 어찌 보면 자살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하거나 우회하려는 자세가 반영된 신조어일지 모른다. 이제는 자살에 관해 떳떳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자살을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반복되는 자살은 우리 정신 건강의 현주소다.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p174

이 책을 읽다보니 자살이라는 단어를 피하기 위해 쓰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재고해봐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암이나 기타 질병처럼 육체가 생명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이 나를 죽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울증이 어려운 병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선택이라는 단어를 써도 될까.
물론 베르테르 효과 때문에 저 단어를 언급하지 않기로 한 건 알고 있지만 그에 대체하는 단어가 저게 적당한지 고민할 차례 아닐까.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지만 여전히 정신과에 대한 편견은 깊고 오해는 넓다.
나 역시 미련하게 참고 참다가 거의 기어 가다시피 정신과 문턱을 넘었지만 다니고 난 후 느낀 건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와서 진료를 받았으면 지나간 나의 인생의 몇 년이 좀더 편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ps. 이 책 처음에 펼치고 놀란 건, 엉뚱한 이야기지만 행간이 어마어마하게 넓다.(이 행간으로 204페이지 나왔으면 일반 책 행간이었으면 지금의 2/3 페이지밖에 안 나왔을 듯) 아마 길지 않았던 글을 묶어 책 한권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편집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면 약간 눈물겹다.( “)

작가의 브런치 : https://brunch.co.kr/@psy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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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1. 정신과 의사 나종호 Peter Jongho Na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1. Ritz

      악… 제 트윗 계정이 잠금이 아니었다는 걸 잊고 있었네요.;; 읽는 내내 생각이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 )
      아, 그리고 책은 빌려 읽고 너무 좋아서 구매해서 딸과 나눠 읽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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