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마전에 아기를 낳고 출산기를 올리신 S님의 포스팅을 읽다보니 병원에서 받았던 모유수유 관련 케어들이 생각나서 잠시 이야기를.

아이를 낳기 전 요가 수업에서 조산사들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모유라는 건 절대 낳고 나서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보통 일주일에서 한달까지 생각해야 한다, 신생아는 태어날 때 당장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영양분을 도시락처럼(…) 가지고 나오니까 모유가 많이 안 나온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였더랬습니다. 그러면서 가능하면 모유수유를 권장하지요.

아이를 낳고 나면 우선 병원에서 아이는 모유로 키울건지 분유로 키울건지 물어봅니다. ‘가능하면 모유로 키우고 싶다’고 하면 그 뒤로 거기에 맞춰서 움직여주더군요.

저같은 경우는 수술하고 나와서 바로 젖 한번 물리고 그 뒤로 하루 동안은 거의 물리질 못했고 솔직히 힘들어서 초반에는 그냥 배고플 때 분유를 주라고 했더니 둘째날쯤에는 ‘모유수유를 할 예정이면 지금부터 계속 젖을 줘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 다음부터는 배고프다고 울면 아기를 데려오는데 그때부터 조산사가 같이 붙어서 젖 물리는 방법부터 가르쳐줍니다. 젖 먹이는 자세가 가장 많이 쓰는 옆으로 눕히고 먹이는 방법부터 옆구리에 끼고 먹이는 풋볼식, 앞에 앉히고 먹이는 방법, 누워서 먹이는 방법까지 생각보다 다양하더군요..;

낮시간에 애를 데려다놓고 젖을 물릴 때 미련하게 편하다고 왼쪽으로만 줬더니 하루 지나니까 바로 오른쪽 가슴이 굳기 시작합니다. 오른쪽 가슴이 열이 오르면서 땡땡하게 부으니까 조산사가 보더니 양배추 잎을 가족에게 부탁해서 가져다달라고 하라더니 그걸 일단 낮시간동안 가슴에 대고 열을 식히라더군요. 그리고 낮동안 그렇게 내내 냉장고에 식힌 잎을 바꿔가며 붙이고 있다가 밤이 되니 조산사들이 아기 젖을 먹이러 데리고 올 때마다 억지로라도 애한테 그쪽 가슴을 물립니다.

근데 이게 정말 아수라장인게 애는 잘 나오는 쪽 놔두고 잘 안나오는 가슴을 내미니 배고파 죽겠다고 악을 쓰고 우는데 조산사는 비정하게(…) 애 목을 콱 잡고 냅다 오른쪽 가슴에 얼굴을 들이댑니다. 나중에는 애가 하도 괴롭다고 울어대서 저까지 덩달아 울고싶어지더군요. -.ㅠ 게다가 신생아의 빠는 힘이라는 게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세다보니 물었다 뺐다 반복하는 동안 애가 무는 부분이 헐고 딱지도 앉고 난리도 아닙니다. 그러면 애도 그런 쪽보다는 다른 쪽이 더 편할테니 계속 악순환이 되는 거죠.

애 젖을 좀 먹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계속 굳은 가슴을 풀어줍디다.

워낙 아플 정도로 뻐근할 때라서 그런지 굳은 가슴에 그렇게 마구 마사지를 해대는데도 오히려 시원하더군요..; 그날 밤새도록 조산사들이 애가 젖을 찾는 2시간마다 한번씩 들어와서 돌아가면서 가제 기저귀를 잔뜩 적실 만큼 젖을 빼내고 땀 뻘뻘 흘리면서 마사지를 해주는데 내 미련에 여러 사람 잡는구나 싶었습니다. =_=;

그 뒤로도 마지막 날까지 애 젖을 물릴 때 반드시 조산사가 물리는 것까지 보고 나가더군요.

병원에 있는 동안은 혜린이 체중이 기준에서 아주 아슬하게 줄었다 늘었다 해서 마지막날에는 모유량이 충분한지 체크를 받았었습니다.

모유량을 체크한다길래 대체 무슨 수로 재는 걸까 했더니 젖을 물리기 전에 아기 몸무게를 재고 다 먹인 다음 다시 몸무게를 재서 늘어난 만큼을 젖량으로 치더군요.

마지막날 새벽에 체크해준 조산사는 약간 부족한 것 같으니 분유와 함께 병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그날 아침에 다시 몸무게를 재니 확 늘어난 데다가 젖량도 늘어서 모유수유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는 확인을 받고 퇴원했지요.

조산사 중에 모유 수유 관련 전문 조산사가 따로 한분 계신데 마지막날 체크를 해주면서 퇴원 후에 한번 더 와서 체크해보겠냐고 물어보시더군요. 그래서 일주일 뒤쯤으로 예약하고 가보니 그동안 모유만으로 아기 몸무게가 잘 늘고 있는지, 애 젖 먹이는 방법은 틀리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산모 가슴 마사지까지 해줍니다. 그 틈틈이 저같이 처음 애 키우느라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들이 걱정하는 이런저런 것들을 들어주고 가르쳐주고 하더군요.

이 모유 수유 학습은 지난주 월요일까지 해서 일주일 간격으로 모두 세번 갔는데 두번쯤 가고 난 후 그때까지 계속 골치를 썩이던 오른쪽으로 수유하는 문제가 그럭저럭 해결이 되는 쾌거(-_-)를 이뤘습니다. 한번 갈 때마다 천엔인데 그보다 비싸도 상관없다!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번에 가니 앞으로도 한달 정도 텀으로 계속 오겠느냐고 묻길래 냉큼 다음 약속을 잡고 왔습니다. 가서 보면 개월수가 꽤 된 아기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도 꽤 있는데 아기 마사지 하는 법이라든지 여러가지를 가르쳐주는 듯하더라구요)

돌이켜보면 제 모유수유는 처음에 아무 각오 없이 남들이 다 그렇게 하라길래 멋도 모르고 ‘하겠다’고 했다가 조산사 손에 이끌려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젖 물리고 있더라, 로군요. 병원에서 오른쪽 가슴 때문에 힘들어서 솔직히 기냥 속편하게 분유로 갈까 생각도 몇번 해봤었는데 왠지 그렇게 말할 분위기도 아니고 말해봤자 분명히 조산사들이 예의 그 싹싹한 말투로 ‘김さん~ 조금만 더 하면 돼요’ 할 것 같아서-말이 짧아 더 우기지도 못한다. -_-; -어영부영 하는 사이에 그 시기도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내가 먹는 게 모두 아이에게 가니 임신 때보다 오히려 못먹는 게 늘고-으흑, 이번 시즌 스타벅스의 크리스마스 한정 라떼가 왜 그렇게 맛있어 보이는지… ㅠ.ㅠ- 분유보다 더 자주 찾아서 하루 일상이 1시간 반에서 2시간 간격으로 쪼개져버려 가끔은 그냥 편하게 분유 먹여버려? 하는 유혹이 한번씩 확확 덮칩니다만 그래도 배고프다고 울다가 덮치듯이 젖을 무는 애를 보고 있으면 그게 예뻐서 또 버티게 됩니다.

아, 정말 6시간은 바라지도 않고 한 3-4시간 텀만 되어줘도 행복할 것 같아요.

by

/

10 responses

  1. …마치 ‘어? 어?’ 하는 사이에 내려가야 하는 톨게이트를 지나쳐 버리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무작정 달릴 수 밖에 없는 고속도로에 들어선 느낌과 비슷하시겠군요. (…)

    1. 리츠코

      비유가 참…; 그런데 일단 한번 모유수유를 시작하고 나니 도중에 그만두는 건 오히려 어렵더군요.

  2. 요즘 오만 가지 일로 정신이 없다 보니 간만에 들렀네;;
    불꽃의 출산일기와 육아일기 감동 깊게 보고 가우 ^^
    혜린이(<모래시계>가 생각나는 이름이네;)도 느무 이쁘고… 연말에는 슬금 방문해서 볼 수 있을까 모르겠네;;;;

    1. 리츠코

      그러고보니 모래시계에 나오는 이름이네요. 요즘 여기 TV에서 낮시간에 해주던데 고현정 화장이 지금보니 어찌나 촌스러운지…( ”)

      연말쯤에 일본 오세요? 저희야 언제든지 웰컴이예요~

  3. 미사

    헉… 눈물 없인 볼 수 없구려 ㅠ ㅠ
    난 엄마 젖이 나오지 않아서 우유로만 자랐다는데… 호, 혹시 그래서 면역력 꽝인 것인가?;;;

    그나저나 핸드폰 번호 바뀌었어… 폰은 안 바뀌고 번호만 ^^;;
    010-7***-**** 별표 부분부터는 이전과 동일하다오…

    1. 리츠코

      저나 대나무숲이나 다 분유로 컸는데 사실 모유나 분유나 별 차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_-; 모유를 먹이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나중 가면 외출할 때 짐이 줄어든다길래…( -_-)

  4. 지구

    그래도 성공하셨으니 축하드립니당~
    열심히 노력했건만 결국 안 되는 경우도 있으니.
    저는 우유 먹고도 건강하게 쑥쑥 잘 자라주는 폴에게 그저 고맙기만… ^^;

    1. 리츠코

      요즘 분유도 좋게만 나오는데요, 뭘. 먹이는 데에 좀 고생해서 그렇지 젖은 부족하지 않은 것 같아 좀 버텨봤는데 저도 좀 해봐서 안됐으면 미련없이 분유로 갔을 것 같아요.
      저도 신랑도 제 동생들도 다 우유 먹고도 잘만 자랐는데요. ^^

  5. Tom

    뭐… 한 1~2년만(!!!) 고생하면 된다구!! ^^;;;

    1. 리츠코

      아닛, 백일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사람한테 1-2년이라니요!! ㅠ.ㅠ